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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n 27. 2021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페루비안 이자르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


아버지와 함께 페루에서 왔다는 너는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장신구들을 파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 주변 상인들의 화려한 수공예품과는 달리, 아무런 문양 없이 천연 재료와 색으로만 만든 장신구를 팔던 네 앞에 내가 섰을 때 너는 내가 온 걸 눈치채지 못했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어. 나를 먼저 발견한 건 너만큼이나 정말 따뜻하셨던 네 아버지였지. 안데스 지방의 깃발을 펴 보이며 내가 바로 이곳에서 왔다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



이자르의 아버지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여행 중 재미의 하나로 흥정을 시도했었어. 영어를 전혀 알아들으시지 못했던 네 아버지는 너를 불렀고 너는 짧은 영어로 나의 국적과 나이,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봤지. 너희 아버지는 우리가 그때 흥정을 하고 있다고 믿고 계셨을 거야. 지나고 생각해보니 너의 단어 단어들에는 참 진실함이 많이 배어있던 것 같아.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바라는지, 또 궁금해하는지 척척 잘 알아맞혔고 또 대답했지. 난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아.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언어는 중요한 게 아니구나.



Ven a mi casa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네 아버지가 계속 뭔가를 스페인어로 말씀하셨어. 알아듣지 못했던 나는 너를 쳐다봤지.


"아빠가 너를 우리 집에 초대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을 들었을 때 당혹스러웠던 것 같아. 어떻게 거절해야 하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던 것도 사실이고. 너와 네 아버지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집까지 놀러 가는 건 그렇잖아. 하지만 "Ven, ven!" 하며 손짓으로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는 네 아버지를 봤을 때- 나는 핑계를 대려고 머리를 굴렸던 내가 창피해지더라.


"Mi Casa, My home!"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 한복판.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이라는 그곳.




지금에야 말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해. 우리 엄마와 내가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지. 아무튼 너의 집 같은 그곳에, 그 거리 한복판에 앉는 게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했어. 모두가 나를 쳐다볼 것만 같았거든. 하지만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해주시던 네 아버지 모습을 보는데 거절할 수가 없겠더라고.


바쁘게 지나가는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수많은 관광객들이 너희 가족 틈에 껴 있는 나를 이상한 듯, 호기심 어리게 쳐다봤지. 맨 처음엔 식은땀이 나더라. 하지만 점점 너와의 대화에, 네 아버지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그 시선들도 함께 사라지는 것을 느껴졌어.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자유를 경험했다고 해야 하나.



아르헨티나를 거쳐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페루까지 갈 것이라는 내 계획을 네게 말해주자 너는 그곳이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곳이라고 말해줬지. 그리고 웃어줬어. 나에게 페루를 꼭 가야 했던 당위성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볼리비아에서 고산병과 사람들로 지쳤을 때, 페루를 손에서 놓아버렸을지도 몰라.


네가 목에 걸고 있던 그 목걸이를 보여주며 너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말해줬는데- 그땐 그게 참 투박하고 멋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페루에 가니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결국 비슷한 걸 보고 사긴 했는데, 네가 걸고 있었던 것만큼 멋있는 건 찾아내지 못했어.


그 목걸이 말이야, 고향을 떠나 차갑고 외로운 도시에서 꿋꿋이 견뎌내고 있는 네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었겠지? 나도 그런 게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도 외로움을 타.





매일매일 놀러 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못 지켜서 미안해. 사실대로 말하자면 바빴다거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 정말 너와 네 아버지를 만난 날 행복했거든? 근데 그 다음 날 또 그곳에 가서 길 한가운데 앉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식은땀이 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사람들로부터 받을 시선이 공포스러워졌고.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는 날까지 너와 네 아버지가 있는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던 것은 사실이야. 넌 나를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뙤약볕 아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서고, 졸음을 참지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너와 네 아버지를 몇 번이나 더 보았으니까.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문득문득 너와 함께 앉아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그 거리와, 너희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매만지던 안데스 지방의 깃발, 그리고 뭔가 사연이 많이 담겨 있을 것만 같던 네 피리 소리가 너무나 그리워. 그리고 그 목걸이. 네 수호신.



넌 아직도 그곳에 그날 그 모습으로 앉아있겠지?


많이 보고 싶다. 네가 내 팔목에 매어 준 단조롭지만 예쁜 팔찌는 아직까지 잘 지니고 있어. 잘 때도, 씻을 때도 빼지 않아.


잘 지내고 있어, 조금은 덜 외롭게. 조금은 더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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