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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n 28. 2021

원래 사람은 다 모순 덩어리야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가족들이랑 친구들한테 우리 사진을 보여줬어. 모두들 우리가 너무 잘 어울린대! 다들 너를 만나고 싶어 해. 이건 말하기 좀 창피한데… 엄마는 내가 너랑 결혼할 것 같은 가봐. 며칠 전, 형한테 '네 동생이 곧 결혼할 것 같다'는 말을 했대. 남미 사람들 진짜 웃기지? 근데 우리 엄마가 촉이 진짜 좋으신 분이 거든. 그냥 그렇다구. 지금은 어디쯤에 있어? 많이 보고 싶다."

일어나 보니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 메시지를 보는데 갑자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관계에 있어서 도망을 잘 다닌다. 모두로부터 도망을 잘 다니는데- 특히 엄마에게서 도망을 가장 잘 다닌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고? 거기 내 절친이 사는데 - 걔네 집에서 지내는 게 어때? 그 친구도 우리 사진을 봐서 너를 이미 알고 있거든."

"어색할 것 같은데…"

"네가 남미를 떠나기 전에 잠깐이라도 다시 브라질로 와 줬으면 좋겠어. 힘들겠지?"

"응 …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럼 내가 2달 뒤쯤 너 있는 곳으로 갈게. 나도 늘 페루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거든. 같이 마추픽추에 가자!"

"난 혼자 여행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데. 너를 만났다는 이유로 내 계획이 바뀌는 게 싫어."


사실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거였다. 난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무섭다. 감정은 무조건 숨기는 게 안전하다. 그런데 다니엘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무섭다. 문제는 그런 사람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답하고 있다는 것.



대화를 마치고 에비타의 무덤이 있는 레콜레타로 향했다.



에비타, 비천한 성녀이자 거룩한 악녀라 불리었던 여성.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것도 극단적인 두 지점으로 나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술가들에게 좋은 영감이 되어 주었다. '양면성', '모순점' - 이러한 것들 안에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에비타의 무덤

뭐가 중요할까. 성녀이면 어떻고 악녀이면 어떤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에비타를 사랑한다. 체 게바라보다 에비타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아르헨티나를 떠나 있었던 체 게바라보다 자신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주었던 퍼스트레이디 에비타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거겠지.


부르주아 집안의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와 영웅이 되었던 체 게바라보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가난 속에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에바 페론, 즉 에비타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지점이겠지.




넌 처음에 나를 좋아하지 조차 않았잖아.


관계가 끝날 때면 한 명도 빠짐없이 내게 이 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면 강하게 끌어당기는 동시에 강하게 밀어낸다는 걸.


여행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반사적으로 싫은 점부터 찾기 시작한다는 것을. 매력을 많이 가졌으면 가졌을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내가 머물면 안 되는 이유를, 믿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다는 것을.


'여긴 안전하긴 한데 너무 재미없어. 여긴 재밌지만 너무 위험해. 계절이 하나밖에 없어.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친구가 너무 많아. 가족 관계가 좀 복잡한 것 같아. 너무 표현을 크게 하잖아. 같이 있으면 내가 너무 많이 드러나.'



나는 솔직하지 않다. 모순된 말과 행동도 잘한다. 그리고 거짓말도 잘한다. 어릴 적, 취미란에 '거짓말하기'라고 쓰고 싶었을 만큼 나는 상대를 잘 속였다. 원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었지만 모두를 속이고 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옳은 말을 하면서도 그릇된 행동들을 했다. 그릇된 말들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는 옳은 것들을 믿었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몰래 기도를 했다. 그 간극이 주는 스릴감을 즐겼다.




그러니까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래서 웬만하면 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미워하며 끝이 났다. 온 힘을 다해 사랑한 것일수록 온 힘을 다해 미워해야 끝난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지 않아'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의사도 있는데 - 머리로는 알겠으나 마음으로는 모르겠다.


한참 동안 경계를  두다가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내 안의 불안은 조금 사라진다. 안전 테스트를 1000번 정도 거친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사랑을 하기 시작하는데 상대는 이제 그만 떠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에비타가 성녀인지 악녀인지에 대해 나는 관심이 없다. 에비타는 성녀였고, 악녀였고, 성녀이자 악녀였고,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닌 존재였겠지.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중요한 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에비타를 사랑했다는 것. 에비타는 사랑받는 존재였다는 것.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여전히 에비타를 그리워한다는 것.


사람을, 도시를 밀어낼 때 - 나는 내가 그것들을 사랑하게 될 거란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밀어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었다. 단지 말과 행동이 성숙하지 못했고, 일치되지 않았을 뿐. 그래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런 지점들 아닌가.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지점. 우리가 인간으로 밖에 남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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