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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ourney Mar 25. 2021

여성을 자유롭게 만든 디자이너, 샤넬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샤넬은 70세가 넘는 나이에 2.55백을 만들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손이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은 매고 다닐 수 있는 체인백이 등장하면서 양팔과 양손에 자유를 얻었다. 2.55백은 백이 론칭한 날짜인 'February, 1955'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February'에서 '2', '1955'에서 '55'를 따서 샤넬의 2.55백은 그녀가 72세가 되던 해에 탄생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들은 샤넬의 체인백에 열광하고 있다. 2.55 플랩 백과 클래식 플랩백은 현재까지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가방이다. 결혼예물로 클래식 라인의 가방을 선호하고 예비신부들의 워너비(wannabe, 가지고 싶은 물건)다.


샤넬 2021/22 가을-겨울 컬렉션                                                                   샤넬 체인


샤넬백의 체인은 샤넬의 어렸을 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넬은 동생과 함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버려졌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고아원의 사감이 허리에 체인을 달고 다녔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플랩백의 체인은 탄생했다. 장돌뱅이 아버지는 샤넬과 동생을 고아원에 버렸고 동생은 그곳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샤넬은 고아원에서 바느질을 배워 10대 후반에 돈을 벌기 시작했다. 


CC로고가 겹쳐진 클래식 플랩백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가 2.55백을 재해석해서 만들었다. 코코 샤넬(Coco Chanel)에서 'CC'를 따서 플랩백의 시그니처 로고가 시작됐다. 코코는 샤넬 하면 익숙하게 연결되는 이름이지만 샤넬은 코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샤넬은 18세부터 재봉사로 일을 하면서 투잡(two job)으로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코코리코' 노래를 부르면서 '코코'라는 애칭이 만들어졌기에 샤넬은 코코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좌: 2.55 플랩백/ 우:클래식 플랩백 <출처: 샤넬 공식 홈페이지>


코코 얘기를 하면서 샤넬의 남자들에 대한 스토리를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샤넬 브랜드의 시작도 그녀의 남자를 통해서였다. 샤넬은 25세의 나이에 부유한 집안의 장교였던 발장의 정부(아내가 아니면서 정을 두고 깊이 사귀는 여자)가 된다. 그를 통해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을 알게 됐고 발장의 지원으로 그의 아파트 1층에서 모자를 팔기 시작했다.


그 후 샤넬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발장의 친구인 영국 폴로 선수, 카펠과 사랑에 빠졌다. 카펠의 지원으로 1910년대 캉봉 거리에서 '샤넬 모드' 가게를 오픈한다. 샤넬과 운명적 사랑을 했던 카펠은 1918년 영국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 카펠의 정부였던 샤넬은 계속 관계를 이어갔지만 1919년 카펠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카펠이 죽었을 때 샤넬은 본인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할 만큼 상심이 컸다.


2011년 칼 라거펠트는 샤넬이 사랑했던 카펠의 애칭 '보이'의 이름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보이 백'으로 불리는 보이 샤넬 플랩백 역시 샤넬 매장에서 현재까지 인기가 많다. 마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가 보이 백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보이 샤넬 플랩백 <출처: 샤넬 공식 홈페이지>


샤넬은 체인 백뿐만 아니라 의복에서도 여성을 자유롭게 했다.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치렁치렁한 치마 길이를 무릎까지 올렸다. 1910년~1920년대의 패션은 샤넬이 장악했다. 허리라인을 루즈하게 만든 가르손느(garçonne, 프랑스어의 가르송(garçon)의 여성형으로 '사내아이와 같은 여성'이란 의미다.) 샤넬의 옷은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아도 우아한 룩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치마 길이는 무릎까지 올려 여성들이 활동하기 편하게 했다. 샤넬이 치마 길이를 위로 올리지 않았다면 바닥에 닿는 긴치마를 입고 다녔을 것이다. 샤넬이 남성 속옷에 사용한 저지 소재의 원단으로 편안한 룩을 만들지 않았다면 코르셋으로 몸을 쪼이면서 허리와 가슴을 강조한 옷을 입지 않았을까.



디자이너 샤넬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샤넬은 10대 후반에 재봉사로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돈 많은 남자의 여자로 그냥 즐기면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일을 택하고 사랑했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옷에 반기를 들고 본인만의 스타일을 담았다. 샤넬의 진취적인 생각 덕분에 여성의 가슴은 풍성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보이는 코르셋 룩에서 해방됐다. 치마 길이도 이전보다 짧아져서 편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고 여성들도 사회생활하는데 도움이 줬다.


샤넬 하면 트위드 룩도 빼놓을 수 없다. 트위드 재킷은 천만 원에 근접하지만 옷을 뛰어넘어 예술작품이다. 샤넬은 모델의 치수를 재서 재단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델을 세워놓고 수정하고 작업한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샤넬의 트위드는 입체적이다. 누군가는 샤넬의 트위드를 따라서 만들려고 그녀의 트위드 재킷을 뜯었다가 다시 재봉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샤넬의 옷은 시작하는 접근 자체가 기존과는 달랐다.



1910년대 모자가게를 시작으로 의류와 가방, 보석, 화장품까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 샤넬은 한 해 13조 원을 벌어들이는 거대한 기업이 됐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사람들은 샤넬에 열광한다. 백화점 오픈 전부터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오픈런 현상은 샤넬 브랜드가 가장 뜨겁다. 기존의 검은색은 장례식장에서만 입는다는 편견을 깨고 세련된 컬러로 만든 것이 샤넬이다. 지금도 블랙과 화이트는 여전히 샤넬을 대표하는 컬러로 존재한다. 샤넬은 여성을 여러 면에서 자유롭게 했다. 꾸밀 줄 아는 여성을 강조한 그녀의 철학은 현재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패션은 시대에 따라 변해도 그녀의 스타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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