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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 Oct 15. 2021

학습 목표 세우기





































































































































  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자치구에서 진행하는 화상영어학습을 신청해서 두어달 학습했던 적이 있다. 원어민선생님과 1:4 수업을 하는데, 모니터로 다른 친구들의 수업하는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었다. 가관이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열심히 하는데, 몸을 베베 꼬고 대답도 안하고 마이크에 바람만 쉭쉭 불어넣는 친구들은 딱 봐도 엄마가 억지로 시킨게 아주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자발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게 열 집에 여덟 집은 부모의 지시에 의해서 아이가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집 중에 80%의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싫어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 문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어쨌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 긴 시간을 자녀와 지속적인 '공부싸움'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주 양육자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준비가 되어야 그 다음에 학원을 보내든 과외를 시키든 좀 더 수월하게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공부, 꼭 시켜야 하는가.

  첫째가 7살 때까지만 해도 정말 수없이 하던 고민 중에 하나이다. '그까짓 공부, 안해도 잘 살지, 자기 하고 싶은거 하며 살면 되지, 요즘엔 유튜브, SNS만 잘 해도 금방 돈 버는데 뭐.'라는 생각과 '그래도 내가 공부를 잘 시켜 주면,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까? 만약에 공부를 잘 해서 인서울이라도 하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연봉이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부딪혔다. 그러다가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하고 나서 생각이 좀 굳혀졌다.


나는 이 아이의 '부모'이고,

아이를 사람답게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강압적이지 않은 선에서 아이를 끝까지 교육 시키는 것이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전제가 되었다. 무슨 상황이 닥치든 이 개념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많은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부모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예전에 나는 좀 더 후자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오히려 전자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갈라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킬 것인가. 그저 사교육의 힘을 빌려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보낼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내가 먼저 아이의 밑바탕을 잡아 줄 것인가. 답은 심플했다. 당연히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주는게 맞는 것 같았다.



2) 학습 목표-부모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하나는, 아이가 학생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스터디그룹같은 분위기로 열띤 토론을 하며 하하호호 즐겁게 공부하는 것. 두 번째는, 오은영박사님께 배운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태도가 ‘학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학습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사람’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말은 그럴싸해보여도 이건 ‘내’ 목표였다. ‘이래야만 하니까’ 하는 나만의 정당성을 아이에게 들이대며 고작 9살, 만 9년도 살지 않은 아이에게 스스로 학습할 것을 강요하고 내 뜻대로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나부터가 사람답지 않은데 무슨 사람을 키우겠다고. 이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하나보다.


  이렇게 부모들을 각자의 '꿈'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대단히 착각한다.


너를 위해서 수학 학원에 보내주는 것이고,

너를 위해서 한 달에 몇십만원 하는 영어 학원에 보내주는 것이고,

너를 위해서 대학에 잘 갈 수 있게 돕는 것이고,

너를 위해서, 이 모든 일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가 학원을 거부하거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게 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건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모른다. 당연하다. 나는 근 40년을 살아왔고 아이는 이제 고작 10년 남짓 살아 봤다. 알겠는가.

게다가 배신감마저 느낀다. 사춘기 때 아이가 대들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 있어?' 라며.


  제발 다시 한 번만 제대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했는가? 아이가 먼저 나에게 요구 했는가? '엄마, 나 제발 저 영어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 좀 받고 싶어요..! 실력을 평가 받고 2시간이든 3시간이든 앉아서 영어 공부 너무 하고 싶어요!'라고, 아이가 스스로 나에게 요구한 적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다. 간혹 가다 보면 엄마에게 먼저 학원에 보내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세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순수하게 정말 학원에서 부족한 학습을 채우고 싶어서, 두번째는 친구가 다니기 때문에, 세번째는 부모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보통 세번째의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런데 부모들은 잠깐 자기 최면을 건다. '그래, 이렇게라도 아이가 하잖아. 괜찮겠지. 자기가 원한다잖아. 아주 잘 됐어.'라고. 이런 친구들은 대게 불안에 의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즐겁지가 않다. 스스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결과에 많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주고 넘어가야 한다.


  잠시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해보자.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하루 6시간씩 앉아서 죽게 공부하는 것?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아이의 수준 확인을 위해 실행하는 시답잖은 단원평가에서 100점을 받아오는 것? 다른 아이들보다 8단 조금 더 잘 외우는 것? 좀 더 원을 크게 그려보자. 궁극적인 목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아이의 끄트머리에 어떤 모습이면 좋겠길래, 이렇게 아이가 5살 때부터 영단어를 외우게 하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가. 100년 인생이라 치면 그 100년이 되는 해에 대체 아이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길래. 이제 만 4년,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고, 이제 겨우 말하기 시작하고 세상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이 아이에게 공부를 못 시켜서 안달인 것인가.


 보통의 부모들은, 아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조금 더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조금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전부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의도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공부를 푸쉬하는 것을 선한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다 이해하고, 너무 공감한다. 그런데 살아봐서 알지 않은가. 10만원을 가진 자와 100만원을 가진 자의 만족도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부모가 아이를 학습시키는 초목표는, 좀 더 철학적이고 추상적이어도 좋다. 그리고 그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이념과 사상을 아이에게 강요가 아닌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것까지가 부모의 역할인거고,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우리 아이의 몫인 것이다.



3) 학습목표-아이

  여하튼 아이가 학습을 하는 목표는, 오롯이 아이의 목표여야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뭘 계속 빼고 더하고 생각을 해야 하고 그걸 자꾸 쓰라고 하는 이 어려운 순간이, 고작 ‘대학’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동기부여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그 ‘대학’의 의미를 잘 알지만 아이들에게 대학이란 그저 초등학교보다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곳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앉혀놓고 '니가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와 같은 나부터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읊조리기는 싫었다. 이 아이가 지금 들고 있는 연필 끝이 아주 생동감 있게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 그 마음을 움직이는 찐한 목표가 있어야 했다. 


  '내적 동기'. 이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아이마다 성장 속도는 다르다. 벌써부터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한 아이가 있는 반면에,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도 있다. 그게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이다. 경험치가 없고 아직 마음에 와 닿는걸 찾지 못했으니, 그저 지금 당장의 즐거움-놀이터, 게임-에 더 열을 올리는게 당연한거다. 그러면 부모는 '너는 대체 왜...!'라면서 아이 자존감을 떨어뜨릴게 아니라, 같이 찾아주면 된다. 같이 경험치를 올려주고, 여기저기 함께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면 된다. 그러나 어쨌든 초등학교 부터는 의무교육이니, 공부는 시켜야 하므로 이런 아이들은 일단 단기적인 목표를 만들어주는게 좋다. 바로 '보상과 칭찬'이다. 긴 인생 목표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 단기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집중해서 30분 동안 일기를 다 쓰면, 게임을 30분 시켜준다든지,  수학문제 10문제를 다 풀면, 같이 슈퍼에 가서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푸쉬 팝을 사주는 식으로 지금 눈 앞에 있는 목표물을 향해 달려보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다. 가장 쉽고 효과 빠른 방법인데 이게 왜 어렵냐면, 부모도 아이도 '꾸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 못하겠어' 하고 학원으로 보내버리는데, 1학년 딱 1년, 아니 한 학기만 이렇게 하면서 그 주기를 조금씩 늘려 나가면 눈을 초롱거리며 공부하겠다고 달려드는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이 방법을 아주 잘 쓰고 있고,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려고 한다.


  어쨌든 초등학교까지는 이게 전부이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주도학습'이 잡히지 않으면, 부모는 뼈 빠지게 번 돈을 학원 운영비로 후원해주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싫다면 오늘 하루, 또는 몇 일이 걸리더라도 내 생각부터 잘 정리해보는 것이 이 학습목표 설정 단계이다.

  초등학생까지는 아직 그렇게 인생의 초목표를 스스로 세울 만큼 성숙하진 않아서, 그간 옆에서 지켜봐오던 양육자가 조금 서포트 해줘야 하는 것이다. 영화 ‘소울’에서 나오는 그 ‘불꽃’을, 부모가 놓은 불꽃이 아닌 이미 아이 안에 들어 있는 그것을 함께 찾아야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은, 아이의 ‘불꽃’에 알맞은 대학과 직업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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