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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 Oct 13. 2021

책과 친해지기







































































































  그러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대체 집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면 좋을까.


  나는 교육열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학원만 안 보냈다 뿐이지 호수에 떠 있는 백조의 발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학원을 보내기 전에 내가 집에서 먼저 찾아주고 싶은게 있다. ‘공부의 즐거움’이다.

     

  공부가 어떻게 즐겁냐며 개떡 같은 소리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나도 중,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안 했던 학생이라 그 말에 100% 공감한다. 하지만 강렬한 ‘내적 동기’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던 내가 원하던 전공과로 대학을 입학하자 책을 읽기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나서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더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고 노트필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 힘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취업을 했는데, 타의에 의한 취업이거나 원치 않는 곳에 그저 돈이나 벌 목적으로 취업을 했다고 하자. 매일매일이 지옥 같고 내가 내 발로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퇴사를 갈망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에 취업했다고 생각해보자.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야근도 자처할 것이다. 바로 이 차이다. 우리 아이들도, 강렬한 ‘내적 동기’를 가지고 공부에 임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 어떤 학원에서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집에서, ‘부모’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취학 아동 때까지는 이 즐거움만 만들어 주면 된다.

혹시 이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학원에 보내거나 학습지를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학습의 즐거움을 만들어 주는 일은 땅에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길 기다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부단한 노력기다림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책’과 친해져야 한다.


하아.. 우리 애는 정말 책을 안 봐..!



  이런 말을 하는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봤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한다든지, 또는 부모의 욕심에 질려버리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우선 아래의 문구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


<무엇을 어떻게 읽든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열 가지>

첫째,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둘째, 건너뛰며 읽을 권리

셋째, 책을 끝까지 읽을 권리

넷째, 책을 다시 읽을 권리

다섯째,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여섯째, 보바리슴(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을 누릴 권리

일곱째,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여덟째,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아홉째,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열째,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


  생각해보자.


첫째,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하진 않았는지,

둘째, 띄엄띄엄 읽지 말고 꼼꼼하게 읽으라고 하진 않았는지,

셋째, 필요한 부분만 얼른 보고 덮게 하진 않았는지,

넷째, 그 책은 읽었던 책이니 다른 책을 읽자고 하진 않았는지,

다섯째,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며 내 기준에 맞는 책을 골라 손에 쥐어주지는 않았는지,

여섯째, 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끊고 자꾸 질문하고 다른 소리 하면 멈추게 하진 않았는지,

일곱째, 책은 꼭 책상에 앉아서 읽으라고 하진 않았는지,

여덟째, 너는 왜 군데군데 골라 읽냐며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으라고 하진 않았는지,

아홉째, 책 읽을 땐 조용히 하는 거라며 입을 다물게 하진 않았는지,

열째,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냐며 추궁하거나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잔소리 하진 않았는지,

이렇게, 아이의 '독자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위의 열 가지 권리는 내가 아이 학습 지도할 때 유용하게 참고했던 '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윤희솔'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다니엘 페다크' 작가가 쓴 '소설처럼'에 나오는 문구이다. '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은 뒤에서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은 책인데, 이 책을 쓴 선생님도 이 문구를 보고 '머리가 띵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혹시 당신의 머리도 띵하진 않은지.


  정말 많은 학습 지도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강조하는게 바로 '책 읽기'이다. 교육과정이 암기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문해력'이 강조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아이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돈'이 아니라 '책'이라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쉬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책 읽어주기’이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루에 단 한 권이라도, 같은 책이라도 아이가 원하면 다시 읽어 주고, 다시 읽어줬다.


  아이가 2살, 3살 이렇게 어릴 때는 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그렇게 하도록 놔뒀다. 그래서 몇 십만 원짜리 새 전집은 사지 않았다. 만약에 산다 하더라도 중고서점에서 아주 저렴한 책으로 샀다. 그래야 아이가 책에 낙서를 하고 찢어 먹어도 화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책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나에게 우주 같은 존재인 부모님께서, 나와 아이컨텍을 하며 너무나 재밌는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마다할 아이가 어디 있을까. '우리 아이는 마다하던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혹시 5분, 10분, 길게는 30분의 시간을 집중하길 바랐던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이 나이 때의 아이에게는 단 1분이라도 좋다. 단 30초라도 좋다. 그 아주 잠깐의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5분이 되고 10분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저 ‘즐거움’이다. 나는 아직 한 줄도 못 읽었는데 아이가 자동차 장난감 쪽으로 기어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고, 같이 기어가서 억지로 이 책을 들여다보게 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책을 내려놓고 '우리 OO가 자동차가 보였구나~?' 하고 자동차 놀이를 해주면 된다. 그러다가 아이는 또 반대편으로 와서 펼쳐져 있는 책을 보고 침을 묻히거나 잡아 보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자연스럽게 '어~ 맞아, 엄마가 아까 이거 우리 OO 보여줬었지~? 계속 한 번 읽어볼까~?'라고 하면 된다. 육아를 하면서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이제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를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 다니게 놔두면 된다. 그러면 서로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좀 더 커서 '아니야'를 입에 달고 사는 4살, 5살 때에는 책에 있는 여러 가지 의성어 의태어만 잘 읽어줘도 아이들은 까르르하며 정말 즐거워한다. 물론 그 이전의 나이 아이들도 의성어 의태어를 얼마나 잘 읽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아이가 책이 재밌으면 무한반복으로 한 가지 책을 들고 오는데, 그럴 땐 부담 갖지 말고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면 좀 더 즐거워질 수 있다. 그리고 4살, 5살도 여전히 집중력이 짧기 때문에, 나는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다시 집중시켰다. 하나는 ‘허억, 이거 봐봐.’라며 시선을 끄는 방법이다. '어머, 어머, 이거 뭐야~~?'라고 호기심을 자극하면 아이는 다시 나에게 왔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리듬과 템포'다. 이 글자들을 한 음과 메트로놈 같은 템포로 일정하게 읽다가는 우리 아이들의 발걸음을 돌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과할 정도로 음의 높낮이와 빠르고 느린 정도를 조절하면 좋다. 이게 처음에는 나 스스로 약간 어색하고 힘들 수도 있는데,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재밌어진다. 어느 순간에는 나의 오버액션에 '피식'하고 웃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과감히 웃어버려도 좋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아이도 나를 따라 웃게 된다. 그렇게 웃는 순간들이 많이 쌓이다 보면, 아이의 뇌에 강렬하게 박히게 된다. '아, 책 읽는 거 너무 재밌다.'

  이제 아이들이 좀 커서 6살, 7살쯤이 되면 부모님들은 슬슬 책을 읽어주지 않게 된다. 이제 컸으니 혼자 좀 읽어보라는 것이다. 암담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나이에 맥시멈은 없다. 중,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아이들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이들이 조금 이해하기 힘든 책들을 읽어 줄 생각이다. 물론 그러려면 좋은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하고 사춘기도 잘 넘겨야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그런데, 내가 지치는데도 억지로 읽어 줄 필요는 없다. 아이가 제발 책을 읽어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내가 힘들면 못 읽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정말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 못 읽겠어, 미안해. 다음에 더 재미있게 읽어줄게~?'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쁜 엄마, 못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읽어 줄 수 있는 정도(나는 보통 세 권까지 즐겁게 읽어줄 수 있었다.) 읽어주고 나서 이제 ‘끝~’이라고 책 읽는 시간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굉장히 아쉬워했고, 나는 훨씬 덜 힘들었다. 실제로 더 읽어달라고 떼를 쓰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난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미리 약속을 하고 딱 한권만 더 읽어주든지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든지 해서 잘 구슬려 주었다. 이게 의외의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왔던 게, 아이들이 갈증이 나니까 스스로 책을 찾아 읽었던 것. '풍족' 보다는 '약간의 결핍'이 아이들을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늘 우리 집에는 책을 풍족하게 구비해놓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집에는 읽었던 책 밖에 없게 했다. 이 방법이 아주 베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간도 많이 없고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러워서 차라리 도서관을 자주 갔다. 요즘 아이들 도서관은 정말 잘 되어 있다. 디자인도 너무 예쁘고, 책들도 정말 많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 책들을 집에 갖고 가고 싶어 했다. 여기에도 '약간의 결핍'이 적용되었다. 도서관에서는 대출 가능한 권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책을 많이 가져가고 싶어도 한 아이 당 최대 5권까지만 책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와 함께 아쉬워하며 다음에 다시 도서관에 오자고 약속하면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했다. 게다가 각자의 이름이 찍힌 개인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주면 도서관 가는 즐거움은 배로 상승한다. 자기 이름이 찍힌 카드로 책을 빌리는게 너무 행복한 듯 보였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즐거움'과 '약간의 결핍'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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