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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 Oct 20. 2021

내 새끼 공부지도(3)

예습과 복습


































































































































  아마 선행을 시키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의 자존감. 과연 선행하면 우리 아이 자존감은 괜찮을까?


  구구단을 예로 들어 보겠다.

첫째가 일곱 살 때 어린이집 앞에 구몬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나에게 구구단을 미리 시켜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던 첫째 아이의 문제는 감정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감정조절, 특히 울음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구구단이나 학습은 뒷전이었다. 일단 내면이 좀 더 강해져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 어떤 일을 겪어도 강인하게 버텨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6세, 7세 때 덧, 뺄셈은 기본이고 구구단까지 마스터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굳이 지금 시켜야 하나, 중요한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쯤 구구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늦게 나올 단원을 6세, 7세부터 준비할 일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곱셈 파트를 아주 수월하게 넘어갔던 건 아니다. 2학년 1학기 끄트머리에 나오는 구구단도 2가 두 묶음이면 네 개, 2가 세 묶음이면 여섯 개다, 이런 정도의 개념 훑기 식이어서 여름 방학 동안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곱셈 단원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아이들 곱셈을 익힐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알림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는데, 내 머릿속에 일의 우선순위에 구구단은 없었다. 그렇게 2학년 2학기가 되었고, 본격적인 곱셈 단원에 들어가자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께서 다음 주까지 집에서 아이가 구구단을 다 외우는 모습을 확인하시고 사인해서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그때 아차 싶었다. 예습은 좀 할 걸. 갑자기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한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전지에 2단부터 9단까지 쭉 적어 놓고 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현이가 학교에서 배운 게 있어서 2단, 3단, 5단, 9단은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나머지 4, 6, 7, 8단만 외우면 되는데, 쉽지가 않았다. 중간에 몇 번이고 아이가 힘들다고 하고 못 외우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는 화내지 않고 열심히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공부할 때만큼은 절대로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지 말자고 늘 얘기해왔기 때문에 서로 속이 터질 것 같은 게 눈에 보이는데도 끝까지 화내지 않고 첫째를 독려하며 구구단을 외우게 했다. 그렇게 이틀..? 첫째 아이는 구구단을 다 외워서 나에게 사인을 받은 뒤 날짜에 맞게 학교에 가지고 갔다.


  이틀이었다. 이아이를 딱 잡고 앉혀서, 2X1=2, 2X2=4, 2X3=6... 이렇게 구구단을 딱 이틀을 같이 외웠더니 아이가 구구단을 외웠다. 이건 절대로 우리 집 아이가 천재라서 그런 게 아니다, 학교에서 다 개념학습을 하고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부족한 부분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거를 굳이 3년도 더 전부터 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확성기에 대고 전 국민에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여기서 클린 하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한고비를 넘기고 약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아이와 공부하다가 내가 어떤 질문을 했더니 입을 꾹 닫고 말을 안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속에서 천불이 나기 시작했다.


  "현이야, 현이가 말을 해줘야 엄마가 답답한 마음이 안 들 것 같아. 지금 엄마가 질문을 하는데 현이가 알 것 같은 물음에도 답을 하지 않으니까 엄마 속이 너무 답답해..."


라고 최대한 솔직하고 침착하게 아이에게 내 심정을 쏟아내자 그제야 첫째가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

  "아.. 현이야, 잘 모르면 모른다고 엄마한테 바로바로 이야기해주면 돼~~ 그러면 엄마가 다시 설명을 해주면 되잖아.. 근데 너가 말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왜 말을 하지 않냐는 주제로 넘어가버리니까.. 모르면 모른다고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어.."

  "응.."

  "현이는 왜 모르면 말을 못 하겠어..?"

  "..."

  "어떤 감정이 들길래 말이 잘 안 나와?"

  "부끄러워."

  "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구나.. 그래 그러면 그럴 수 있지.. 엄마도 예전에 부끄러우면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고.."


  나는 자존감이 굉장히 바닥을 치던 사람이라 우리 아이의 자존감은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는게 있는데, 바로 '비교'와 '모른다고 나무라지 않기'다.

  그런데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나는 나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정말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엄마가 당황하면 아이가 더 당황한다는 것을 9년 동안 익혔으니, 당황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학교에서 잘 몰라서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어?"


  문제를 구체화시켜보기로 했다.


  "응. 친구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를 때 너무 부끄러웠어."

  "그래? 현이가 국어도 그렇고 수학도 그렇고 집에서 하는거 보면 잘하는데 뭘 몰랐을까?"

  "수학."

  "아.. 수학..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서 많이 배워 왔나 보다, 그치."

  "응."

  "근데 엄마가 옆에서 현이 수학 푸는거 이렇게 보고 있으면 못하지 않던데? 어떤게 좀 어려웠어?"

  "곱셈."

  "아아.. 곱셈..! 아직 다 안 외워져서 그랬나 보다..!"

  "응. 맞아. 그런 것 같아."

  "그래, 현이야.. 아직 다 안 외워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모를 수 있지~ 만약에 다른 친구들은 곱셈을 완벽하게 외웠다면 당연히 현이만 모르는게 맞지~"


  아이가 조금 자신감을 얻었는지 한 층 더 밝아진 목소리로 시원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수학이 재밌었는데, 지금은 재미가 없어."

  "맞아.. 두 자릿수 더하기도 지겹고.. 곱셈도 안 외워져 있으니까 재미가 없지? 맞아, 공부가 그런 거야, 현이야. 그래서 항상 '예습과 복습'이 중요한 거야. 뭔지 알아?"

  "잘 몰라."

  "응, 예습은, 현이가 곱셈하기 전에 미리 구구단 표를 익히잖아? 그게 예습이고, 복습은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우고 나서 다시 한번 내가 잘 외웠는지 확인해보는게 복습이야."

  "아.."

  "그래서 현이도 예습으로 미리 훑어보고 복습으로 꾹꾹 다져 놓으면 난이도가 쉬워질 거고, 쉬워지면 현이가 말한 대로 공부가 재밌어지겠지~~?"

  "응..!"

  "ㅋㅋ 그래, 그러면 엄마랑 이번 주말에 서점에 가서 구구단 복습할 연산집이랑, 3학년 1학기 때는 어떤 것들이 나오는지 미리 훑어보러 가보자..!"

  "응!"


  구구단을 미리 안 시켜서 나와 아이는 조금 힘든 과정을 겪게 되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 배우면 된다는 것'과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했다.

  아마 이 고비는 매 해, 매 학기마다 올지도 모른다. 이제 3학년이 되면 과목 수도 늘어나고, 구구단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우리 집은 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한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영어를 배워 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생각날 때마다 내가 스토리북 하나 씩 읽어주거나, 파닉스 문제집 한 페이지 정도 풀이하는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 학원을 찾지 않는다. 난 이번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깨달았다. 진도 나가기 한, 두 달 전에 예습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 오면 복습을 시키자..! 그리고 이런 예습 복습은, 지난번 이야기 한 '습관달력 만들기' 시간에 하면 되니까, 전혀 부담스럽지도, 짜증 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공부에는 편법이 없다. 예습과 복습, 그리고 목표가 뚜렷한 시간 투자. 이렇게 세 가지 정공법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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