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M Oct 22. 2021

결론
































































































































  결론은,


  한 아이의 부모로서 이 아이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고, 지식적인 교육을 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불안감에 의해서 휘둘리는 교육은 지양하자. 지식적인 교육 이전에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게 우선이다. 자존감을 높여 주고 부모와의 충분한 신뢰가 쌓였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특히 유아기에는 사교육에 매달리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 주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이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충분한 내적 동기를 심어주자. 그 내적 동기를 원동력 삼아 스스로 움직이게끔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내 새끼 공부 지도는 내가 끌어가는 게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 속도에 맞춰 한 발, 한 발 내디뎌가는 긴 과정이다. 화를 다스리고, 보상과 칭찬을 확실하게 주며, 예습과 복습만 철저히 해도 공부는 충분하다. 여기에서 아이가 욕심이 생겨서 뭘 더 찾아서 하게 만들어야지, 부모 욕심에 작디작은 아이의 그릇에 이것저것 욱여넣지 말자.


  육아에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맞다. 정답이 없다. 1+1=2라는 값이 나오지 않는 게 육아다. 나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정말 책도 많이 들여다보고 상담기관도 많이 찾아다녔다. 그 끝에 얻은 결론은


아, 정답은 우리 아이에게 있구나.


였다.


  아이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 이전에, 아이와 나와의 관계를 혹시 상하관계로 보고 있지는 않나 한 번만 되짚어봤으면 좋겠다. 아이는 내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대로 따르는 인형이 아니다. 조금 동등한 관계에서, 내가 잠시 내 자녀의 나이로 돌아가서 같은 위치에 서서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는 무슨 생각인 걸까.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함께 이야기 나누고, 힘듦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며 아이 편을 드는 이유는, 내가 사춘기 시절에 방황을 너무 심하게, 오래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소통과 포용'의 육아라기보다는 '명령과 일방적'인 육아를 하셨기 때문에, 나의 사춘기는 더욱더 깊어지고 어두웠었다. 그때 단 한 번이라도 엄마가 내 옆에 나란히 앉아


많이 힘들지, 힘들 땐 엄마한테 기대도 돼.


라고 말해 주었다면 그 방황이 조금이라도 짧아지거나 진폭이 더 작아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보니, 한글 때문에 고민하는 5, 6세 부모님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공부 때문에 아이와 싸우는 부모를 너무 많이 보았다. 얘기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처음에 말했듯이 아이를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두는 건 자칫 '방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아기 시절부터 뺑뺑이를 돌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5세 때 한글 못 쓰는 건 당연한 건데, 옆집 아이가 쓰니까 우리 애를 '한글도 못 쓰는 아이'로 만들지 말고, 제발 유아기 때는 실컷 아이를 놀렸으면 좋겠다.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


  하나는, 둘째(7세) 아이가 3일째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가까운 소아과를 찾았다. 콧물도 없고 기침도 없어서 병원을 안 가고 있었던 건데, 머리를 흔들면 띵하고 아프다길래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았다. 새로 생긴 소아과라 처음 뵙는 선생님께 진료를 보게 되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아이가 3일째 두통이 있다고 해서요~"


  이 대답을 들은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너, 학원 많이 다니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의대를 나오고 공부깨나 하신 분께서, 7세 아이가 두통으로 오니까, 그 첫 질문이 학원 많이 다니냐는 질문인 것이다. 그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유아기에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는 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내가 머쓱해하며


"아니요~ 하나도 안 다녀요~~ ㅎㅎ"


라고 답하자 그제야 안심하신 듯 진료를 이어 나가셨다.


-


  두 번째도 병원에서의 일화다. 둘째 친구 중에 공부에 열성인 엄마가 한 분 계신다. 하루는 그 친구와 그 엄마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논 적이 있는데, 그 엄마가 대뜸 물으셨다.


"현이(첫째) 키 성장 검사했어요?"

"예? 아니요~?"

"아.. 그거~ 이쯤에 꼭 해줘야 한대요...! 성장판이랑 이런 거 검사 한 번 받아봐야 한다던데~?"

"아.. 그래요..?"


 잘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냥 그렇구나, 그런게 있구나 하고 넘기고 있다가, 그 며칠 뒤에 첫째가 발목을 접질려서 정형외과에 가게 됐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께서 큰 문제없다고 약도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하시며 진료가 마무리되고 있을 때, 불현듯 그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의사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쭤봤다.


"혹시.. 아이 키 성장 검사 이런 것도 있나요?"


  가볍게 건넨 질문인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학을 띄며 말씀하셨다.


"어휴..! 그거 다 상술이에요 상술..! 지금 성장판 검사해서 크네, 안 크네 알면, 뭐, 운동이나 음식 섭취는 아무 소용없게요?? 알아서 클 때 되면 다 크고, 나중에 중학교 넘어가서 쑥쑥 클 시기가 지났는데도 '유독' 작으면! 그때 한 번 이상이 있나 검사받아보는 거예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네, 네, 네. 그쵸, 아, 네. 맞아요. 네, 네. 그렇죠."


  그 엄마가 어찌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


  이 두 가지 일화 말고도 내 신념을 증명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 아직까지도 학원을 보내지 않는 내가 그 증인이다.


보여주고 싶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교육자도 아니고

진짜 뭣도 아닌데,

이렇게 잘 넘기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유아기에 학원 그렇게 안 다녀도 되더라,

우리 둘째도 첫째 1학년 때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 학습하는 거 보면서 한글 떼더라,

6세도 학교 수업받으니까 한글 떼는데,

당신 자녀 8세 때 학교 가면 못 할 것 같습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절실하게.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3학년 때도, 4학년 때도 나는, 내 새끼 교육 과정을 낱낱이 공개할 것이다.

그리고 또 이야기할 것이다.

괜찮다고,

불안해하지 말자고.



















이전 09화 초등 2학년 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