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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 Oct 22. 2021

초등 2학년 후기

인성 교육, 교과 과정, 담임 선생님


































































































































1. 인성교육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인성교육에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학교 교과 과정도 상대방의 마음 알기라든지 가족에게 감사하기라든지 하는 인성교육의 비중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이터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요즘 아이들' 수준이 참 대단하다. 유튜브를 많이 봐서 그런지 정보력도 엄청나고 똑똑하기도 엄청 똑똑하다. 왜? 그만큼 교육을 받으니까. '우리 때랑 다르게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가 아니라, 우리 때와는 다르게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온갖 정보가 난무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가 아쉽냐면, '인성'이 아직 부족하다. 당연하다. 세상에 태어난 지 10년도 채 안 되는 아이들이 인성이라는 단어의 뜻이나 제대로 알까?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인성에 대해서는 누가 그렇게 꼬집어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구구단이나 영단어나 잘 외우라고 하지 누가 열심히 양보하라고 하고 선하게 살라고 일러주는가. 이런 도덕적 잣대 없이 아이들이 방대한 정보만 받아들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민식이법을 이용해서 일부러 스쿨존에서 차에 치이고 돈 받아내고 그러는 거다. 절대로. 아이들을 욕할게 아니라 그 아이의 인성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라.


  가끔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바보같이 살면 안 돼, 니껄 왜 쟬 주니, 누가 너 때리면 너도 가서 한 대 때려.' 등.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마음이 선해야 행동과 외모도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가볍게 베풀 수 있는 건 베풀라고 가르쳤다. 다만, 돈은 교환 도구이므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줄 일은 없다고 가르쳤다. 친구에게 맞았을 때 너도 같이 때리면, 해자는 없어지고 모두가 다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딱 6살, 4살 때 서로 손지검을 시작했었다. 나는 그때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 아이의 손이 상대방을 때리려는 순간, 그 작은 팔이 터지도록 세게 쥐어 잡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아이를 보며 낮고, 정확하게 말했다.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동물'이라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폭력을 쓰냐 안 쓰냐의 차이로 갈린다고, 수천번도 더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엉덩이 한 번 때린 적이 없다. 등짝 한 번 안 건드렸다. 내가, 폭력은 동물이나 쓰는 거라고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여기는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다 같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너만 만족해서도 안되고 상대방만 만족해서도 안된다, 서로가 행복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이 한 명의 작은 사람을 착하게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 '착하게 키우면 안 돼~' 같은 소리가 저렇게 편하게 나올까.


  그 사람들이 말하는 호구나 기타 등등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나도 꽤 여러 사람들을 겪어 봤고, 뒤통수도 맞아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뭐 해 볼 건 다 해봤다. 그럴수록 점점 사람을 믿지 않고 벽을 쌓고 가시를 세우는 것이 내 삶의 행복을 향해 가는 올바른 길인지 되물어 봤다. 답은 당연히 NO였다. 물론, 일적으로 머리를 굉장하게 계산하고 불가피하게 사람 관계를 이용해야 할 때도 있다. 마치 정치처럼. 그럴 땐 그냥 일로 하면 된다. 축구게임처럼, 막 전쟁같이 싸우며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선한 삶을 살면 된다. 그게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일상에서 크게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것도 없다. 정확히 딱 하나, 돈거래만 안 하면 된다.

  그리고 미안한데, 착한 사람도 상대방이 나를 이용하는 건지 진심인지 다 안다. 호구냐 아니냐는 분별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착한 것과는 무관하다. 거절 못 하는 거? 그건 그냥 거절을 못하는 거다. 내가 거절함으로 인해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불편해짐을 걱정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건, '걱정'하는 거지, 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좀 이렇게 한 단어에 모든 상황을 다 묶지 말고, 본인이 겪은 과거의 상처들 때문에 아이들을 애매한 어른으로 만들지 말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자존감은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그게 과연 돈만 많아지면 해결될 문제인 건지, 내 마음속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착하게 안 키우기'보다는 '현명하게 키우기'를 알아보는 것이 내 아이 호구 안 만드는 훨씬 더 정확한 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개념을 좀 달리 했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은, 서해 바다에서 잡혀 올라오는 물텀벙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작은 동산에 올곧이 서서 저 멀리 동구 밖까지 내다보는 곧게 뻗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다. 도덕적이면서도 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당신이 못 찾았다고 해서 당당하게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1, 2학년 교과 과정

  기대해도 좋다. 정말 별거 없으니까. 내가 왜 그렇게 아이가 7세일 때 두려움에 벌벌 떨었는지 코웃음이 날 정도로 별거 없다. 1학년 1학기 전반을 ㄱ, ㄴ, ㄷ 그리고 ㅏ, ㅑ, ㅓ, ㅕ를 배운다. 수학에서는 1부터 10까지의 수를 배운다. 내가 어떻게 알게 됐냐면, 첫 아이가 1학년 때 코로나가 터져 학교를 한참 못 가다가 5월부터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치만 그 문제를 다 읽어야 한다니까??' 하면서 어떻게든 유아기 시절에 공부할 구실을 찾는다. 문제 선생님이 다 읽어 주신다. 아이가 조금 부족하고 잘 못 따라오는 것 같으면 지도해주신다. 정 안되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곤 하는데, 그걸 또 그렇게 자존심 상해한다. '아이가 잘 못 따라오고 있어요.' 그러면 '아, 네. 그러면 집에서 좀 더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면 될 걸. '우리 애가 한글을 못한다고? 다른 애들한테 질 수 없지!' 하며 부들부들 떤다. 제발 좀 의연한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건 넘겨야 한다.

  그렇게 1학년 2학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진도는 어렵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습 복습이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하면 된다. 전혀 늦지 않다. 제발 유아기 때부터 공부에 열 올리다가 중학교 사춘기에 들어서 부모와 아이 모두 지쳐서 니가 집을 나가네, 내가 나가네, 싸우지 말고, 어릴 땐 충분히 놀려 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2학년까지는 과목이 국어, 수학이 전부다. 나머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예전에 우리가 배우던 슬기로운 생활이라고 보면 된다.

  국어는 평소에 책 읽기와 앞에 얘기했던 하루 세 줄 글 쓰기라든지, 독해력이나 문해력을 길러줄 수 있는 문제집 정도가 적당하다.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 문제 이해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지금이라도 아이의 무궁무진한 질문을 받아가며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주는 것이, 패드로 가나다 하는 것보다 백만 배 더 유익할 것이다. 앞으로의 수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수능이 전체적으로 논술형으로 바뀐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 이제는 자신의 뚜렷한 생각, 그 생각을 말로 글로 풀어내는 능력, 그리고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수 가르기' 개념이 정말 중요하다. 1부터 10까지의 수를 두 수로 가르는 건데, 셈의 바탕이 되므로 아이에게 '9는 6과 몇으로 나뉘지?'라고 물었을 때 '3'이라는 대답이 바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공깃돌이나 바둑알로 놀이하며 익혀 주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덧셈과 뺄셈' 과목은 학년마다 계속 나오는데, 1학년 때는 한 자릿수의 덧셈 뺄셈이니 그냥저냥 잘하다가, 2학년이 되면 조금씩 어려워하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셈 하기가 지루하기도 하고, 자릿수가 두 자리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수학은 우리가 옛날에 배우던 것처럼 하나의 방식으로만 풀게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33-19라는 문제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받아 내림해서 책상 밑에 열 손가락을 편 뒤 13에서 9를 열심히 빼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방법도 알려 주는데, 이렇게도 한다. 33을 30으로 만든 뒤, 30에서 19를 뺀다. 그러면 11이 된다. 거기에 아까 33에서 먼저 빼놓은 3을 다시 더해주는 것. 이렇게 14를 만든다. 반대로 19를 20으로 만들어준 뒤 나중에 1을 더 빼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하는 힘과, 이 모든 셈 안에는 1부터 10까지의 수 가르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암기교육 세대라면, 지금 아이들은 끊임없는 탐구력과 이해력의 세대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유아기 때 아무리 그 지겨운 연산 집을 시켜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셈이 쉬워지고, 그다음에 복습으로 연산 집을 풀게 해 주면 된다. 2학년 2학기에 곱심 식도 나오니, 2학년 1학기쯤부터 어떤 문제집이든 연산 집 가장 기초단계부터 시작해서 올라가면 2학년 2학기 때 나오는 곱셈 단원 할 때쯤 진도가 비슷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은 가급적이면 본인 실력보다 낮은 레벨의 연산 집으로 자신감을 키워 주고, 아이가 진도가 나가면 나가는 대로 꾸준히 학습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급하게 할 것도 없다. 누가 쫓아오지 않는다. 하루에 한 페이지, 아니 10문제, 또는 이틀에 한 페이지 등 각자 아이의 재량에 맞게 차근차근해나가면 된다. 수학은 자신감이기 때문에 '아, 어렵다'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멀어질 수 있다. 반복적으로 '풀이'에 익숙해져야 그 어떤 계산식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아이의 학습을 도와줄 때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건 '즐거움'.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내가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한마디 할 때마다 아이의 공부에 대한 흥미가 1씩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3.  담임 선생님

  담임선생님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지 말자.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에 대한 '카더라'도 정말 많다.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 '엄마들의 카더라'는 암세포처럼 번져나간다. 나 스스로 흔들리지 말고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만이 항암치료제이다. 부정적인 말들과 시선들을 멀리 치우는 게 좋다. 그래서 차라리 워킹맘이 되어 안 보고, 안 듣는게 낫다고 할 정도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어쨌든 우리 아이를 교육해 주실 분이고 그분 나름대로 직업의식을 갖고 이 일에 임하는 중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그 사람도 더 가시를 세우게 마련이다. 내가 자꾸 우리 아이를 무기 삼아 공격해 들어가면, 상대방도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게 당연하다. 선생님들도 사람인지라 '선바선(선생님 바이 선생님)'이다. 지도하는 방식이 다 다르신데,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엄한 선생님, 부드러운 선생님. 엄한 선생님을 만나면 아직 초1, 초2인데 너무한거 아니냐고 뭐라고 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을 만나면 학교에서 학습을 좀 잡아줘야 한다고 뭐라고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지.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잔소리에 신물이 났는지 모든 말에 방어기제가 가득한 선생님도 계셨다. 안타까웠다. 얼마나 학부모들이 전투적이었으면.

  우리 아이 감쌀 생각은 이제 그만 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자. '편'을 들어주는게 무조건 좋은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어떤 상황을 입력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괏값을 도출해 내는지, 아이는 다 보고 있다. 엄마가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지, 편 들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선생님을 대하는 디폴트 값이 '공경'이어야 아이도 '공경'을 배운다. 엄마는 선생님께 잔뜩 가시를 세워 놓고는 아이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좋은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비판적인 태도를 배운 아이는 모든 상황을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는 1학년, 2학년 모두 '부드러운' 성향의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래서 내가 학교 입학 전 들었던 선생님들의 얼토당토않은 '카더라'를 찾아내기 위해 이 엄마, 저 엄마들에게 선생님 어떠냐고 나름 설문도 하고 돌아다녔다. 결론은, 성격차이다. 다들 소신 갖고 열심히 일하시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첫째 아이가 마음이 여린 이유로 담임선생님과 컨텍할 일이 많았다. 학교에서 1시간을 엎드려 있었다든지 체육관에서 체육을 했는데 모든 게임에 졌다고 좌절하며 집에 간다고 운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우리 아이가 선생님께 혼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완전히 그 반대였다. 아이가 한 시간을 엎드려 있던 날은 속상한 일 때문에 울음이 터져서인데, 아이가 하도 일어나지 않자 옆 친구가,


"현이 계속 안 일어나요..!"


라고 선생님께 SOS를 요청했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 현이 이제 곧 일어날 거야~ 지금은 감정을 좀 추스르고 있는 중인가 봐~ 조금만 기다려주자~"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콱 막혀왔다. 그동안 아이가 울면 빨리 그치라고 다그쳤던 내 과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반성까지 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1학기 초에 한 번, 2학기 중간에 한 번 진행하는데, 1학기 상담 때는 부모가 선생님께 아이의 정보를 드린다. 2학기 때는 선생님께서 지도해보신 우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신다. 그러니까 1학기 상담 때 이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파악하고, 전적으로 믿고 맡긴다는 느낌을 팍팍 실어드려도 좋다. 그 힘을 받고 우리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힘내서 가르쳐주실 테니까.


  그리고 위클래스라는 교내 상담실이 있는데, 많은 아이들이 이용했으면 하는 시설이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를 보내 봤는데, 처음 안내를 받을 때는 상담실이라고 하길래 그냥 작은 사무실 한 칸에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 한 분 정도 앉으셔서 아이를 달래주는 정도겠거니 생각했는데 엄청 전문적이었다. 안 그래도 나는 첫째 아이의 상담치료를 다니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상담을 진행하지 못해서 아쉬운 상태였는데, 상담 선생님도 엄청 프로페셔널하시고 아이도 만족도가 높았다. 2학년 1학기를 쭉 다니고 학기가 끝나갈 때쯤 상담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나도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판단이 서서 종료를 하려고 했는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에 들어서서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에 아이가 다시 위클래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아이는 다시 위클래스 상담실을 일주일에 한 번 씩 다니는 중이다. 교내에 있어서 위클래스 선생님과 약속한 날짜에 수업 끝나고 바로 상담실로 가면 되는 거라 내가 도와줄 일도 없다. 그리고 위클래스에서 있었던 일은 웬만하면 묻지 않았다. 아이도 나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지 않을까. 나보다 더 전문적인 상담 선생님께서 알아서 상담해주셨겠지 하고 그 일은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이렇게 담임 선생님과 위클래스 선생님, 그리고 그 외에도 영양 선생님, 뉴스포츠 선생님, 정말 많은 선생님들이 계신다. 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분들과 싸우는 일이 아니라 협력해서 같이 아이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 내 일이다. 사회에서 받은 상처로 자꾸 날을 세우지 말고, 내가 부당하다 싶은 일을 당했을 때에는 우리 부모들이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어른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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