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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슨니 Feb 18. 2021

특권의식이 아닌, ‘책임’ 의식

나는 언제 불만을 드러냈나 생각해보니, ‘주인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그래 왔던 듯하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 좀 치워라”는 말을 엄마로부터 많이 들었지만, 고향 집에는 내 방이라는 게 없어서, 공간과 머리카락 주인으로서의 책임 같은 것은 냅다 벗어두고 한 귀로 흘려 들었더랬다. 사실 단순히 이런 이유뿐 아니라 다차원적인 이유에서 그랬겠지만. 어쩌면 ‘가사 일= 어른들 몫’이라고 생각한 어리석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가사노동을 하기 시작한 건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니 헤아려보면, 자취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은 ‘언젠가 떠날 곳’이란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귀찮음이나 어리석음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집안 구석구석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사실 눈길을 보낼 만큼의 공간도 딱히 없었지만. 그나마 내 방의 머리카락을 매일 치우는 걸로 “이 정도면 깨끗하지” 위안 삼곤 했던 것 같다.

2년을 그렇게 살다 이사 온, 거실까지 있는 지금의 집에선 집안 곳곳이 눈에 들어오고, 청결함이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장선다. 마음의 근원은 ‘또다시 더러워졌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 몰라도, 내게 필요한 주인의식이 삶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맞이하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단순히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 때문에 첫 문장으로 썼던 정의를 내린 건 아니다.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삶에서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를 마주할 때는 ‘관계가 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관계 내의 주인 의식이 생겼을 때인 것만 같고, 윤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부당하다 여기는 때도 ‘그 문제를 내 것 삼았을 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착취와 부당한 목적의 ‘주인 행세’는 잘못되었지만 삶에서 선명하고 뚜렷한 주인의식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어떤 영역에서 선명하고 뚜렷이, 그리고 공공선 차원의 주인 의식과 인식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주인 행세’하며 퇴보와 역행에 손 들어주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주인 의식이 피해로 가닿지 않을 수 있기를 늘 점검해야, 세상의 일원으로서 ‘책임’이란 단어를 조금은 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나를 점검하는 건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주인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주어지지 않는다. 마땅한 책임을 다할 때, 책임져야 할 몫을 인지할 때, 그제야 비로소 ‘주인 됨’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책임, 공동체의 책임, 사회의 책임은 지속적으로 점검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건, 삶이나 사람으로서 정의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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