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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슨니 Jun 24. 2021

나로 살기 고되지만 그냥 살기로 했다.

내 마음을 제일 잘 헤아려줄 수 있는 건 나니까.

나는 발전 없는, 퇴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연약함마저 미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남들에 비해 디테일에 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작고 세밀한 것을 자주 놓치고, 대학의 온라인 출결 관리를 힘들어하고, 그런 내게 부단히 실망하곤 한다.  학기마다 있는 사이버 강의의 출결 관리 멘털을 갉아먹는 것들이었다. 작년부터 이어진 비대면 강의 상황은 나의 약함이 무자비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것과 하고 싶은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라,  전자의 경우는 티가 났다. 무엇인가 빼먹거나 놓치는 방식으로. 학기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디테일한 것을 놓치는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수시로 체크 함에도 여전히 무마되지 않는 것이 존재하곤 했다.


그럴 때면 ‘이렇게 노력해도 안되는 거면 어쩌라는 건가싶은 마음에, 삶에 의문이 들곤 고, 그 누구도 위로해줄  없는 깊은 탄식이 자리하게 되곤 했다. ‘라는 심정이었다가도, 수반하는 책임에 짓눌리는 삶이  고되다고.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겠는데 실수마저 변화시킬 수 없는 거면 난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이냐고. 회신없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나의 하루들, 다가올 을 위해선 현재의 별로인(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 상태 머물러 있는 것이 미련한 일처럼 여겨졌다. 이 순간 마저도 미련함의 정도를 따지는 것이 애석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미래를 그려야 하는 대학생이었으며,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정돈하고 회복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실망은 자연스레 나를 배워가는 과정으로 이끌었다.


실망은 혼자 들기 버거운 고인돌마냥 커져 나의 하루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실망의 끈이 길어질수록 나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주한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된 날에는 ‘새로운마음으로 살자고. 어제의 어려움은 어제의 감정과 마음으로 남기고, 힘주어 하루를 다시 시작해보자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어제의 내가 노력했듯, 생은  노력의 연속일 것이라고.


나의 감정을 헤아려주는 은 결국 ‘내 몫’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내면의 힘을 기르는 은, 새삼스럽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말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말이나 글을 통해 하는 전달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닌 타자가 나를 책임져야 할 이유도 없는 세상이고, 그들의 호의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때문에 나는  ‘한계 다루는 힘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지혜라고 믿기로 했다. 때론  한계가 내게 외로움이나 무기력함을 선사할 지라도, 내가  감당해보자는 깜냥으로. 내가 아니면 누가  감당하겠냐는 심정으로. 조금은 지루한 외침이지만 ‘완벽해질  없다면, 완벽하지 않은 나를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즐기는 편을 택하자’고.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스스로를 감당해낼 수 있는 단단한 나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로,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성장할 동력을 잃지 않는 나로. 언제부터 그렇게 기만 한 사람이었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잘난 행세 하길 좋아했다고, 나는 내게 너무  실망을 안겨주고 지냈나. 내가 내게 가장 큰 짐짝이 된 건 아닌가.


의 연약을 볼 줄 아는 것은 나라는 인격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게 실망한 순간마저도 어쩌면 ‘찰나의 기회’였을 거라고. 나의 부족은 부족함대로 마주할  있는 단단함이 내게도 점점 길러져 가길 바란다. 실망하기보단  좋은 해결책을 모색할  있는 내가 되길, 부디  생을 견뎌낼 줄 아는 아량이 내게 생기길, 바라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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