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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찌 Oct 24. 2020

다람쥐와 나무늘보

삶의 가치

울창한 어느 숲.

이 나무 저 나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열매를 따고 있는 다람쥐가 있었다.


톡톡 


"음.. 이건 별로야."


톡톡


"오! 딱 좋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보며 싱싱한 열매인지 확인 후 입안에 저장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나무를 타던 그때, 윗 쪽 나뭇가지 사이에서 자고 있는 나무늘보가 눈에 띄었다.


'어휴 저 한심한 놈...'


태평하고 느긋한 나무늘보가 영 못 마땅했던 다람쥐는 혀를 끌끌 찼다.

차라리 놀면 보기라도 좋지 저렇게 잠만 자는 인생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참 팔자 좋다."


다람쥐는 옆에서 들으라는 듯 비아냥댔다.

하지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러던가 말던가.

보다 못한 다람쥐는 나무늘보를 흔들었다.


"야 늘보! 일어나!"


영문도 모른 채 눈을 껌뻑이며 잠에서 깨어난 나무늘보였다.


"응? 뭔 일이야?"

"너 먹이는 있어?"

"먹이? 이 근처에 많잖아? 아 흠..."


나무늘보는 잠에서 덜 깬 채 하품을 크게 했다.


"아니 모아놓은 먹이! 너 이렇게 살다 나중에 무슨 일 닥치면 어쩌려고 그래?"

"응? 그때 가서 생각하지."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난 그냥 이렇게 먹고 자고 경치 구경하는 게 좋아."

"넌 욕심이 없니?"

"욕심?"

"나중에 뭔 일 있어도 날 찾을 생각 하지 마!"

"..."

"삐쳤냐?"


쿨쿨


"쳇!"


.

.

.


숲 밖의 인간이란 존재들은 그들의 욕심으로 환경을 점차 변화시켜 나갔다.

그래서 여기 숲도 사계절 따뜻한 곳이었지만 이상기후로 날씨는 점차 쌀쌀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창고는 열매로 가득 찼지만, 추워지는 날씨 탓에 다람쥐는 쉬지 않고 열심히 열매를 모았다.

이윽고 겨울이 되자 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열매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났을까?

춥고 배고픔에 결국 나무늘보는 다람쥐를 찾아왔다.


"여긴 어쩐 일이야?"

"미안한데... 열매 한 알만 줄 수 있니?"

"내가 지난번에 한 말 기억하니?"

"응... 도와주면 내가 꼭 갚을게..."

"잠만 자는 네가? 느려 터진 네가? 뭘 어떻게 갚을 건데!"

"..."

"너에게 줄 열매는 하나도 없어!"


화를 내며 문전 박대했다.

그렇게 냉정히 보냈지만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불편했다.


'그래 창고에 있는 거 내가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련한 놈 한 번 도와줘야지'


열매 서너 알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추운 날씨, 멀리 가치 못한 채 엉금엉금 기고 있는 나무늘보의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야 이거 받아."

"고.. 고마워... 나중에 내가 꼭 갚을게."

"됐고! 멋진 갈고리 발톱 놔뒀다 뭐하냐! 앞으로 나처럼 부지런히 살아!"

"응... 고마워..."


연신 고맙다고 눈을 껌뻑이는 나무늘보가 귀여워 보였다.


.

.

.


그렇게 매서운 겨울은 지나가고 날이 따뜻해지자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도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다.

다람쥐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다시 먹이를 구하러 다녔다.

이나무 저 나무 돌아다니며 살펴보던 중 여전히 윗 쪽 나뭇가지 그늘 사이에서 자고 있는 나무늘보가 눈에 띄었다.


"야! 잘 지냈냐?"


눈을 껌뻑이며 나무늘보는 일어났다.


"응... 덕분에 잘 지냈어"

"지난번처럼 고생하지 말고 나처럼 미리 준비하자."

"생각해줘서 고마운데 그건 힘들 것 같아."

"왜?"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에겐 맞지 않거든"

"뭐? 누군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그건 너 성향이 그런 거고.. 난 이렇게 지내는 게 행복한 걸."


자신의 호의가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언짢았다. 


"내가 다시는 너 도와주나 봐라!'"


그 길로 헤어진 다람쥐는 더욱더 먹이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여름이 오고 산림은 더욱더 울창해졌다.


번쩍!

우르르 쾅쾅

툭. 툭. 쏴아-


번개가 치고 엄청난 비가 오는 밤이었다.

매일마다 먹이로 쌓여가던 창고를 확인하던 다람쥐는 오늘 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예전과 달리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것이었다.


'이대로 두면 물에 잠겨 먹이가 다 썩어버릴 거야.'


부지런히 창고에 있던 먹이를 윗 쪽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해 창고는 물론이고 집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눈물을 흘리며 악착같이 먹이를 옮겼다.

그때였다.


"위험해 어서 올라와!"


억수같이 장대비 속에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나무늘보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 여긴 잠겨버릴지 몰라!"


"걱정하지 마! 나 엄청 빠르거든! 내가 이거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아앗!"


갑자기 불어난 물살에 다람쥐는 휩쓸려 내려갔다.

나무와 땅에서 재빠른 다람쥐였지만 물에선 전혀 상황이 달랐다.


"어푸! 어푸! 사람... 아니 다람쥐 살려!"


정신없이 물을 마시며 허우적댔다.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뭔가 허무하고 억울했다.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정신이 혼미하던 그때, 물속에서 낚아채듯 다람쥐 잡아 올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갈고리였다.

떠내려가는 다람쥐를 구하려 나무늘보가 헤엄쳐 와 줬던 것이었다.


"내가 땅에선 느려도 물에선 엄청 빨라."


품에 안긴 다람쥐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든든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비는 점차 그쳤고 다행히 둘 다 무사했지만 불어난 물에 다람쥐의 집과 창고는 망가져버렸다.


"구해줘서 고마워..."

"너도 지난 겨울날 구했잖아 난 약속을 지켰을 뿐이야."

"그래도 그땐 내가 엄청 잔소리했는데 미안해..."

"아니야 그나저나 열심히 모은 열매가 다 사라져 버렸네. 어떡하지?"

"괜찮아 지금부터 다시 모으면 되지."

"힘들지만 나도 열심히 도와줄게."


그 말에 다람쥐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넌 다람쥐가 아니잖아. 내가 가끔 지칠 때 열매 들고 놀러 갈게"

"내가 경치 좋은 곳 발견했거든 앞으로 거기로 놀러 와"


마주 보고 웃는 둘 사이로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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