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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Aug 16. 2019

남편 뒷담화를 시작하며

나의 뮤즈가 된 남편

“화장을 왜 이렇게 진하게 하고 운동을 가?”


운동을 하러 나서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선크림에 틴트를 조금 발랐을 뿐인데. 아기를 안고 웃는 그의 말에 나는 짜증이 확 났다. 내가 아기를 맡기고 운동을 가는 게 싫은가, 어디서든 예뻐 보이고 싶은 내가 웃긴가, 설마 내가 피트니스 센터의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 


"아 진짜 짜증 나."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가 변한 걸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는데 내 남편은 귀신 같이 알아본다. 특히 내가 새 옷이나 액세서리를 샀을 때엔 굳이 "예쁘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정말 예뻐서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비뚤어진 나는 "또 돈 썼구나"라고 들으며 짜증을 낸다. 남편은 시각이 예민한 남자고, 나는 나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이 불편한 여자다. 남편은 이번에도 내 화장에 대해 "단순히 팩트를 말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나는 "지적질 좀 그만하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러닝머신 위에서 남편과의 대화를 되짚어봤다. 남편은 나쁜 의도를 갖고 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내가 그와 결혼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대체 사회성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기준에서 적절치 않은 말을 할 때가 있다. 나이가 마흔인 여자 지인에게 대놓고 '골드 미스'라고 말했을 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편은 나이는 많지만 능력 있는 싱글녀라고 말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나는 골드 미스라는 단어가 그저 '노처녀'의 다른 말이며, 결국에는 그들을 대상화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어 가도 좁혀지지 않는 나와 남편의 간극은 어쩌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젠더 감수성과 남녀 갈등이 화두가 된 시대에 여자니까 그래, 남자니까 그래, 라는 결론은 게으르며, 심지어 불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나와 남편의 차이를 인정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 남편의 뒷담화>라는 제목으로 남편에 대해 본격 글을 쓰면서 가족의 평화와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하는 이유다.


나의 경험과 생각의 수준은 제한적이라 일반화하기 어려울 테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라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다. 그럼에도 내 글이 '우리 부부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네' 라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상하건대 대부분의 글은 나와 남편의 찌질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우리 부부의 찌질함을 통해 사랑과 배려보다 혐오와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지금의 여자와 남자가 작은 이해의 지점을 찾을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에게 당신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졸지에 나의 뮤즈가 된 남편은 필명으로 쓰느냐고 묻더니 "당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써"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자신에게 검열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꽤나 권위적인 표정이었다. 와이프가 편히 글을 쓸 수 있게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 나의 뮤즈에게 카톡으로 이 첫 번째 뒷담화를 보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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