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러 나서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선크림에 틴트를 조금 발랐을 뿐인데. 아기를 안고 웃는 그의 말에 나는 짜증이 확 났다. 내가 아기를 맡기고 운동을 가는 게 싫은가, 어디서든 예뻐 보이고 싶은 내가 웃긴가, 설마 내가 피트니스 센터의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
"아 진짜 짜증 나."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가 변한 걸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는데 내 남편은 귀신 같이 알아본다. 특히 내가 새 옷이나 액세서리를 샀을 때엔 굳이 "예쁘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정말 예뻐서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비뚤어진 나는 "또 돈 썼구나"라고 들으며 짜증을 낸다. 남편은 시각이 예민한 남자고, 나는 나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이 불편한 여자다. 남편은 이번에도 내 화장에 대해 "단순히 팩트를 말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나는 "지적질 좀 그만하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러닝머신 위에서 남편과의 대화를 되짚어봤다. 남편은 나쁜 의도를 갖고 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내가 그와 결혼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대체 사회성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기준에서 적절치 않은 말을 할 때가 있다. 나이가 마흔인 여자 지인에게 대놓고 '골드 미스'라고 말했을 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편은 나이는 많지만 능력 있는 싱글녀라고 말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나는 골드 미스라는 단어가 그저 '노처녀'의 다른 말이며, 결국에는 그들을 대상화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어 가도 좁혀지지 않는 나와 남편의 간극은 어쩌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젠더 감수성과 남녀 갈등이 화두가 된 시대에 여자니까 그래, 남자니까 그래, 라는 결론은 게으르며, 심지어 불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나와 남편의 차이를 인정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내 남편의 뒷담화>라는 제목으로남편에 대해 본격글을쓰면서 가족의 평화와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하는 이유다.
나의 경험과 생각의 수준은 제한적이라 일반화하기 어려울 테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라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있다. 그럼에도 내 글이 '우리 부부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네' 라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상하건대 대부분의 글은 나와 남편의 찌질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우리 부부의 찌질함을 통해 사랑과 배려보다 혐오와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지금의 여자와 남자가 작은 이해의 지점을 찾을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에게 당신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졸지에 나의 뮤즈가 된 남편은 필명으로 쓰느냐고 묻더니 "당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써"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자신에게 검열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꽤나 권위적인 표정이었다. 와이프가 편히 글을 쓸 수 있게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 나의 뮤즈에게 카톡으로 이 첫 번째 뒷담화를 보내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