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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Sep 25. 2019

남편이 꾸는 아들의 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남편의 자세

아기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아기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나는 "아기가 공부를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식이 주는 기쁨을 누리며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말이다.(엄마가 못한 걸 아들에게 바라다니 말도 안 되지만.) 남편은 "건강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했다. 나는 "그건 당연한 거지"라며 입을 삐쭉거렸다.


우리 부부가 특별히 공감대를 이룬 게 있었는데 그건 아기를 이과에 보내자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문과 출신이다. 우리 부부는 '문송하다'는 말을 체감하며 어렵게 직장을 구했다. 아기가 사회에 보다 기여할 수 있다면, 문과보다는 이과에서 배운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물론 취직이 잘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크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남편은 자신이 등학교 수학경시대회 수상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아기가 이과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붙들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사칙연산 외 모든 수학 지식을 머릿속에서 지운 수학 혐오자(라지만 사실 낙오자)인 나는 아빠의 수학 DNA가 아기에게 가기를 기도했다.


아기야, 이런 게임을 만들어주지 않으련?(출처=닌텐도)

한창 '젤다의 전설'이란 게임에 빠졌을 때에는 아기가 게임 프로그래머가 됐으면 좋겠다고 우리 부부는 생각했다. 닌텐도의 게임 프로그래머 말이다. 엄청난 상상력으로 하나의 매력적인 세계를 완성한 닌텐도의 게임 프로그래머들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젤다의 전설은 물론 슈퍼 마리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와 관련된 글을 찾아 읽으면서 태교를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어느 날 남편이 진지한 목소리로 아들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그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은 직후였다. 남편은 아기가 어른이 됐을 때에는 인공지능(AI)이 보편화돼 있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일자리를 AI가 대체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판사가 제일 유망한 것 같아"라고 결론을 내렸다.


남편의 설명은 이랬다. 재판에서도 AI가 많은 부분의 업무를 담당할 것이다. 하지만 최종 판결을 내릴 때에는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인간들은 AI 따위가 내리는 결론에 승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목숨이나 돈이 걸린 일이라면 더 그렇다. 남편의 주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잠깐만 그럼 우리 강남 8 학군으로 이사 가야 하는 거야?"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한국에서 판사가 되려면 특목고를 가야 하고 명문대를 가야 한다. 심지어 이제는 학비가 비싼 로스쿨까지 보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남편에게 나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처방을 내놨다. 남편은 한동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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