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 남편과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사람들의 목소리도, 차량 소음도 들리지 않는 신비한 경험을 이따금씩 했다. 마치 우리 두 사람을 유리막이 싸고 있는 것처럼.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도 세상에 둘만 있는 느낌이 들었던 건 스킨십의 마법이었다.
나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남편과 길을 걸을 때 꼭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뽀뽀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스킨십을 굉장히 어색해했다. 내가 길을 걸어가다 남편을 바라보며 "뽀뽀"라고 하면, 남편은 굉장히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맞췄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도 쑥스러워한다. 내가 "사랑해"라고 말하면, "고마워"라고 답한다. 남편의 대답에 별로 불만이 없는 건 그가 정말 기뻐하며 고마워하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프러포즈를 하면서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라는 엄청난 고백을 했는데, 이조차 말이 아닌 편지로 전했다.
결혼식에서 남편이 깜짝 이벤트로 축가 도중에 마이크를 넘겨받았을 때 그가 드디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게 사랑 표현을 하나 했다. 축가는 쿨의 아로하. 남편은 김성수가 부른 내레이션 부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아닌 당신입니다 말로는 다짐할 수 없지만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눈 감는 그날까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남편은 정말 가사 그대로 읊으려고 애를 썼다. 너무 긴장해서 외운 가사를 기억해 내느라 헤매는 모습이었다. 결국 첫 문장 이후 나머지 문장은 제대로 내뱉지도 못했다. "그냥 OO야 사랑해, 결혼해줘서 고마워라고 하면 되지." 나는 결혼식이 끝나고 깔깔 웃으며 남편을 놀렸다.
아기는 사랑입니다.(출처=pixabay)
이런 남편을 아기가 바꿔 놓았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아기를 배에 올려놓고 뽀뽀를 퍼붓는다. 그 모습이 세상 자연스러워서 당혹스러울 정도다. 남편은 "우리 OO 너무 예쁘다"라며 애정 표현도 아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아기에게 환하게 미소를 짓는데 나조차 쉽게 보지 못한 그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아기를 재우고 나온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도중에 문득 아기가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어."
그 난데없는 고백에 내가 다 설렜다. 만약 남편이 "일하는 도중에 문득 네가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어"라고 내게 말했다면, 나는 1년은 더 일찍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