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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ul 10. 2024

인생 그게 뭐라니?(11)

첫사랑과 조우하다


5화에서 글 속에 옆집 교철이가 등장했다.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교철이.

어른들 세계는 부자와 빈자를 가렸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런 경계가 없었다.

부자라고 으스대지 않았고 부자라고 업신여기지 않았다.


비록 성별이 틀린 여자와 남자였지만 교철이와는 늘 같이 붙어 다녔고 손발이 척척 맞았다.

소꿉놀이를 통해 이미 둘은 가상의 부부가 되어있었다.

첫사랑이라기보다 우정이고 우정 속에 묘하게 파묻힌 첫 감정이기도 했다. 

나보다 교철이가 더 그랬다.


두 집은 담장을 사이로 감나무가 맞대고 있었다.

감나무도 서로 이웃사촌이다.

가을이면 담장사이로 서로의 감이 떨어졌다.

곤죽이 된 감을 주워서 우리는 소꿉놀이를 했다.


소꿉놀이 무대에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네 부모들이 했던 행동을 따라 했다.

"여보 이리 와 봐요."

"여보 이것 좀 먹어봐요."

부모들은 우리들의 모델이었다. 


어린 부부는 깨진 사금파리에 뭉개진 감을 조심스럽게 담고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걔네 집 감도 우리 집 감도 다 똑같이 볼품없이 찌그러진 졸품이었다.

노는 데 있어 졸품이면 어떻고 상품이면 어떠랴.

점심이기도, 간식이기도 했던 찌그러진 감은 우리에겐 진수성찬과 같았다.

옹색하게 차린 어린 부부의 밥상이었지만 그것은 향갱이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살림을 차렸다.

하루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었고 친밀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손짓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고 달려갔다.

동갑내기 친구는 누구보다 절친이었다.


교철이는 잘생기고 상냥했다.

대 가족인 걔네 집은 아이들만 여덟 명이었다.

하나같이 미남 미녀다.

딸은 딸 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못생긴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나 모두 인물들이 좋은지 그 집은 그것이 무엇보다 자부심이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허구한 날 시끄러운 소리가 담장너머로 넘어왔다. 

걔네 아버지의 훈육하는 소리도 밤이고 새벽이고 끊일 날이 없었다. 


복닥거리며 살면서도 어떻게 그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부모님들이 참 대단하단 생각뿐이다. 

옆집의 가족사를 너무나도 뻔히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월은 흘러 우리는 성장해 갔고 나이가 들어갔다.

친근감은 여전했지만  우리는 마냥 소꿉친구일 수만은 없었다.

소꿉친구할 시기가 지나자 옆집 친구와 나는 소위 내외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소꿉친구와는 달리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다. 


"쟤네들 연애하나 봐."

이런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고 양가의 경계심도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서로 소원해져 갔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하는 갑돌이와 갑순이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각자의 길을 갔고  내가 먼저 결혼해 버렸다.

그 후 연락이 완전 두절된 채 가끔씩 꺼내보는 빛바랜 앨범으로만 남았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정도로  존재가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수원에 사는 오빠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뒤늦게 결혼하는 조카 결혼식이라 내심  반가웠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고모자격으로 그곳엘 갔다.

한창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결혼 당사자 누나인 조카가 내게 다가왔다.

"고모 삼촌이 좀 보자는데요."

"삼촌?"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조카는 손짓으로 어떤 남자를 가리켰다. 

조카가 손짓한 곳을 보니  원탁에 어떤 한 남자가 혼자 앉아있었다. 

어두운 조명에서도 남자라는 것과 나이가 든 사람이란 걸 확인했다.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나는 그 남자가  앉아있는 원탁으로 다가갔다.


"실례지만 누구신데 절 보자고 했나요?"

나는 어리둥절하여 그 남자를 향해 앉기도 전에 누구냐고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휴, 얘는 나 몰라? 교철이."

"뭐어, 교철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 놀랐다.

몇십 년 만에 옆집 친구를 보게 될 줄이야.

어릴 때 그렇게나 잘생겼던 교철이는 이미 교철이가 아니었다.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翁(옹) 이 그 자릴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 네가 교철이라고? 세상에 어쩜."

나는 나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근데 너 너무 늙었다."

그랬어도 교철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앉으라고 의자를 밀어주었다. 

( 동갑이면서 누가 누구에게 늙었다고?)


나는 그날  특별히 올림머리에 평소 안 하던 화장까지 했다.

한복까지 갖춰 입고 때 빼고 광도 냈다. 

당연 나는 그에 비해 늙어보일리가 없다.

나의 외관과는 반대로 그의 용모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내가 그에게 모진? 말을 했어도 그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넌 아직도 젊네. 어째 나만 늙었냐."

자조적인 말이었지만 난색은 아니었다.


머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몽블랑을 얹었겠지만 검은 머리카락은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염색이나 좀 하고 오지)

참으로 오랜 시간들이 지나갔음을 확인했다.

오래전에 흘러간 시간들을 조각조각 맞추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몇십 년을  건너뛰고 이제야  어린 시절 남편? 역할을 했던 교철이를 만나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세월은 이리도 사람을 막무가내로 삭히는구나.

틈을 내주지 않는구나.


그동안 뭘 하고 살았으며 지금은 뭘 하고 지내냐는  안부를 나누었다.

결혼식이 끝나자 우리는 그대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전화번호를 하나 남겨주었는데 그 후로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아무리 동네 친구라도  괜한 오해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조카가 교철이를 삼촌이라고 부른 지는 오래지만 그것 조차 까마득 잊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조카는 나와 함께 살았고 교철이는 너무도 친숙한 삼촌이었다.

그것조차 잊고 삼촌이 찾는다는 말에 어리둥절할 정도로  나는 그를 잊었다. 


첫사랑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맞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면 누구나 빛바랜 옥양목이 된다.

그것을 잊고 그전의 싱싱했던 시절을 상기시켰다간 대 실망과 마주한다.

정말 그랬다.


내 생애 그토록 잘생겼던 소꿉친구가 쪼그라진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결혼식에 가면 분명 고모인 내가 오겠다는 계산으로 혼자 흥분했을 것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을 썼던 날이겠다. 

꼭 나를 만나 볼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을 터다.

그가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던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그날을 기다린 거였다.

 

생각지도 못한 그와 마주하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잠깐의  어린 시절은 금세 박살 나고 말았다.

유년시절의 꿈과 희망과 달콤함이 늘어진 엿가락처럼 볼품없음에 

지나온 시간들이 참담함으로 다가왔다. 


액자에 담긴 사진처럼 그 모습 그대로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는데.

언제나 소꿉친구 그대로만 꼭꼭 새겨두었어야 했는데.

의도치 않게 마음이 깨졌다.

다시 거둬들일 수 없는 시간들이 우르르 그 길목으로 몰려갔다 몰려오면서 

나를 심난스럽게 몰아쳤다.


그 애는 이맘때쯤 길바닥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풀꽃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어주었다.

그리곤 진짜 결혼 예물이라도 해준 것처럼 흐뭇해했다.

하얗고 봉긋한 풀꽃반지에선 향기가 났다.

둘이는 어깨를 맞대고 깔깔거렸다.


금방 시들어 버릴 풀꽃이지만 풀꽃반지가 던져 준 상징성은 묵직했다.

`너는 내 꺼.`

말은 하지 않았어도 거기엔 그게 얹혀있었다.


사람은 늙었어도 어린 시절 그 모습들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다.

사느라 잠시 접어두고 있었을 뿐.

장기기억에 담아 둔 필름들을 다시 꺼내보면 다시금 그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특히나 유년시절의 생활상은 더더욱 시리도록 선명하다. 


어린 시절을 터놓고 얘기할 있는 친구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우리는 이제 영원히 그전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결혼해서 평생 으르렁 거리며  사느니 지금 옛날의 순수한 감정들을 이따금 꺼내보며,

친구로만 남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은 누가 훑어간 걸까.

먼 길을 돌아 이제야 늙은 모습으로 나타난 꼬마 친구야!

누가 우리를 이렇게 삭혀왔니?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너무 먼 길을 떠나왔다. 

그건 추억이라는 앨범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수채화 용지에 유화로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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