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미 선 Sep 18. 2024

인생 그게 뭐라니?

돈 그 위력과 무력에 대하여

9월에 접어들고도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이글거린다.

아침저녁으로 그나마 서늘한 바람이 선심 쓰듯 슬쩍 불어주긴 하지만.

이토록 모질게 더운 날.

높디높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밧줄을 타고 곡예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 외벽을 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작업은 분초를 다투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공사일정에 맞추느라 지체할 틈도 없다.

올려다보면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어도 작업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심정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집 바깥 창틀에 실리콘 작업을 신청했다.

작업날 체구가 작은 아저씨가 하얀 안전모를 쓰고 발을 창문에 닿은 채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흠칫!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니 내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가가 작은 창문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실리콘 작업 신청하신 거 맞지요?"

"네, 맞아요. 천천히 조심해서 하세요."


높은 층에서 바깥에 매달린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긴 처음이다.

그 아저씨도 고층에서 실내에 있는 사람과  말을 하긴 아마 처음일테다.

작업에 방해가 될까 봐 얼른 문을 닫고 돌아서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아저씨는 발을 창에 딛었다가 떼었다가 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우리 집은 보통 집보다 높다.

저층에 살거나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집 층수를 얘기하면 대게 입이 벌어져 있다.

"어머! 진짜요?"

"진짜 무섭지 않아요?"


서울의 롯데타워나 부산의 마린시티, 아이파크등에 비하면 낮지만,

일반 보통 아파트보다는 높다.

45층, 그 위에도 더 층수가 올려져 있다.

그야말로 높으신 양반이다.(남들이 농담으로 던진 말)


이 고층아파트에서 아침 일찍부터 아저씨들은 작업을 서둘렀다.

그전에 시내버스 운전기사 앞자락에 붙어있던 두 손 모은 소녀의 기도가 생각났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난밤 꾼 꿈이 투명하게 기억나지 않을수록 아저씨의 마음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옥상 꼭대기에서 밧줄 정리를 하면서  `정신 차리고 잘해야지, 잘해야지.`

어금니 사이로  결심을 짓눌렀을 것이다.


저 작은 창문으로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건네고 싶지만 `아서라` 괜히 큰일 난다. 

마음만 서성인다.

아저씨는 할당된 작업을 마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날따라 그림작업으로 인해 사람이나 집안 꼴이나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 그림작업은  노동이다.

물감, 붓, 석유, 기름, 캔버스, 휴지, 물티슈, 미술용 나이프 등이 널브러져 집안은 

공사판이 되었다. 

그림 그리는 날 사람은 또 얼마나 꾀죄죄하던가.


아저씨는 틈틈 그림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작업 테이블이 창문과 바짝 붙어 있어서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아저씬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저 사람처럼 그림이나 그리며 살고 싶다.`

` 그런데 페인트 솜씨는 내가 한 수 위네.`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면 밧줄 작업은 덜 힘들었을 것만 같다.


아저씨가 어떤 감정을 가졌든지 아저씨는 능력자다.

아무나 외벽을 탈 수 없고 아무나 그 높은 데서 작업을 할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그림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외벽 작업은 독한 맘과  

함께 해야 하는 특수직이다.

아무리 일당이 두둑하다 할지라도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연령대로 짐작케 하는 젊은 아저씨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젊을 때 한몫을 챙길 있는 메리트가 밧줄과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누구나 죽으면 무용지물이 될 그것이라도 살아있는 한 그것에 목맬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들의 초라한 현주소다. 


"난 돈에 관심 없어요."

"돈 그거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로 오해받기 쉽다.


돈은 그만큼 더럽고, 위험하고, 치사하고, 골치 아픈 모든 것들을 다 포용한다.

두 가닥 줄에 의지해서 생명을 담보해야 되는  젊은이도 그와 맥락을 같이한다.

오늘도 아내가 혹은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상을 받고 여기까지 이동하면서 

별별 잡념으로 머리를 채웠을 그 사람. 


어린 자녀가 있다면 "아빠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볼에 뽀뽀라도 해줬을,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되었던 가장의 무게와 책무는 또 두 가닥 끈과 함께 오늘도 

질긴 의지로 연결되었다.


돈은 냉정해서 꿈자리와 상관없이 이곳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사는 게 참 녹록지 않다. 

그는 창문을 통해 각자의 집들을 대충 봤을 터다.


보면서 인생 거기서 거기지 뭐 별 건가.

좀 덜 위험할 뿐 지상에서도 발버둥 치긴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고층 꼭대기에서 일층으로 내려가 땅바닥에 발을 디디면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만 같다. 

오늘도 무사히 잘 해냈다고. 

그리곤 작업을 함께 했던 동료와 술 한 잔을 나누면서 고단하고 험했던 하룰 접을 것이다. 


한낮의 땡볕이 그의 등을 희롱했을지라도 두 가닥 줄이 주는 의미는 크다. 

고단하지만 그에겐 저 너머에 기약해 둔 비밀의 화원이 있을 것이기에.

그 가족만의 화원에는 오늘도 내일도  숨겨진 밀화들이 수런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조정래 작가의 (한강)  6권 229p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천두만의 친구 나삼득의 아들 나복남이 스텐공장에서 일을 하다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그 사장이란 작자가 보상은커녕 만나주지도 않고 나복남을 내친다.


이 딱한 소식에 의리파 서동철은 나복남과 천두만, 깡패 두 명을 데리고  스텐공장 사장실을 찾아간다.

그토록 돈 앞에서 인정사정없던 사장에게 너도 손가락 네 개를 잘라야 한다고 

책상 위로 손을 올리게 하는데.


"이봐, 자네 이리 와서 자네가 바라는걸 이 새끼한테 직접 말해."(서동철)

"난 큰돈 바라지도 않아요. 내 평생 망쳤으니까 구멍가게라도 하면서 살게 해 주면 돼요."(나복남)

"들었지? 구멍가게를 차리려면 얼마나 줘야 되겠다고 생각해?"(서동철)

"예에....., 저어....., 오, 50만 원....., (사장)


"이 새끼야 손가락 네 개가 겨우 50만 원이야! 너 안 되겠다 손가락 잘라야지."(서동철)

서동철이 사장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아, 아닙니다. 백만 원 내겠습니다. 백만 원."(사장)

"됐어, 백만 원. 스텐공장들 요새 돈벌이에 한창 신나는데 이 정도 공장이면 은행에 

수백만 원씩 쌓아놓고 있겠지? 당장 내놔 현찰로."(서동철)


그리하여 깡패 서동철은 나복남에게 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보상받게 해 주었다.

죽어가던 나복남의 팔자에 생생한 생기가 스며들었다. 

돈은 수혈이었다.


죽음이나 신체적 훼손에는 돈의 무력감이 나타났고,

완력이나 위험 앞에서는 돈의 생명력이 팔락거렸다.

그야말로 돈은 아름다운 폭력이요, 무질서요, 무시무시한 세력이다. 


이 돈의 괴력이 외벽 타기 선수를 만들었고, 가정이라는 안온한 울타리를 둘러쳤다. 

돈!

살아있을 땐 그토록 간구하던 돈이 죽음이란 끝장엔 그 사람과 함께 소멸한다.

앞 뒤 모순 투성이인 돈,  그 앞에서 우리는 나약하고 담대하다. 


외벽 타기의 숙명은 우리  모두의 생태계다.

一瞬(일순)은 깜짝할 시간.

0.4초.

그 일순에 사람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뭣 때문에?

돈 때문에.  

이 난기류 앞에 한 사람도 초연할 수 없다.

돈은  힘의 단위 뉴턴이고 압력의 단위 파스칼이다.

돈은 인생에 있어 그런 거다.










 







이전 04화 인생 그게 뭐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