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세상 모든 엄마들은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여들게 만드는 중심 축이다.
가정은 엄마라는 구심점이 없으면 쉽게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래서 가정에선 무엇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가족들이 모이느냐 흩어지느냐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달려있다.
엄마가 만들어낸 음식 앞에서 가족들은 단단해진다.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엄마가 만들어 낸 음식은 보약이다.
엄마의 열두 폭 치마는 자식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암막이다.
엄마의 암막 안에서 자식들은 상처를 아물리고 회생의 싹을 틔운다.
그 차양막 안에서 세상은 안온하고 고요하다.
올해도 추석에 결혼한 아들과 결혼하지 않은 딸이 집으로 모였다.
딸은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이 신기하다.
날로 달로 키가 크고 말이 늘어가는 모습이 놀랍다.
고모야.
고모? 고모가 뭐지?
조카들은 고모의 손을 잡았다.
가족이라는 은근하고 뭉근한 테두리를 감지하면서.
상을 물리고 네 살, 34개월짜리 손녀 둘이 발레 공연을 펼쳤다.
한쪽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빙빙 돌다가 어지러운 듯 비실거리는 모습이 우습다.
팔과 다리가 따로 논다.
어설픈 동작이 오히려 귀엽고 앙증스럽다.
어른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고 아기들은 그게 더 신이 났는지 쉴 새 없이 비실 발레를 이어갔다.
누구나 가족이란 이런 모습일 거다.
명절이란 이런 묘미일테다.
상차림을 할 때 뻐근했던 허리가 웃음으로 호환된다.
떠들썩했던 집은 아들네가 가버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딸은 객지에서 쐰 고단한 강풍을 집에서 만큼은 온전하게 외면하고 싶었나 보다.
연휴 동안 먹고 자고, 먹고 자면서 세상 어느 것 하나 서둘 필요 없는 느긋함으로 채웠다.
둘러쳐진 나이테가 여러 겹 지워지는 순간들이다.
미혼인 딸은 아직도 엄마품에서 어리광을 부린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요." 진심 어린 아부다.
엄마의 따끈한 밥그릇을 그냥 끌어안기는 뭔가 미안하다.
평소 혼자선 먹기 힘든 음식들 앞에서 엄마의 고마움과 푸근함을 껴안는다.
엄마 앞에선 온갖 풍파를 벗어나고 싶고, 세상과 마주했던 고달픔을 털어내고 싶다.
엄마가 힘든 줄 알면서도 빈둥거리고 누워서 엄마를 부려먹는다.
부린다는 것은 보상받고 싶은 심리다.
엄마 품에서 며칠이라도 쉬고 먹고 꾀부리고 싶은 동심의 발현이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기회가 오랴.
엄마가 있는 공간은 딸만의 달달한 동굴이다.
그나마 딸은 엄마인 내가 있지만 나는 엄마가 없다.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준 허전함과 쓸쓸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불가였다.
세상이 다 사라진다 해도 엄마 한 명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었다.
엄마는 그토록 어른이든 아이든 두껍고 포근한 보호막이 된다.
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제 나는 엄마가 없구나.`
`세상이 나를 내친다 해도 그 누구 하나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겠구나.`
기댈 언덕이 사라진 것에 대한 절망감이기도 했다.
엄마 밥은 잠시 거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래서 엄마는 쉽사리 다 큰 딸을 시켜 먹을 수 없다.
`엄마`라는 직분은 그렇다.
엄마밥으로 인해 발걸음에 힘이 실리길 바라는 것뿐,
당겨오는 허리를 감출 수밖에 없다.
고목이면서 고목이 될 수 없다.
엄마는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 꿋꿋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자식들의 방충망.
자식들의 바람막이.
자식들의 양지.
자식들의 구심체.
온갖 세상 풍파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은 엄마에게 있다.
아빠는 왜 거기서 제외시키냐고 불만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엄마만큼 아이들에게 존재감이 큰 사람은 없다.
아기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엄마에 비해 아빠는 듬직하되 한 발 물러서 있는 두 번째 고목이다.
며칠 푹 쉰 딸이 떠날 채비를 하던 날.
엄마는 서둘러 보따리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보따리는 점점 부피가 늘어나고 무게가 더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를 자꾸만 쑤셔 넣는다.
"아휴, 엄마 이제 그만해요. 무거워서 못 가져가."
"기차에서 옆구리 터지면 곤란하다 구우."
"이거 하나 못 사 먹을까 봐 그래요? 과일은 빼시라고."
"잔말 말고 가져가. 누가 못 사 먹는데. 귀찮아서 안 사 먹으니까 그렇지."
"에고, 울 엄만 참."
"큰일 났다. 이걸 다 어떻게 가져갈지."
모녀는 서로 보따리에 든 먹거리를 빼야 한다느니, 빼면 안 된다느니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우격다짐으로 보따리가 봉인되었다.
두 보따리가 어깨와 팔목에서 시비를 건다.
무겁다. 무거워.
우리 시어머니도 완력으로 보따리를 부풀리시더니 내가 또 그렇다.
모녀간은 아니었어도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다.
퍼내도 퍼내도 마를 수 없는 것이 엄마만의 청정한 샘물이니까.
나이가 백 살이 되어도 엄마에게 딸은 어린 딸인 거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
세상에서 최고로 편한 사람.
가장 심난한 상황과 마주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사람.
놀람 앞에서 "엄마."는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첫 번째 단어다.
발 앞에 뱀이라도 나타났다면 "엄~ 마아."
발 밑에 쥐라도 기어간다면 "엄~마."
바퀴벌레라도 봤다면 "엄~마."
고함을 쳐봐야 엄마는 현장에 없건만 엄마를 불러댄다.
비상사태 앞에서 엄마는 언제나 구호자가 된다.
자동으로 터져 나오는 구원의 소리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엄마"라고 소리만 질렀어도 위기에서 벗어나는 마법에 걸리고 만다.
이렇게 나이 먹은 엄마도 형체 없는 엄마를 찾기는 마찬가지다.
생애 처음으로 세상에 던지는 말도 "엄마"다.
신 대신 보내준 사람도 엄마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사람 뒤에선 늘 삭풍이 분다.
연휴를 온전히 엄마 품에서 놀다 간 딸은 이제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섰다.
며칠뿐이었지만 엄마의 오두막은 따뜻했고 포근했으리라.
엄마는 힘들었지라도.
잇몸 한쪽이 과로로 퉁 퉁 부었다.
한쪽으로만 음식을 저작하면서도 그저 뭘 더 먹일까, 뭘 더 줄까 그것만 궁리했다.
보따리를 들고 점점 멀어져 가는 딸의 뒷모습이 씩씩하다.
며칠 동안의 휴식과 엄마 밥은 씩씩한 뒷모습의 원천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
건강하게만.
엄마가 이 땅에 서있는 동안은 너를 마음으로 지켜주마.
온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