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결혼관
지난 주말에 서울엘 다녀왔다.
모녀 상봉이다.
바쁜 딸이 내려오기보다 덜 바쁜 엄마가 기를 쓰고 기어올라간다.
갈 때마다 기차를 이용하는데 주말이라선지 기차도 복잡하다.
다들 무슨 일로 서울엘 가는 것인지 캐리어, 배낭, 에코백이 불룩하다.
저 보따리 속에 든 물건들처럼 사연도 가지각색 일테다.
요번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머물렀다.
한 달 만에 만났지만 모녀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얘깃거리들을 풀어내느라
잠을 줄여야 했다.
어쩌면 해도 해도 그리 많은 말줄기들이 뽑혀 나오는지 신기하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침이 마르고 나중에는 배까지 고프다.
평소엔 둘 다 수다쟁이가 아니다.
모녀가 만나면 묵혔던 말들이 그제야 콸콸 쏟아진다.
둘이는 손뼉까지 치면서 박장대소로 맞장구를 친다.
결혼얘기만 아니면 이토록 죽이 맞을 수가 있나.
딸은 눈감지 않아도 코 베어 가는 서울에서 혼자 헤엄치고 있다.
살면서 부딪치는 일들이 만만찮게 많을 것이다.
직장이란 힘은 들어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만 하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온다.
자영업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돈이 제때 벌리지 않으면 마음고생 몸고생 다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려야 한다.
겉은 그럴듯한데 속은 그럴듯하지 않은 고생길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괜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나 싶고,
일이 잘 풀려도 고된 일에 부닥칠 때마다 뭘 얼마나 더 잘살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하고 혼자 어떤 것이든 해결해야 한다.
부딪히는 일들이 쉬운 것도 까다로운 것도 부지기수로 많다.
혼자 고민하고 웃고 울다가 개똥벌레처럼 잠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이 엄마에게 속상한 걸 일일이 끄집어내어 한탄하기도 그렇다.
세세한 건 만나면 얘기하면서 풀어낸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세상과 맞닥뜨리며 얻어내는 결과물이 진짜 성공의 주춧돌이 된다.
결혼은 무한 보류다.
엄마에게 상처가 될까 보류라고 한다는 걸 나는 안다.
고지에 깃발을 꽂지 않는 한 무기한 연장이다.
고지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 맞춘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대기업이 되어야만 고지가 되는 것인지.
나는 생각한다.
고지 말고 지금도 좋다고.
좀 더 본색을 드러낸다면 이제라도 결혼하라고 또 말하고 싶다.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으며 경험을 쌓는 거다.
우윳빛 웨딩드레스도 입어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도 받아보고.
이빨을 드러내고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서 시시덕 거려보기도 하고.
잘났다가 못났다가 뒤죽박죽 연출해 보는 것도 인생이 아니더냐.
참깨나 들깨도 달달 볶아가며 인생이 뭐라니?
인생이 이런 거였니?
자문해 보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재미요, 배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내 생각 과는 달리 딸은 성공이 최대 지상과제다.
성공해서 엄마 모시고 여행 다니면서 자유를 누리고 싶단다.
"이구우~ 나도 얼마든지 여행 갈 수 있으니 너나 결혼해."
"엄마, 결혼하면 엄마랑 여행 못 가요."
아니, 내가 언제 내 여행을 위해 저 결혼하는 걸 방해라도 했단 말인가.
결혼하면 아무 데도 못 간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이러니 오해에 이해를 더해서 칠해가 되어도 둘이는 결혼과 통하지 않는다.
딸은 결혼이라는 멀고 먼 이야기는 미뤄둔 채 엉뚱한 사업얘기로 각도를 맞춘다.
사업이 절대 우위인 사람과 결혼이 앞장서는 두 개의 엇박자가 소리 없이 상충한다.
두 사람 의견은 색깔이 다른 이물질인 거다.
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맘껏 추진하고 싶어 한다.
예전 엄마들의 웅크리고 살던 자세가 못마땅하다.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돌던 소극적인 엄마 인생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하긴 나도 다음 생에 환생한다면( 환생은 무슨 환생) 결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올가미가 씌워진 삶은 수소 풍선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언감생심 맘도 못 먹고살았다.
후회했으면서도 결혼을 부추기고 있는 모순을 딸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해서 살아보니 정말 아차 싶을 때가 너무도 많았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기란 낭떠러지를 지나가는 트럭 같았다.
합심해서 살다가도 삐걱거릴 때는 원수가 따로 없었다.
속을 썩이는 순간만은 지상에서 제일 뵈기 싫은 사람이 남편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일찌감치 미술을 시작했더라면,
애진작에 글쓰기에 전념했더라면,
전문적인 공부를 본격적으로 안착시켰다면 지금 이렇게 살까 싶기도 하다.
꼭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닌 자유와 성취를 못한 것이 아쉽다는 뜻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선 없는 존재로 전락한 건 순전히 결혼으로 인한 패착이었다고
나를 윽박지를 때가 있다.
온전한 내 삶의 한 조각도 할애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 늘 나를 자책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주부라는 덫으로 나를 일찌감치 접고 살았다.
우리네 엄마보다 그 위에 엄마들은 더욱 곤궁하고 핍박받는 삶을 살았다.
이건 그나마 낫다고 현 위치를 다독거렸다.
지금은 내 세대보다 시대, 환경, 경제가 월등하게 좋은 세상이다.
남자들이 설거지를 해주든가 그것도 싫으면 식기세척기를 들여준다.
시댁에 가기 싫으면 남편이 먼저 나서서 마음 편하게 조율해 준다.
육아도 반반이다.
독박육아는 우리 시대 전유물이다.
아내에게 잘못 대시했다간 도끼눈과 마주해야 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시댁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역도 이제는 옛말이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살피는 시대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여자들의 마음이 쉽게 결혼과 맞닿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도 나 스스로 독립해서 부를 이루고 주관적인 삶을 살고 싶다 로 귀결된다.
이 분명한 명제 앞에서 어떻게 설득이 먹혀들어가냐 말이다.
서울에서 혼자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고지가 그리 쉬운 거냐.`
설령 고지에 닿았다고 하더라도 그땐 나이가 몇인데.
내가 졌다는 패배감보다 고집을 버리지 않는 꼿꼿한 주관이 더 무섭다.
`야! 나도 이젠 손 털고 싶다. 자식들 다 여위었다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제 짝을 찾아주고서야 부모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자식들은 모른다.
가치관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결혼 이란 단어 앞에서 매번 이렇게 갈등한다.
서로 언쟁할 일이 없음에도 결혼 얘기만 나오면 예민해진다.
오히려 요즘에는 엄마들이 더 결혼을 말리는 집도 있다.
자신의 인생행로도 그렇거니와 이 좋은 세상에 왜 서로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자처하냐고.
혼인으로 인해 파생되는 골치 아픈 일들이 그만큼 많아서다.
아무리 그래도 어느 날 딸이 "엄마 나 내게 맞는 신발 한 짝을 찾았어요."
이런 전화가 오길 학수고대한다.
떡은 보이지도 않는데 김칫국 한 사발을 미리 들이켜고 있으니 헛배는 어디 가서 치료해야 하나.
"걍, 내버려 둬요. 지 인생 지가 사는 거지. 간섭한다고 되나요."
남들은 쉬운 이 문제가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자식의 결혼문제는 부모들에게 있어 오래전에 고심했던 인수분해만큼이나 골치 아프다.
내 생애 `장모님` 소릴 들을 수 있는 건 환청뿐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