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주년에 부쳐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면 `벌써`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벌써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작년 6월 21일에 `조선남자 엿보기` 란 글로 이 동네에 발을 디뎠다.
이 동네는 인구수가 상당히 많다.
인구수가 많다 보니 나는 아직 이 동네에 거주하는 작가들을 잘 모른다.
독자로 등록한 사람, 그것도 자주 들락거리며 내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애독자들만 알뿐이다.
아직까지 이 너른 땅에 발붙이기보다 발붙이려고 발돋움하는 세 번의
발 자가 들어가는 애송이다.
아는 이 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다.
한마디로 구석자리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수요일 아침을 꼬박꼬박 지켜내고 있다.
잘 쓴 글이든 못생긴 글이든 그건 독자의 몫이다.
모름지기 작가란 독자들에게 평상시 영양가 없는 밥상을 차렸다가도,
어쩌다 고기반찬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 한 대접쯤은 준비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 집 맛집이다 싶어 자꾸 찾아오고 싶어 한다.
오늘도 내일도 사골국을 잘 끓여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장작불은 타오르다가도 느닷없이 꺼져버리기 일쑤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역시 어렵다는 걸 느낀다.
작년 12월에는 반년의 소회를 담은 글을 썼었다.
`6개월의 브런치 세상을 맛보며`라는 글로 브런치 생활을 피력했다.
그 후 또다시 6개월이 흘렀다.
1년 동안 나는 오늘까지 59편의 글을 작성했다.
살면서 느끼는 생활 속의 글이 대부분이다.
`조선남자 엿보기` 로 시작한 글이 `고부 그게 뭔데요`로 이어졌다.
`아줌마 탐구하기` `아저씨 탐구하기` 시리즈를 거쳐 `인생 그게 뭐라니?`로 연결되고 있다.
수요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글을 올렸다.
55 56 57 58 59.
59가 되면 눈동자를 고정하고 1분을 기다렸다.
정확하게 9시가 땡 치면 `쓩` 로켓을 날리듯 발행 버튼을 눌렀다.
휴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사히 수요일의 임무를 채운 것이다.
그다음은 독자들이 나설 차례다.
6개월 전에 1년이 되면 큰 닭은 못되어도 중닭은 되겠다고 했었다.
지금 보니 중닭은커녕 아직도 정선 두메산골에 파묻혀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골수팬은 있다.
글을 올릴 때마다 언제나 변함없이 들어와 댓글로 화답해 준다.
내겐 그런 독자가 앙꼬다.
앙꼬의 힘은 대단해서 내 글에 살집을 올리는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
댓글은 글에 대한 이해와 글 쓰느라 고생했다는 격려의 메시지다.
댓글은 글을 제대로 읽어봐야 달 수 있다.
잘 읽어보지 않으면 댓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개의 라이킷보다 하나의 댓글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글로 인해 내게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문송하다는(문과라서 죄송하다) 말이 나왔겠는가!
취직도 잘 안될뿐더러 좋은 직장은 더더욱 어렵다
글 쓰는 일은 고달프고 배고픈 일임에 틀림없다.
화려하게 성공한 작가의 뒷모습엔 늘 고난이 자리했다.
글뿐 아니라 어떤 분야든 성공은 고난을 필수처럼 동반한다.
아무리 그래도 글 쓰는 일은 무엇보다 성공이 더디고 실효성이 부족하다.
hand to mouth (근근이 먹고살기)가 힘든 분야이다.
미국작가 폴 오스터는 우리네 글쟁이들의 환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얼마나 생활고에 시달렸으면 이런 말을 하면서 글쓰기를 고심했을까.
미국의 가장 위대한 문장가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현실은 가혹했다.
텅 빈 공허감을 시, 수필, 소설로 달래면서 쓰고 또 썼다.
치열하게 글쓰기와 씨름했던 그는 지난 4월 30일 타계했다.
타들어가는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유용하지만 무용했던 문학은 그의 진국을 마셔버린 광팬들로 출렁거렸다.
생계와 동떨어진 일들은 하나같이 힘든 것에 비해 형편없이 무가치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이곳에서 글이란 동아줄을 붙잡고 오늘도 내일도 버티고 있다.
글이 주는 충만함과 스스로 자생하기 위한 고투다.
쓰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
보이지 않는 저쪽 너머 희망을 어루만진다.
아무튼 영혼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쓴 글들이 좋은 호응이 오기까지 길고 먼 행로는 기정사실이다.
인정받지 않는 한 이 작업은 부캐가 될 수밖에 없다.
돈도 안 되는 부캐다.
오늘도 수많은 작가들은 摩斧作針(마부작침)하고 있다.(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함을 비유하는 말)
이 말은 글 쓰는 작업이 덜 힘들고 덜 회의적일 수 있는 지침이 된다.
이쯤에서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쇼펜하우워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일궈놓은 부를 자녀들이 이어받길 원한다.
쇼펜하우워 아버지도 "너는 내 사업을 이어받아 평생 고생 없이 살거라." 했겠다.
아버지 유지를 받들었으면 제대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을게 분명하다.
둥가 둥가 훈훈한 가정을 이어갔을 테다.
그런데 이 무슨 삐딱선이냐.
"아버지 나는 평탄한 삶보다 철학이 좋아요. 그 길을 갈래요."
"뭐! 철학? 이느무 시끼. 이렇게 쌓아놓은 부를 걷어차고 철학을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철학은 한 갓 아무 쓸모없는 허상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富(부) 보다 보이지 않는 허상은 무가치했다.
그는 끝내 실망하는 아버지를 등지고 철학을 관철시켰다.
평생 혼자 살면서 고독할 때마다 플루트를 뿡뿡 불어대면서 철학을 고아냈다.
약탕기에 약을 달이듯 진하게 철학을 우려냈다.
그가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오늘날 약탕기 철학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철학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그의 책은 냄비받침에 불과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외면보다 내면이 깊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내면의 깊이를 짚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있다.
매스컴, 철학자, 교육자, 작가들이 그를 조명하고 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인생관에서 캐낼 것이 많음을 시사한다.
그의 고독과 고뇌처럼 내게도 글이 유난히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
머리만 아플 뿐 글자가 앞으로 나가질 못할 때가 있다.
방구석에 처박혀 거북목을 하고 앉아서 아무리 글줄기를 잡아당겨도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다.
쇼펜하우워 아버지처럼 철학이고 글이고 다 무익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다가도 우는 아이를 달래듯 또다시 돌아앉아 글줄을 다듬는다.
아무도 내게 시원한 냉수 한 사발 갖다 주는 이 없다.
이것이 내가 극복할 일인 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추듯 반듯해야 멋있다.
어휘와 구문과 어조가 어울러야 글답다.
조화로운 글쓰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모든 작가들이 부심하는 진맥 찾기는 참 어렵다.
그래도 힘들게 쓰고 있는 글이 지금 세상을 당장 들었다 놨다 할 위력은 없지만,
미세한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 속이 상해도 그저 꾸역꾸역 쓰는 이유가 된다.
이제 1년을 맞았다.
아기도 돌이 되면 걷고 뛸 준비를 한다.
뛰기까진 못해도 넘어지지 않을 채비가 필요하다.
독자들의 안목과 수준과 상식을 봐서라도 좀 더 숙성된 글을 써야 맞다.
나의 앙꼬들을 위해 나는 다시 글쓰기라는 험난하지만 보람된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련다.
한 번의 글이 이어져 1년을 만들어왔다.
또 다른 1년의 시작이다.
덜 여문 글임에도 맛있다고, 잘 익었다고 박박 우겨준 독자들이 있어
나는 무모하게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1년 그 길에서도 더 영근 글을 쓰고자 노력할 것이다.
내 방을 찾아 들어온 독자들이 글이 없어 망단감을 느끼지 않도록 힘쓰겠다.
또 다른 1년도 다 같이 함께 숨을 쉬고 싶다.
글은 文과 人과 忍이 연결된 숲길이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부족한 글을 구독해 주신 독자님들!
앞으로도 마부작침의 의지로 전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