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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May 19. 2024

더 에이트 쇼

왜 k드라마엔 이런 종류의 희비극이 많은 걸까

<더 에이트 쇼>

-한국  • 8부작

-넷플릭스 2024.05.17. 오픈

-연출: 한재림

-각본: 한재림, 이현지, 송수린

-출연: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이열음, 박해준, 이주영, 문정희, 배성우

-원작만화: 배진수 작 <머니게임>, <파이게임>


올해 넷플릭스 라인업 중에 기대했던 작품 <더 에이트 쇼>가 오픈했다. 한재림 감독과 쟁쟁한 배우들, 원작 웹툰도 재밌게 봤었던 터라 꽤 큰 기대감을 갖고 봤다. 결론적으로는 뭐, 취향에 안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인상적인 부분도 있었던, 볼만한 작품이었다.


8부작이라는 적당한 러닝타임에 각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이 바뀌는 식의 서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모두가 한 번씩 주인공이 되고, 작은 서사와 큰 서사가 함께 진행되는 전형적인 요즘 드라마다운 포맷의 작품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계층에 관한

8개의 층, 8인의 희비극


가장 흥미로웠던 건 8개의 층으로 배정된 8명의 인물들의 서사를 미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다. 층마다 공간적인 디테일이 달라지는데, 이를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1층>

1층은 다른 층에 비해 방의 크기도, 천고도 낮다. 창밖으로 보이는 뷰도 캄캄한 것이 반지하를 연상시킨다. 더욱이 위층에서부터 물건을 내려보내는 시스템은 식음료를 분배받을 때 1층을 후순위로 만들며, 위에서 쓰레기들을 내려보낼 수는 있지만 방에 들여온 물건들을 다시 위로 올릴 수는 없다. 이에 자연스럽게 1층은 '미화원'을 자처하게 되며, 가뜩이나 좁은 방을 똥봉투로 가득 채우게 된다.


<2층>

1층보다는 조금 넓어졌지만 고시촌이나 원룸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방과 창문이다. 2층의 젊고 치기 어린 모습, 그러나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모습은 실제로 원룸 등에

주거하며 하루하루 고단하게 일하는 청년들을 연상시킨다.


<3층>

3층 류준열의 방은 조금 넓어지고 창문이 3개가 됐다. 창밖 풍경은 서민들의 주거형태 중 하나인 '빌라'다. 원룸보다 조금 더 넓기야 하겠지만, 낙후되고 그다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할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다.


<4층>

4층은 창문 4개, 창 밖 풍경도 아파트로 바뀌었다. 아파트긴 하지만 꽤 오래된 구축아파트의 느낌?


<5층>

5층의 아파트는 그나마 2000년대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인 듯한, 미묘하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 보다 보니 구축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4-5층쯤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자연히 해보게 되며, 약간의 현타가 왔다. 내가 6층 같은 놈보다 못한 것인가~


<6층>

6층은 신축아파트인 듯. 이런 디테일을 보고 있는 내가 웃기지만, 특별한 디자인 없는 빈 방에서 계층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만큼 효과적인 장치였던 것 같다.


<7층>

7층의 창 밖은 여의도인 것 같다. CBD에 위치한 고급아파트려나? 박정민이 분한 7층은 지적인 느낌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입소하자마자 모두들 구매했던 '잠자리' 용품 외에도 책상을 구매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거에 꼭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고도 여유가 있어야 교육이나 지적 활동에 집중하게 됨을 떠올리게 한다.


<8층>

8층은 볼 것도 없이... 이 정도면 펜트하우스랄까. 한강뷰도 등장했다. 8층에는 식음료가 넘쳐나며, 다른 층에서는 살 수 없는 사치품들로 방이 채워진다. 가만있어도 돈이 너무너무 잘 벌리니까.


천우희가 분한 8층이라는 캐릭터는 참 희한하다. 처음에는 너무 픽션 같은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볼수록 꽤나 현실적이다. 어디선가 본 적 있고, 계층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층은 항상 즐겁고 “재미”를 추구한다. 타인의 고통이나 삶의 애환도 8층에겐 그저 재미나 감동을 주는 흥밋거리로 소비된다.


아래층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반면, 8층은 자신에게 ‘고통’(예를 들면 벌칙)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거부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 드라마에서 8층은 한 번도 맞지 않으며, 묶여있는 상황에서도 특별히 괴로워하지 않는다.


낮은 곳과 높은 곳, 계층에 관한 이야기

“위로 올라가고 싶었어요. 평생 밑바닥이었으니까.”

인정하기 싫지만, 이 사회에서 나 또한 어느 정도의 계층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일하고 개인적 노력도 하지만, 생애소득을 짐작해 보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겠나 싶다. 나에게 쉬운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란 걸 가끔 느낀다. 반대로 다른 누군가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내게는 너무 값비싸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층에 있느냐에 따라 쌓이는 돈의 액수가 다른 것처럼 인생난이도도 달라진다. 아니라고 하기엔 뼈아픈 현실이라, 이 거짓말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은 불쾌하기도 했다. 왜 k드라마엔 이런 종류의 희비극이 많은 걸까?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 높은 곳에 있으나 외롭고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의 이야기, 그 사이에서 높은 곳에 복종하고 아래쪽의 고통을 방조하며 자신의 신분상승을 꾀하는 부류 등.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내 위의 누군가들의 인생난이도는 얼마나 쉬운 것일까 상상해 보게

되는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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