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가장 힘든 농사를 물었다

by 지성파파


세상에서 가장 힘든 농사는 무엇일까?


바쁜 세상살이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블루해지고, 일상의 접촉 갈증이 증폭되던 어느 겨울밤. 닭을 기르는 친구와 사과를 재배하는 친구, 아이 넷을 키우는 친구 세명이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랜선으로. 그것도 겨울이 깊어가는 늦은 밤에. 그것도 각자 술잔을 앞에 두고서.(스마트 기기와 자신들이 좋아하는 술이 필요했고, 온라인 접속에 밝은 아이들의 적잖은 도움이 있었다.)


각자 자기 자랑(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신세한탄(주로 아이들 이야기)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할 말이 없어진 친구들은 다른 신박한 얘기를 하기로 했다. 정치나 아내 이야기는 분노를 촉발하기 때문에 하지 않기로 했고. 미래 얘기는 보이지 않는 어둠을 말하는 것 같아 역시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소재가 고갈되어 헤매던 중 한 친구가 느닷없이 계시를 받은 듯 질문을 했다.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힘든 농사가 뭐냐고?"


그냥 보기엔 썩 철학적인 대화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별 시원찮은 이야기가 오갔다. 자랑인지 셀프디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대면 모임보다 더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그중에서 쓸모 있는 것을 대략 간추린다면...



먼저 닭 8만 마리를 키우는 친구가 하는 말.


"닭을 키우는 일은 신성(神性)의 영역이야!"(친구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지 이해불가!)

"내 닭들은 내가 제공해준 따뜻한 잠자리와 먹음직스러운 모이와 물, 온도조절계만 있으면 잘 자라지"

"얘네들은 말이지. 내가 설정해놓은 대로 모이 먹는 시간이 되면 나를 반가워해주지."

"제일 좋은 게 닭은 불평불만이 없어. 물론 불만이 있어도 내가 못 알아듣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다만, 수만 마리가 배설해놓은 닭똥을 치우는 일은 고역이야. 그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그 일은 힘 좋은 우리 와이프가 하지만."(친구들은 이 친구가 아내에게 잡혀 산다는 얘기를 들은 지 오래다.)

"하지만 닭의 생육기간이 짧아서 다행이지. 삼계탕용 닭은 40~50일 정도, 치킨용 닭은 60일 정도니까. 괴로워하는 시간이 짧지."


"그래도 한 달 이상 키우던 닭들을 내보낼 때면 마음이 좋지는 않아. 반려동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병아리 때부터 정성으로 키웠으니 출하용 트럭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면..." (치킨을 안주로 먹고 있던 다른 친구는 급히 사라지고...)


닭은 육가공업체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사료와 주인장이 만든 특수 수제 사료, 질병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항생제, 자주 돌보는 주인장의 정성만 있으면 잘 자란다. (실제로 어린 병아리를 키워 출하하기까지 닭들은 엄청난 사료를 먹어치우고 주인장의 단잠을 뺏어간다는 진실. 불면증과 수면부족은 이 친구의 훈장이다.)



5천 평 사과농장을 하는 친구가 하는 말


"사과나무를 키우고 사과를 따는 일은 하나의 종교와 같아."(이 친구마저 또 왜 이러는지 이해불가!)

"아마도 사과 한 알을 얻기까지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시끄럽게 울었을 거야."(다른 친구들은 짜증 나는 눈빛을 보낼 수밖에)


"제일 좋은 게 농부인 우리가 정성을 쏟은 것만큼 탐스런 사과가 열리곤 하지. 우리도 그런 사과를 기적의 사과라고 말하지."(일본산 기적의 사과는 잘 썩지 않는 거로 유명하다. 너무 비싸서 문제지.)


"다만, 여름 태풍과 긴 장마철은 사과 성장에는 아주 안 좋지. 사과가 열리는 꽃이 피지 못하기도 하고 기껏 자라기 시작한 사과가 낙과가 되어버리니까. 물론 쪼아대는 망할 놈의 새들도 문제지만"


"하지만 사과나무가 다년생 식물이어서 매년 새로운 사과가 열린다는 것이 좋아. 올해 일조량이 적고 태풍 때문에 작황이 안 좋아도 내년을 기약할 수 있어서..."


사과의 맛은 땅의 지력과 시비되는 천연비료의 질과 농부의 정성스러운 손길의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탐스럽게도... (실제로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이면 농부의 낯빛은 구름을 닮고, 거친 태풍에 사과가 떨어지면 농부의 마음 또한 내동댕이쳐진다는 진실.)



아이 넷을 키우는 친구가 하는 말.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은 불교수행의 동안거(冬安居)나 하안거(夏安居)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거부 반응 없는 공감의 눈빛을 보내는 친구들)

"부모는 온갖 고통을 견뎌내고 명상으로 스스로를 치유해야 하니까. 물론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길 수도 있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들은 말이지. 개인당 양육비용이 3억 정도 되는 거 다들 알지. 사교육을 안 받더라도 대학까지 생각하면... 거기에 네 명이나 되니.... 상상해보셔. 그 돈을 맞벌이해서 벌 수 있는지."(친구들이 함께 고개를 옆으로 심하게 흔든다.)


"닭이나 사과와는 달리 아이들은 요구하는 것도 많아요. 무슨 물먹는 하마도 아니고... 부모들 골수를 쏙 빼먹는다고나 할까."(심각하게 끄덕이는 고개들)

"더 큰 문제는 쏟아부은 만큼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닭이나 사과와는 달리 주체성과 선택이란 것이 있어서 인풋과 아웃풋에서 인과관계가 사라진 경우가 많지."


"닭이나 사과는 자라는 기간이라도 짧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자칫하면 평생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니... 자네들 생각에 어떤 농사가 제일 힘들 것 같은가?"

"(쐐기라도 박듯이 비장하게) 더욱이 닭과 사과는 사춘기나 중2병도 없지 않은가?"(듣고 있던 친구들이 격한 공감을 박수로 표시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큰 문제는 오류를 시정하거나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거다. 닭이나 사과는 이번 시즌에 실패하더라도 다음 시즌에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부모의 지극정성이 더해지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자식농사의 가장 큰 함정이다.(실제로 어떤 부모도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늙어간다는 진실.)



서로 할 말이 없어진 친구들은 입맛을 다시고 식어버린(혹은 거품이 꺼져버린) 술잔을 들었다. 다들 마음속으로 꼭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었다.


"무슨 농사가 제일 어렵냐고. 진정 그걸 몰라서 물어.... 자식 농사는 개뿔. 내 인생 농사가 제일 어렵지. 자식이고 닭이고 사과든간에 결국은 별개의 존재지. 하지만 내 인생살이나 내 마음가짐이 원하는 대로 되는지 생각해봐. 무슨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도 아니고 영원한 미스터리 같은 인간의 삶을 어찌할꼬..."


기나긴 겨울밤은 쓰잘데기 없는 농담처럼 흘러갔고, 더 추운 겨울의 새벽이 이른 기상을 했다. 단풍도 한철, 아이들도 한철, 누구든지 한 세상... 맘껏 즐기며 놀다 가면 되는 건데. 이 쉬워 보이는 게 왜 안되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온라인 대화는 생각보다는 쉬웠다.(아마도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초저녁에 돋아난 샛별이 새벽녘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심오한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반짝거리며... 아마도 저 별빛과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랜선 비슷한 대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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