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필요한 <인생삼합>은 무엇이 있을까?

부모 자신과 아이들에게 권하는 인생 레시피

by 지성파파

남도지방의 음식 중 독특한 풍미를 보여주는 것이 홍어삼합이다. 잘 삭은 홍어와 먹음직스럽게 삶아진 삼겹살 수육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척 얹혀서 먹는다. 소고기와 관자, 버섯으로 이루어진 장흥삼합 또한 잘 알려진 삼합이다. 그 삼위일체의 모양만 생각해도 무조건 반사로 침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대낮에도 막걸리를 떠올리거나 그에 어울리는 마리아주(marriage)는 어떤 주종일까를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최근에는 와인과 한식의 궁합을 살피는 이들도 많다.)


삼합이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특정지역에서 나온 특산물과 서로 조합이 맞는 음식들이 수없이 비교되고 대조되어 살아남은 것이리라. 최상의 밸런스는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수많은 시간을 묵히고 무수한 입맛들의 평가에 의해 비로소 찾아졌음에 틀림없다. 단지 몇 개의 음식을 합쳐 먹는다고 해서 미식가들의 영혼을 훔칠 수는 없다.


어떠한 삼합이든 최고의 맛은 상호 조화와 균형에서 나온다. 하나 하나의 맛도 중요하지만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그 맛은 극대화된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여러 요인의 상호 균형과 조화를 통해 더 빛난다. 먼저 살아온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레시피 같은 몇 가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앞서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세 가지>는 박노해 시인의 글을 빌려 말한 적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세 가지
https://brunch.co.kr/@rok574/36


그렇다면, 아이들 스스로에게 필요한 인생삼합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을 스스로 성장하게 하고 버티게 하고 지속되게 할 세 가지는 무엇일까. 삼합이라고 해서 특별한 방법이나 요령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합이 꾸준히 지속되지 않으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구하기 힘든 해를 가진 평범한 수학 문제와 같다.


1. 자신의 생각과 선택으로 살아가기


요즘 아이들은 자발적인 선택보다는 엄마나 아빠가 권유한 학원과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마저도 부모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먼저 살아가고 있는 부모의 주장에 기대다 보면 장점도 많다. 아이를 잘 알고 있는 부모의 선택이어서 실패할 확률도 낮다. 다만 부모의 선택에 의존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를 아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아이의 의견이 반영되기가 쉽지 않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언제든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순간이 온다. 그때 자신이 선택했었던 경험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의 입장은 전혀 다를 것이다. 소소하게나마 다양한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아이는 제법 어려운 순간도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는 의지를 보여줄 터다. 하지만 자라면서 크고 작은 순간을 부모가 쥐어준 대로 받아온 아이는 선택장애나 결정장애가 올 수도 있다.


고기나 회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고른다. 경험에 의해 육고기의 부위별 독특한 맛을 기억할 수 있고, 선어회와 활어회의 다른 맛을 말할 수 있다. 음식을 고르는 것 이상으로 개인의 삶은 선택 여하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우리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 선택의 순간이 많다. 가능한 한 모든 순간을 부모가 함께 해줄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자신으로 선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저하는 아이들에게 이 한마디를 묻고 싶다.


"너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2.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경험하기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고생하지 않고 시행착오 없이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 억지로 사서 고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남에게 말하기는 좋지만, 자식에게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의 본심이다. 강연자로서 그럴듯한 얘기를 할 때나, 사석에서 타인의 삶을 얘기할 때도 "젊어서 고생론"을 말하지만, 막상 나 자신이나 가족의 삶을 얘기할 때면 좀 더 쉽고 빠른 "패스트 트랙"을 원하는 것이 우리의 속마음이다.


사람의 인생은 B(Birth)에서 D(Death)까지 살되, 결국은 C(Choice)의 문제라고 하지 않는가. 이 문장의 의미는 개인의 의지가 개입된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는 이제는 진부하다. 이런 자극적인 문장이 삶의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는 계속 반복되는 시도와 선택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가 아닌 여러 번의 시도가 있을 뿐이고, 그런 시도를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시행착오 없는 개인의 삶은 없다. 제 아무리 철학적 지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투른 선택과정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아이들이 바라보는 주위의 삶, 특히 부모의 생활 속에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이 녹아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것도 습관과 멘탈의 문제다. 누구든지 동시에 다양한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 속 범주에서 여러 번의 시도와 소소한 성취 혹은 만족이 있을 뿐이다. 보이는 외적 성과에 얽매이기보다는 내적 만족에 의미를 두는 삶이 먼저다. 부모 입장에서 쉽게 낙담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너는 시도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한번>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3. 배신하지 않는 꿈과 버티는 힘 키우기


"꿈은 배신하지 않는다. 공부는 배반하지 않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듣는다. 이런 제목을 가진 책도 많다. 하지만 개개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루어진 꿈이 얼마나 있던가. 열심히 공부해도,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누구나 꿈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오죽하면 꿈은 꿈으로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주위를 돌아다보면.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누군가의 꿈은 영원히 꿈의 영역에 존재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타고난 재능이나 후천적 능력의 차이.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꿈을 성취한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이러한 시선의 대전제는 꿈의 범주를 <대학 진학과 직업선택>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꿈의 범위를 이 둘 사이에 놓이게 하면 개인의 능력은 오로지 공부 능력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우리의 현실은 양자 사이에 꿈이 머무른 경우가 많다.)


꿈은 한 개인이 평생을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것이거나 그에 대한 열망이다. 그 속에는 이루고 배우고 익히고 기여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대통령이나 의사나 판검사가 꿈이라면 그것은 꿈의 외피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되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혹은 판검사)가 되어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해 의료(사법) 행위를 할 것인지에 대한 열정이나 의지까지 포함하는 것이 꿈의 영역이다. 결국 꿈은 스스로가 지속할 수 있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버티는 과정까지 포괄한다. 한낱 공부마저도 소홀히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너는 진정 이루고픈 꿈이 있는가? 너는 그 꿈을 위해 버티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때, 꿈은 배신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진부한 진실을 믿는다.


누구의 삶이든 가장 이상적인 믿음 속에서 평범한 개인의 삶이 피어난다. 이 또한 진실이다. 사실 <인생삼합>은 부모인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상투적이면서 맛없어 보이는 <인생삼합>을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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