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부모를 교육학대로 이끈다

우리 주위에 교육학대는 없겠죠?

by 지성파파

공부에 여간해서는 흥미가 없고, 스스로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중3 아들과의 대화였다. 아들은 일종의 "공부 피해 호소인"이다. 공부가 무슨 피해를 주었을까 심히 의심이 가지만.


"콩새형, 아빠 생각인데 나중에 로스쿨 가서 변호사나 그런 거 해보는 것 어때?"(콩새는 우리집 둘째 아들이자 막내의 애칭이다.)


잠잘 때를 빼놓고는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 절친인 핸드폰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는척하는 아들.

"아빠 주위에 있는 삼촌들처럼 법이나 재판 얘기하며 답답하게 살라고. 나는 좀 더 자유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데..."

"아! 음... 자유, 자유로운 일이라.... 좋기는 한데. 그게 무슨 일인데..."


"그러니까. 게임기획자, 웹툰 작가나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거ᆢ"

"콩새형. 그러니까... 게임기획자나 작가들이 진짜로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걸 하고, 자기 직업에서 자유라는 걸 느낄까?"

"그런 거 같은데. 유튜브나 그런 거 보면. 상당히 자유롭게 보이고, 돈도 많이 벌고."


아들의 신박한 견해에 아빠는 다시 묻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테스 형도 아니고 콩새형. 그렇다면 원하는걸 위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그런 쪽에 소질이나 열정이 있는지를 생각은 해봤고."(역시 꼰대 같은 아빠의 송곳 같은 질문이다.)


여전히 핸드폰 속의 게임 해설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대꾸를 하는 아들.(중3이 멀티플 한 대화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썩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다.)

"글쎄, 아직은 소질이 있는지 생각은 안 해봤고. 중3이 벌써부터 그런 열정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아들의 천진난만한 태연자약함에 서서히 열 받으며 놀라는 아빠)


문득 핸드폰에서 시선을 뗀 아들이 아빠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빠, 혹시 불필요한 것을 강요하거나 강권하는 것은 폭력이나 학대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아빠 입장에서 계속 말하는 것은 교육 학대 같은 거는 아닐까"

(갑자기 훅 들어오는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며칠 전의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들에게 교육학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최근에 읽었던 포털의 기사가 생각났다. 일본에서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2018년 일본에서 딸이 엄마를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다.

엄마에 의해 초등학교 이전부터 의대진학을 강요당한 딸은 의사를 꿈꿨지만 의대진학에 실패했다. 엄마의 주위에 대한 거짓말과 강요에 의해 9년간 재수를 했고, 엄마의 의사 직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공부적성이나 성적이 부진한 딸을 힘들게 했다.

결국은 의대진학에 실패하고, 지방의 간호대학 졸업 후 간호사가 되고자 한 딸과 의사와 비슷한 조산사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는 계속적으로 충돌했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하는 딸에게 엄마는 "배신자"자라고 부를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비정상적이었고, 딸의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엄마를 살해한 딸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괴물을 처단했다. 이걸로 안심이다."

이 사건 이후에 일본에서는 "교육학대"라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전문가들에 의하면,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가 어렵고, 외부인이 개입하기가 힘들어 대처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교육학대>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닌 아이의 의사를 묵살한 채 부모가 일방적으로 의사 결정한 경우를 말한다. 공부의 목적이 오직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향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서, 이때 아이 또한 부모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교육학대와 유사한 여러 사례가 존재한다.(생각하건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사례도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직업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권유 이상의 행위를 한 부모님들은 가만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중에 덜 비극적인 스토리 하나. 역시 의대진학을 바라는 부모의 요구에 의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대치동 학원가와 과외를 전전하며 의대에 진학한 아들 이야기다. 이 아들은 의대에 합격하자마자 합격증을 부모에게 내던진 뒤 집을 나갔다는 스토리다. 그 부모에게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자식은 자랑거리일 수 있었겠지만. 그 아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부모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차원이 조금 다른 얘기지만, 역시나 부모가 원하는 의대를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떡 만드는 기술을 익혀 강남에서 떡집을 하는 사연도 있다. 다행히 이 사연의 주인공은 떡집으로 크게 이름을 날려 부모와의 불화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들린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소문나지 않은 숨겨진 안타까운 스토리가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정 직업 선호에 관한 우리 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가 격세지변의 변화를 겪어도 선망하는 직업이 존재한다. 의사와 판검사, 고급공무원이나 각종 전문가들. 아쉽게도 이들 영역은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하는 관문이 버티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그 직업군들의 장점을 알기에 아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경쟁을 통과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 속의 오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교육산업이 나날이 팽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학이든 직업이든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선택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늘 미덥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보인다. 아이들의 의사나 소질을 무시하고 부모의 선택에 의해 법대(로스쿨)나 의대에 진학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문제다. 대치동이나 목동의 입시학원들의 진학시스템에 의하면 목적 달성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이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쩌면 아이들이 바라지 않는 사교육은 일종의 교육학대로 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명문대학 진학과 잘 나가는 직업을 권하지만. 아이들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권유는 학대에 가깝다. 그렇다고 의도하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 요인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또한, 자식의 직업이 부모의 콤플렉스나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부모들 중에는 자신의 희망을 아이에게 투영시키는 이들이 많다.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의사가 의사 자식을 두고, 법조인이 다시 법조인 자식을 자랑하는 소재가 현실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 속에 비일비재다. 이들 대부분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그 속에 어떤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있을지는.


부모의 애정이 모두 사랑과 헌신일 수 없듯이 아이에게 대한 강요가 모두 학대일 수도 없다. 부모와 아이 간의 관계에서 소통과 이해, 아이의 자발적인 선택이 사랑과 학대 여부에 대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혹시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들에게 원치 않는 공부와 직업을 갖기를 희망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콩새형이 말하는 "자유"의 실체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런 철학적인 대화를 하기에는 아직은 철없는 부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모의 책무를 내려놓고 아이가 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두고 볼 수도 없는 것이 평범한 부모들의 숙명이다. 어떻든 간에 자식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되며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위험한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
이전 08화초등 4학년의 단톡방에서"못 볼걸" 보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