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의 단톡방에서"못 볼걸" 보고야 말았다

by 지성파파
우리 집에는 핸드폰 소유와 사용에 관한 정책이 있다.

1. 자신의 스마트폰의 소유 시기는 중학생이 될 때부터다.
2. 자신의 나이에 주체할 수 있을 만큼 사용한다.
3. 약정 기간 내에 폰을 분실하거나 깨뜨리는 경우 교체는 없다.

부모 입장에서 첫 번째는 잘 지켜지나, 두세 번째는 믿음이 배신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막내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어서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르고만 있지는 않는다. 엄마나 아빠의 핸드폰을 넘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아빠의 핸드폰에 자신의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빠 폰에 게임을 두 개만 깔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게임을 깔 때면 다른 게임 중 하나를 지워야 할 정도다. 심지어는 아빠 폰에 자기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여러 개 개설해놓았다. 아빠가 출근할 때면 친구들과 소통두절이지만. 아빠의 퇴근 이후에는 바로 온라인 상태가 된다. 그래서인지 막내는 아빠의 빠른 귀가가 아닌 스마트폰의 조기 귀환을 소망한다. 매일매일...


카톡의 알람을 보고 있노라면. 재잘거리는 참새처럼 아이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잘못 누른 손가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톡 내용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오늘 놀 수 있는지. 어디서 만나는지.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누구누구랑 놀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이들의 대화는 짧은 문장과 오타 투성이의 외계어, 이모티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의사소통이 되는 건지. 작게는 수십 개에서 삼백여 개가 넘는 긴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무슨 재미가 있는지 "ㅋㅋ나 ㅎㅎ"가 줄을 잇고, 자신들만 아는 용어로 문장을 이어가곤 한다. 예를 들어, "ㄴㄱ는 누구, ㅇㅈ는 언제" 이런 식으로 짧은 암호 같은 문장을 주고받는다. 이들의 대화는 단어나 문법의 파괴가 아닌 새로운 문장 문법의 창조에 가깝다. 어찌 되었건 자기들끼리의 대화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훔쳐보는 아빠만 답답할 뿐이고.



막내의 친구 7명이 함께하는 단톡방은 두 사람이 타인의 폰을 빌려 쓰고 있었다. 한 명은 아빠, 다른 한 명은 언니. 그럼에도 친구들은 친구의 아빠나 언니를 의식하는 눈치는 없다. 아이들만의 사생활 비밀에 관한 의식이랄까. 서로의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봄이 깊어져 가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우리 집 막내는 오후 내내 놀던 놀이터에서 귀가 후 샤워 중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걸그룹의 노래를 율동과 함께 부르면서... 가끔씩 뜻 모를 팝송도 섞어 부르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우리집 엄마도 막내가 못내 귀여워 쓰러질 수밖에.


그 시간 막내 친구들의 카톡방에서 알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붙어 놀다가도 더 할 말이 남아있는 건지. 게임에 관한 얘기와 놀이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한 친구가 핵폭탄 같은 문장을 하나 날렸다.


"확 죽어버릴까. 엄빠도 이혼한다는데..."


그전의 문장들이 게임 계정에서 퇴출당한 사정을 얘기하고 있는터라. 저 문장은 이상한 문맥이었다. 친구들의 반응은 생뚱맞은 말이라는 듯이.

"게임 때문에 죽으면 되나? 야, 게임 때문에 왜 주거(죽어). 진짜로 엄빠가 이혼한데냐." 와 같은 친구들의 대답이 줄을 이었다.


다음 대화에서는 친구의 말투가 심각했는지 이들의 대화가 보다 진지해졌다.

"만약 네가 죽으면. 어떤 세상이 있을 것 같아.. 천국이 있을까? 지옥이 있을까? 둘 다 없어~~"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그렇게 살면 보물이 있어? 상이 있어? 불행밖에 없어. 긍정적으로 살면 행복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삶에 즐거움도..."

"야, 죽지 말고 놀자! 죽으면 지옥 간다니까!"


폭탄을 던진 당사자의 한마디.

"나도 힘든데.... 위로해줘서 고마워..."

"근데 너네는 엄빠가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래?"



이들의 카톡대화를 몰래 훔쳐보면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흘러갔다. 아이들의 가감 없는 대화 속에서 우리 부모들의 위상이 보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을 어린이로 취급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내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의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샤워를 끝나고 나온 막내에게 조용히 핸드폰을 내밀었다. 친구들 카톡이 많이 와있더라면서. 막내는 수건을 터번처럼 머리고 두르고 소파에 앉아서 지나간 대화를 읽기 시작했다. 아빠는 조용히 막내의 표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절친한 친구들의 대화를 보고 무슨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하면서.


내용을 한번 쓱 보고는 막내의 표정이 시크해졌다. 웃지도 않고 씁쓸해하지도 않은. 저게 무슨 의미일까. 막내는 친구들의 흘러간 대화에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다. 아마도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자신이 할 말을 다른 친구들이 다 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나름의 바람직한 밸런스를 발견하고, 자신은 침묵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듯했다.(어디까지나 아빠의 생각이다.)


아이들의 대화를 보면서 초등학교 4학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됐다.

부모의 불화와 불편한 관계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아이들 나름대로 해결하고 견디는 생존전략도 갖추고 있는 듯했다.
부모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어린아이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부모가 다른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가지는 생각들도 편견이거나 착각일 가능성도 있다.


초등 4학년생들의 카톡방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모두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엄연히 한 사람 몫의 사람이구나.

아이들이 부모의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 부모들이 더 조심하고 노력해야 되겠구나.

친구의 말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이 어른들과 같거나 더 나은 점도 있었다.
그래, 오히려 너희들에게 어른들이 배울 점이 많구나.

친구들의 반응은 의젓했고, 아이들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그래, 나이만 어른이고 아직 어른이(어른+어린이)인 부모들에게 깨달음을 주었구나.


여전히 옷을 홀라당 벗고 춤추며 다니는 우리 막내를 보고는 아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막내 친구 엄마 아빠의 이혼설은 부부싸움때문에 격화된 감정표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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