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의 적정 수면시간은 8~10시간이지만, 현실은 6~7시간에 못 미친다. 학원 수업과 학원 숙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게임과 각종 유튜브도...)
이 질문에 누가 선뜻 대답할 수 있을까?
매일 밤 아이들과의 밀당이 시작된다. 무언가를 하면서 더 늦게 자려는 아이와 성장호르몬을 들먹이며 일찍 자기를 바라는 부모들. 인간의 삶의 1/3을 잠자는 시간으로 보내기에 수면의 양과 질은 깨어있는 나머지 2/3에도 중대한 영향을 준다. 수많은 경전에 나오는 인간의 오복(五福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어쩌면 잘 자는 것이 모든 즐거움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수면시간과 등교시간을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0교시 수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수업시간이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기상시간을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앞당기고 있었다. 학생들 개개인이 더 공부하고 더 심하게 경쟁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서일까. 그 방침에 대해서 당사자인 학생들과 교육주체인 선생님들, 바라보는 부모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학생들의 이른 등교와 수업시간 늘리기는 말 잘 듣는 “산업역군”을 만들기 위해서였을까. 위선적인 전문가와 부역자 지식인들의 침묵 속에서 그렇게 학생들의 수면권은 정치 놀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자치교육의 시행과 더불어 진보교육의 기치 아래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은 어른들의 출근시간과 같은 9시 등교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2년 대통령 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학력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에 의하면 현재의 아이들이 글로벌 경쟁에 뒤쳐지고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잠을 더 자게 되면 공부를 덜하게 되고 기초학력이 떨어지며, 장차 국가경쟁력이 저하된다는 기이한 논리였다. 특히나 보수 교육감이라 자처하는 경기도 교육감의 첫마디는 충격이었다. 오직 학업성적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는 그들의 야만적 시각을 그대로 들어내는 목소리에 수많은 부모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적이고 상식적인 인식능력을 가진 교육감이었다면.... 가장 먼저, 학생들의 삶의 질과 공부하는 환경, 개인의 소질과 다양성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급히 내던진 “0교시 수업의 부활”이라는 망령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조기 등교일까? 우리 아이들, 선생님들, 부모님들...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정책을 자신 있게 내놓고 관철하려는 이들은 아이들을 성적을 위한 '공부기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걸까?
경쟁을 강화한다고 해서, 학업성적이 좋다고 해서 각종 사회적 능력과 공감능력이 높아진다는 데이터는 없다.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받아온 이들이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온 오만한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낸 이기심 가득한 디스토피아가 보일 뿐이다. 지금,2022년의 대한민국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 한 사람이 바뀐다고 교육정책이나 아이들의 등교시간이 변경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왜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을까? 시류에 편승한 어설픈 정치인의 생각 한 조각이백 년을 내다보는 혜안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순위나 우열을 가리는 공부밖에 모르던 이들이 출세가도를 누리다가 내뱉은 한마디가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시대를 역행하는 과거의 망령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교육 분야에 정치적 의도나 색깔론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교육(분야)은 어떠한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비전문가들이 정치의 이름으로 올바름과 합리성의 영역을 부당함과 특권의식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이다.
비록 이상적이지만, 맘껏 자고 뛰어놀고 공부하며 청소년기를 보낼 수는 없을까?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정도의 경쟁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물론 꿈같은 얘기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의 방향성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서 두 번씩이나 설문조사를 했다. 학교마다 자율에 맡긴다고 하니 학부모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였다. 설문 결과를 보면 부모와 아이들 대다수가 9시 등교를 희망하고 있었다. 일부 맞벌이 부모들이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조금 이른 8시 30분 등교를 희망할 뿐이었다.
누가 묻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충분한 숙면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의 어떤 부모들도 자신의 아이들이 보다 맑은 정신으로 밝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9시 등교 정책이 폐지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공붓벌레들이 만들어가는 불온한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행복을 찾아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