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아들과 정치적 담론을 나누며 한 권의 책을 읽다

by 지성파파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와있는 토요일 오전. 거실에는 커피와 클래식 음악이 서로의 향을 뽐내었고, 창밖에는 때늦은 진눈깨비가 허공을 날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중3을 넘어 드디어 고1이 되는 아들과 정치적 담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는 이번 선거 때 누구를 찍을 거야?”(아들의 돌직구 발언에 살짝 놀란 아빠)

“어! 글쎄... 아빠는 우리나라를 잘살게 해 주고, 국민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후보를 찍을 건데...”

“그럼, 그 후보가 누군데?”

“음... 그것은 평소에 아빠가 수없이 잔소리처럼 말하던 것을 얘기하는 그 후보지.”

아빠가 커피잔 옆에 놓아둔 책에 눈을 돌린 아들이 한마디를 보탠다.

“<함께 빛나면 큰 별>, 제목이 무슨 시집 같은데... 이건 무슨 책이야?”

“응,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에 관한 얘기지.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거실에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겠지. 물론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숨은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호빵 하나와 우유 한잔을 들고 아빠 옆에 앉았다. 갑자가 용돈이 필요한 건지, 다른 특별한 용건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얘기해줄까?”


호빵을 크게 한입 베어 문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유 잔을 들었다. 2월 중순의 허공에는 가느다란 눈발이 하염없이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아빠는 열아홉 명이 함께 썼다는 책 내용을 담담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아래는 대화체를 최대한 문어체로 작성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평범한 삶이 아닌 고난의 삶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가시밭길을 찾아 걷는 이들이 있고, 화려한 꽃길만 가려 밟는 이들도 있다. 후자의 삶은 개인에게 영광이 될지 몰라도 역사나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22년의 우리의 현실은 불편한 정치적 상황과 감염병의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사회와 개인의 삶이 위기에 처해있다. 정치적 분열과 과거회귀의 반역사적 현상은 우리 사회에 불행의 전조를 띄우고 있다.

<함께 빛나면 큰 별>이라는 책을 읽고 전자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답답한 현실에 대한 위안을 받았다. 이 책의 주된 저자는 사립유치원 개혁 3법의 단초를 제공하고, 로비 명목으로 보내온 골드바를 거부했던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출신의 “김거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다. 그리고 그를 알고 있는 열여덟 분이 함께 공동 저자가 되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부터 교육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학생들까지 함께 쓴 글은 어떤 내용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으나, 다시 살펴보니 다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걸어온 삼십 년, 평화 심어 정의를(제1부), 김거성을 말한다(제2부), 청렴사회를 향하여(제3부), 저자의 인터뷰까지다.


김 전 수석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의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서슬이 시퍼렇던 대학시절(1977년)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통한 학생운동으로 부당한 옥살이를 하였고,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어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특히 군부정권의 억압에 항거한 그의 용기는 2014년 5월 재심청구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무죄, 사법부는 유죄”라는 판사의 선고를 통해 증명되었다. (내가 걸어온 삼십 년 중에서) 우리 사법부도 가끔은 옳은 판단을 하고, 과거에 대한 반성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둠의 시절 만연했던 수사기관의 사건 조작과 언론의 여론조작을 증언한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통해 독일 히틀러 정부의 국민계몽 선전장관인 괴벨스의 “인민 대중이란 작은 거짓말보다는 더 큰 거짓말에 속는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유명한 선언에 숨겨진 ‘미디어를 통한 대중선동’의 위험성을 경고한다.(거짓의 종말 중에서) 이 같은 위험은 1990년대뿐만 아니라 오히려 2022년 우리의 정치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 경고가 아닐까 우려된다.


저자는 목사이자 민주화 통일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의 인연을 통해 정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한 평화를 강조한다. 그는 남북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남북 사이에 정의가 먼저인가 아니면 평화가 먼저인가?” 고 문익환 목사의 걸어온 삶을 통해 ‘평화가 먼저’ 임을 고백한다. 고인은 남북이라는 이념적 분단 사이에 먼저 평화를 이뤄 내야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음을 깨닫고, 온몸으로 이 진리를 살아가셨던 것을 회고한다.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탐욕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세력이 분열과 전쟁을 말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문익환 평화 심어 정의를 중에서) 이는 아직 분단 상태에 놓여있는 우리 한반도의 2022년에도 큰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의 위험과 공포는 그 어떤 재난보다도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평생의 동지라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저자에 대한 평가가 인상적이다.

김 수석은 청와대에서도 늘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사람들 편이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 희생한 분들에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훈포장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 ... 중략... 나아가 그는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여 국가와 국민이 그의 희생에 대해 최소한의 감사 표시라도 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 또한 실현되었다.”(추천의 글 중에서)


저자는 최근까지도 민주화 유가족,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지원활동 등을 통해 우리 현대사가 거쳐 온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김 전 수석은 1999년 한국투명성기구(설립 당시 사단법인 반부패 국민연대)를 창립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고, 국제투명성기구 이사를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또한 국가청렴위원회(당시 부패방지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위촉되어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주도하였다. 더불어 정부기관과 공공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반부패와 청렴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기틀과 실행 논의를 꾸준하게 준비해왔다.


그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개방형 직위인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을 역임했다. 감사관 재직 시 감사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사립유치원에 대한 특정감사를 통해 유아교육기관의 공공성을 이끌어 냈고, 결과적으로는 <사립유치원 개혁 3법>이라는 입법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와 함께 사립유치원 감사를 담당했던 오종민 사무관의 일화를 읽고 나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립유치원에 관한 비리 제보에 대해 감사업무를 담당하는 누구나 주저하고 있을 때 김거성 감사관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우리 그런 거 따지지 맙시다. 공무원들이 외면하면 피해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것만 생각하고 갑시다.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세요. 제가 그들과 직접 통화하겠습니다.”(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할 길 중에서)


정치적 외압이나 청탁을 막아내겠다던 감사관의 한마디가 감사담당자들에게는 천군만마였고, 이들의 감사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립유치원 개혁 3법이 개정되었다. 이 때문에 저자와 오종민 사무관은 관련 단체로부터 불법 감사,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차례 고소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저자는 경기도교육청에 시민감사관 제도를 실질적으로 도입하여 시민의 행정참여와 민관협력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경기도에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의 전면 사용을 의무화하여 아이들의 영양과 급식환경을 개선시켰다.


저자는 이와 같은 부패방지와 투명사회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의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하였다. 사회복지법인 송죽원에는 관선이사로 파견되었다가 비리구조를 투명하게 바꿔내고 대표이사를 맡아 요보호아동의 양육에 힘쓰기도 하였다.


김 전 수석의 이력은 한마디로 반부패와 청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어떻게 민주화되었고, 그 삶을 통해서 우리의 교육현장이 어떻게 부정의 늪에서 헤쳐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소신과 원칙의 아이콘이자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진정한 교육개혁의 적임자. 우리가 소용돌이치는 2022년에 김거성 혹은 그와 같은 용기를 다시 소환하는 까닭이다.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가 및 시민운동가,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송죽원 대표이사로 요약된다. 그의 이력의 정점에 사립유치원 개혁3법에 관한 험난한 과정이 놓여있었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명저인 <코스모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현대인들도 그들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별들 사이에 인류의 희망과 근심을 그리면서 바람직한 내일을 소망한다.”

저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고쳐 쓰고자 한다.

“우리는 용기 있는 선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별들 사이에 아이들과 부모들의 희망과 미래를 그리면서 바람직한 내일을 소망한다.”(작은 별들이 함께 모여 빛나 더 큰 별이 되고자 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문득 마음속에서 한 문장이 더 올라왔다. “용기와 지혜를 잃은 시민에게도 역시 더 나은 내일은 없다.”


아들에게 얘기해줬던 <함께 빛나면 큰 별>이라는 책은 김거성 외 18인의 삶에 관한 에세이일 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의 고통과 올바름에 관한 성찰의 기록이었다. 우리 시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우리 부모들과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바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아들과 정치와 대통령선거, 책 이야기를 하며 호빵을 호호 불어 먹는 동안, 창밖의 눈은 그치고 평화로운 겨울 풍경이 찾아왔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부정과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는 참다운 세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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