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 너의 리추얼이 내일의 너를 만든다는데..

by 지성파파

아이들이 인공위성처럼 자신의 삶 위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밥과 빵을 위한 구도의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누구에게나...


마땅히 동기부여가 없는 일상이 지속되고, 코로나는 누구의 미래든지 어둡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마스크 속 얼굴처럼 답답한 십 대들의 시간이 우주의 시공으로 스러지고 있었다. 학교 등교 수업은 어쩌다 하는 불편한 행사가 되었고, 자극 없는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숙제와 평가가 살아있는 학원 수업을 공부의 전부인 양 여기는 아이들이 도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라면이 고파 하이에나처럼 떠돌던 아들을 발견한... 상위 포식자인 아빠. 마음에 담아둔 한마디를 하고야 만다. (배고픈 아이들은 건들면 안 되는 건데.)


“아들아, 오늘 너의 리추얼이 내일의 너를 만든다고 하는데...”


아빠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배고픈 아들의 뚱딴지같은 표정을 보고는.

아빠: “이 무슨 싸구려 자기 계발서 같은 얘기냐고!”

“그러니까. 너 스스로 매일매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라는 거지.”

"너의 미래를 완성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현재에 있으니까. 이해 안 가시나?"


다행히도 아빠에게 라면 한 젓가락도 뺏기지 않고 밥 한 공기까지 추가한 아들은.

아들: “혹시 아빠는 4당 5락이니, 한 시간 덜자면 배우자의 얼굴이나 직업이 바뀐다느니. 그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하는 건 아니죠. 요새 누가 그런 걸 한다고.”

"아빠의 좌우명인가 먼가 했다던 'No Pains, No Gains'는 설마 아니겠죠. 우리 선생님도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모토였다고 말하던데..."


아들은 무슨 힙합 가수처럼 속사포로 자신이 하고픈 얘기를 쏟아냈다. 이런, 갑자기 방언이 터졌나!

"혹시 영국의 저 유명한 처칠 수상 흉내 내는 것은 아니죠?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실제 야망만 갖고 폭망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라는 표정이었다.)


잘 익은 배추김치에 라면 두 개와 밥 한공기를 뚝딱 해치운 아들. 만족스럽게 부른 배에 달콤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부라보콘 하나를 입에 물고 한마디를 던진다.(배가 불러도 질문을 던지는 걸 보니 배고파야 철학한다던 소크라테스가 틀렸나?)


"아빠, 근데 리추얼이 뭔가요? 영어 스펠링은요?"(옳지! 걸려들었군...)



리추얼(Ritual)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먼저 리추얼의 사전적 의미는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적 일"이지. 이걸 좀 더 보드랍게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행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지. 가장 쉽게 말하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좋은 습관”이라고 할까.(물론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처럼 사회 공동체적 시각에서 리추얼을 개념화하는 관점도 있지만, 이쪽은 어려우니까 일단 패스.)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이 리추얼인지 여부에 대한 기준은 없지. 그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리추얼>은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반복되지만, 그 과정에 의미를 두면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모든 행동들이지.


리추얼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 셀럽들의 일상 속에는 늘 그들만의 리추얼이 있었다고 하지. 그들을 유명인의 자리에 놓이게 한 저력에는 '특별한 습관과 행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록 그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의 평범한 개인들을 봐도 그렇지. 지속적인 좋은 행동들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 수 있지.


(고1 아들을 기준으로 해서 매일 국영수를 공부하고, 잠깐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복습하고, 친구와 카톡이나 게임을 최대한 자제하고 남는 시간에는 독서와 음악을 들으면... 그게 부모 입장에서는 최고의 리추얼이자 선물이지. 너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아빠에게도 쉽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대체 리추얼이 '' 중요하냐고....

리추얼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는 데 있지. 일부 심리학자들은 개인을 우주의 중심으로 두는 것을 배격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우리 스스로가 세상에 나오면서 우주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눈을 뜨지 않았으면 나의 우주는 없는 거니까. 결국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자존감의 실체는 '주인정신'이지.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가 제일 중요하다. 물론 어느 한 개인이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 법칙에 어긋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 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 우주 속의 나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누군가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의심을 갖겠지.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냐고.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 중심의 사고가 사회적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가 되지 않을까.

이런 리추얼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면 자아존중감이 강화되고 일상에서의 동기부여가 강화되겠지. 또 하나 리추얼은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거지. 즐거움이 없는 삶이 생각해봐. 끔찍하지. 우아하게 말해서 유희적 삶을 빼놓고 어떤 개인의 일생을 얘기할 수는 없지. 재미없이 일만 하다 가는 사람들처럼 가여운 캐릭터는 없지 않을까. 아마 본인들은 모를 테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모르게 다양한 리추얼을 갖고 있기도 하지. 아빠의 경우만 해도. 홀로 돌아다니는 산책시간과 내면(?)과 대면하는 혼술의 시간, 음악 들으며 책 읽는 시간들, 틈틈이 몽상하며 글 쓰는 시간들. 문제는 그 행위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는지,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지 이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아빠의 자존감이나 즐거움을 위해 의미가 있었냐고? 글쎄.. 스스로 대답하기는 그렇지만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 나만의 리추얼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고, 현재적 불안을 미래의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주는 활력소가 되는거 같아. 아빠 생각에는...



리추얼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 게 좋냐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람직한 습관의 완성'이지.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참아내며 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과정상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는 길고 긴 여정이지.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산책이나 역시나 위대한 작가 조정래의 산보가 그들에게 의미 있는 반복을 가져다 주었다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기만의 생활방식이 아주 유명해졌잖아. 새벽 4시 기상, 달리기, 글쓰기, 수영, 두부와 맥주마시기, 9시 이후 취침에... 보기에는 단순해서 쉬운 것 같지만. 막상 현실에서 매일 반복하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의지가 없으면 바로 작심삼일 코스지.


내 삶 속의 방향과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적 계획을 강구해야 할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지. 타인이 만들어 준 꿈과 의지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상당 기간 동안 반복하려면 열정과 의지 없이는 계속하기 힘들겠지. 공부나 사회적 성취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흔히들 말하는 '인내심' 말고도 자기만의 즐거움이 포함된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거지. 괴로움이 주가 되는 리추얼은 개념적 모순이니까.


그래서 리추얼은 우주의 중심이 자기란 걸 은근히 과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거야. 오롯이 자기만의 시공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어쩌면 그 의미를 모른 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까. 결국 자신만의 내적 동기를 극대화했을 때 리추얼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거지.

그렇다고 리추얼이 인생의 성공을 이끈다던지 행복의 근원이 된다던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거야. 어디까지나 리추얼은 과정의 문제이고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의 결과는 크게 생각하지를 않는 거지.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단순하게 노력하고 인내해라, 참고 견더라, 존버 해라."라고 하는 것은 결과를 중시하는 자기계발서의 논리구조이겠지만, 자신의 내면적 성찰과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리추얼은 인문학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지.(이렇게 말하다 보니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리추얼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리추얼은 단순한 습관이나 루틴의 개념을 뛰어넘는 특별한 무엇이지. 자신을 깨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그 무엇. 그게 무엇일까를 자신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리추얼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겠지. (물론 아빠를 포함한 대부분의 어른들도 알아차리기도 실천하기도 쉽지는 않지.)


아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아빠의 진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대답 없는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특이하게도 아빠의 말을 아이스크림 먹어 치우듯 허공에 사라지게 하는 리추얼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허무한 리추얼이 지속되면 안 되는데...

글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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