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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Dec 28. 2022

딸의 이직 고민과 아빠의 노후 준비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아빠, 내가 공기업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서울 소재지고 경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그러는데....”

딸은 이미 공기업 인사팀에 경력직으로 입사 가능성까지 타진한 상태였다.


“글쎄, 그 공기업이 지금 회사의 근무환경이나 급여, 사내복지나 만족도랑 어떤 차이점이 있는데... 그리고 장기적인 조직의 비전이나 안정성도 서로 비교하고 따져봐야 되는 것은 아닐까?”     


딸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크게 불만이 없는 대기업과 안정성 위주의 공기업 사이에서 추상적인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쪽 연봉과 저쪽 연봉이 숫자로 싸웠고, 저쪽의 장기적인 안정성과 이쪽의 미래비전이 우위를 다퉜다. 어느 날은 이직 쪽에 마음이 기울었고, 다른 날은 이직에 벌쩍 뛰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열두 번은 변심하고 오락가락했다. 옆에서 찬성하면 무조건 찬성한다고 욕을 먹고, 반대하면 생각 없이 반대한다고 비난을 받았다.(짜장과 짬뽕 사이에서도 갈등할진대, 이직의 고민은 더 깊고 넓을 수밖에...)


올해 연초에 이직을 생각하는 딸과의 대화였다. 큰딸은 대기업에 근무 중이고 잠시 공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공기업 공채에 응시해서 최종 합격까지 했다. 누가 보면 행복한 배부름으로 보이겠지만, 딸은 그 선택의 딜레마에서 고민 중이었다. 신체검사 전형만 남겨놓고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은 최종 선택을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라면 어떻게 할 거야?"(이런 질문은 불편하다. 가족이라도 내가 아닌 타인의 결정을 대신한다는 게... 그럼에도 대답을 해야 했다.)


아빠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앞으로는) 공기업이 마냥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시대도 아니고, 복지나 급여 수준을 보면 현재의 회사가 훨씬 낫기도 하고... 장래를 설계하면서 비전을 꿈꾸는 것도 지금 다니는 회사가 좋을 것 같은데...."     


이십 대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지 속에는 그다음 이삼십 년이 달려있었다. 지금부터 30대, 40~50대에 걸쳐진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딸과의 대화 속에서 현재의 근무환경이나 연봉도 중요했지만, 장기적인 전망이나 비전도 주요 테마 중 하나였다.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을수록 생각과 판단은 힘들어진다. 밥상에 반찬이 한두 가지 일 때와 십여 가지 있을 때 젓가락이 고민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다.   


딸은 덜 경쟁적인 근무환경과 장기적인 안정을 이유로 이직을 찬성했고, 아빠는 연봉과 장기적인 비전을 이유로 이직을 반대했다. 대충 보면 양자의 이유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여러 공사 조직에서 근무해본 아빠의 생각에는 안정성과 근무환경조차도 지금의 기업환경이 더 낫게 보였다.  더욱이 양 조직의 연봉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여러 날의 혼란과 갈등 끝에 딸은 결정했다. 아직은 이직을 위한 타이밍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자신에게 바람직한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미리 걱정하고 준비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딸의 이직 고민을 함께 하면서 "직업 선택의 고민"은 전생애적 문제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특정 시점의 고민과 선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과 삶의 질 모두가 그 선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좋든 싫든 밥벌이의 연속이다.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이상 그 수레바퀴의 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와 가족의 밥상과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월급날을 기다려야 한다. 특별히 노후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밥벌이의 생애주기에 대한 변곡점의 문제다.


큰딸은 이직에 대한 혼란 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그만큼 더 자랐을 것이다. 어느 한순간의 선택이 그 뒤의 많은 시간을 결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갈등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딸은 현재뿐만 아니라 자신의 30~50대에 이르기까지의 직업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평생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걸어가야 할 직업군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한 아빠도 딸의 고민과정과 결정을 욕먹으며 응원했다.


우리 대부분은 50대에 이르러서야 노후 준비를 고민하게 된다. 사실은 30~40대 혹은 그 이전부터 고민하고 준비하였어야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때는 그 나름대로 핑곗거리가 늘 마련되어 있었다.

"나중에 하면 되지 뭐, 어떻게 되겠지, 까짓 거... 살아있는 입에 거미줄 치겠어. 미래의 걱정을 당겨서 하는 것도 병이라던데...."

그런 변명들 덕분에 노후준비는 50대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뒤늦은 후회와 함께....


현재의 좋은 직업이 노후를 대비해주는 시대는 갔다. 제아무리 꿀 빨던 시절의 취직 얘기나 각자도생 시대의 취직난 얘기 속에는 어김없이 우리 미래가 담겨있다. 미래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정신없이 한 시절을 보내다 보면 어김없이 그 미래가 불안한 현재가 된다. 갈등하고 선택하며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 큰딸에게도 무언가 큰 결심을 해야 할 날이 또 올 것이다. 결국 딸의 이직 고민과 아빠의 노후 준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차분히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들이 급작스럽게 떠밀려 선택한 이들보다 결과가 좋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치밀한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도 낮다. 이십 대와 삼사십 대를 거치면서 준비한 이들은 50대 이후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계획적으로 준비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막연한 낙관론 속에 묻어두는지 모를 일이다.


현재의 중장년층이 노후준비가 안되어있는 가장 큰 이유는 노후의 문제를 “퇴직 직전의 고민사항”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노후는 미리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강점을 살리고 자신의 이력과 경험을 전략적 자산으로 삼아서 미래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 포트폴리오 속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있다. 준비에 대한 당위성은 숙명이고,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선택의 영역이다.


행복도 즐거움도 "Now and Here"여야 하고, 노후준비도 역시나 "Now and Here"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다 알고 말하는 이런 깨달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는 여전히 별개의 문제다. 오십 대에게도 이십 대에게도 같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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