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존재와시간 Oct 25. 2022

윤리학이 주는 위로 - 불안에 대한 위로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와,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불안입니다. 삶 안에서 위로가 필요한 것들은 많습니다. 그 많은 위로의 대상 중에서 불안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정서는 삶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편안하고 살만하기 위해서는 삶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서가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작은 자극에도 무너져 내리는 땅 위에는 어떤 것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두 발을 땅 위에 올리고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가끔은 그 부단한 노력이 무색하게 균형을 잃고 넘어지곤 합니다. 어떨 때는 발을 딛고 서는 것조차 어려워 스스로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발 밑에는 중력을 버티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손쉽게 서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지 하면서 무너져 내립니다. 중심을 잡는 내 모습이 성에 차지 않아, 이럴 바엔 하지 않겠다고 주저 않습니다. 중심을 잡고 있는 나를 흔드는 바람의 숨결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합니다. 손을 잡고 함께 중심을 잡아주던 사람이 떠나면, 주저앉아 울고 맙니다. 그리고 두 발을 땅에 대고서 일어나기도 전에, 오늘은 비바람이 불 것 같다는 생각에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단단하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데에는 이처럼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흔들림의 중심에는 불안이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박혀있습니다. 





  불안은 이유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 또는 안도감이나 확신이 상실된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나를 흔드는 자극에 방어할 확신이 없다면 무너져 내리겠지요. 확신이 없다면 안도감을 느끼기도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확신과 안도감이 없다면 불쾌한 정서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불안의 정의에는 불안의 원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잘하고 있다는 확신의 부재로 인한 완벽주의, 나를 흔드는 자극은 비합리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의 부재,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얻을 수 없는 안도감, 삶의 불확실성 그리고 애착 대상의 상실로 인해 결여된 안도감. 이러한 것들이 불안의 원인일지 모릅니다. 인간을 생존하게끔한 기본 정서이지만, 역으로 인간이 생을 유지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불안입니다. 필요하지만 잘 다루어야 하는 불안에 대한 해법을 윤리학을 바탕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윤리학이 불안에 대해 주는 위로를 통해, 확신과 안도감을 갖고 편안한 정서적 상태를 맛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 나무위키

이전 06화 윤리학이 주는 위로 -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