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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은 결혼생활과 같다

행복한 이민생활을 위한 소소한 팁

by 영오

요즘은 남들 결혼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남들의 결혼생활을 들여다보면서 참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패턴은 비슷하구나 싶다. 신혼 초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모든 게 다 이쁘게 보이다 한 삼 년 지나고 서서히 열정이 식고, 아이도 태어나서 현실의 무게가 하나둘 늘어나면 이제 결혼생활은 더 이상 설렘이 아니라 그냥 매일매일이 비슷한 권태로 바뀌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결혼이 비슷하지만 가끔 그중에서도 세월의 권태를 비켜간 커플들을 가끔 본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시간이 지나도 좋은 감정이 변하지 않는 요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외모든, 성격이든, 유머감각이든, 내가 처음부터 좋아했고 반했던 무언가는 시간이 지나도 나를 웃음 짓게 하고 그런 게 있는 부부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얼굴 뜯어먹고 살거 아니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 얼굴이 때론 꽤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민도 결혼생활과 비슷하다. 이민을 처음왔을 때는 모든 게 다 새롭고 설레고 아름답다. 낯선 것들도 신선하게 느껴지고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꿈꿔왔던 소원을 이루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이다. 여행을 왔던 곳이 내가 살아가는 곳이 되면 현실이 되고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치 결혼생활이 변해가는 것처럼. 한때 이민을 준비하면서 다른 이민자들의 수기 비슷한 경험담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스토리도 비슷했다. 북유럽으로 이민을 간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1년의 시간 동안 서서히 그 시선이 변해가는 것이 웃프게 다가와서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모든 것을 사랑했던 그 시선이 나중에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엔딩으로 끝나는 서글픈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나도 한 삼 년 있다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고 극찬하는 포르투갈은 리스본의 아름다운 전망대나 테주강이 보이는 코메르시우광장 정도에만 있다. 관광지를 벗어난 포르투갈은 마냥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오히려 20,30년 정도 발전이 뒤진 후진국에 가깝다는 느낌도 자주 받는다. 관공서에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하루 25명만 처리를 하는 나라, 은행에서 통장하나 만드는데도 이삼일이 걸리는 나라, 아직도 열쇠를 주렁주렁 가지고 다녀야 하는 나라. 살다 보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일상이 되고 짜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민자로 오래 산 사람들은 포르투갈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포르투갈이 좋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포르투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줄레주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 아줄레주를 정말로 좋아한다. 특히 리스본의 대부분 건물들 외벽이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늘 감동한다. 건물을 이런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을 해놓았다는 것도 감동이고, 타일 문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도 감동이다. 낡은 것들은 낡아서 좋고, 상태가 잘 보전된 것들은 새것 같아서 좋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여기에 사는 일이 짜증이 나다가도 눈을 들어 아줄레주를 바라보고 오래된 건물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게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고,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면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권태는 덜어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왜 이곳이 좋은가에 대한 해답. 모든 이들이 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으면 되는 거지. 이 파란 아줄레주를 바라볼 수 있는 한, 나는 포르투갈을 사랑할 것 같다. 아줄레주가 있어서 나의 이민생활은 종종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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