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자, 아프지 말고
사실 올해 귀국을 할 예정이 없었는데 일이 생겨서 아이 방학기간에 한국에 들어와 있다.
오랜 기간 못본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들,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었다.
그런데, 들어온 날부터 나는 사람들의 병진단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생 야근에 치어 살던 친구는 유방암에, 가족 중에는 암이 뼈로 전이된 소식도 있었고
이런저런 수술을 받은 지인들, 암투병을 하던 언니의 남편상까지 귀국을 하고 나서
계속된 슬픈 소식에 내 마음도 슬픔에 잠겼다.
여기저기가 아플 나이가 된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힘들어했다.
왜들 이렇게 아픈 걸까? 한집 걸러 암환자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사는 것의 어려움은 해가 가도 나아지는 거 같지 않으니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참, 마음 편히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구나 싶었다.
알고 지낸 지 삼십 년이 되어가는 언니들을 만나서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전한 듯했지만 이제는 얼굴 여기저기 보이는 주름, 희끗희끗 해진 머리를 보면서 우리도 이제 늙어가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 중 제일 건강했던 언니가 작년에 수술받은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렇지 않은 시술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내용은 꽤 심각했던 것 같은데 언니는 그저 웃으며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술 한잔씩 한다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그런데 새벽녘에 언니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급체를 한 것인지, 술 때문인지 알지 못한 채 괜찮냐고 물었고 언니는 힘이 없는 소리로 괜찮다고만 했다. 그렇게 언니를 걱정하면서 아침을 맞았고 우리는 근처 대구탕집에 가서 해장을 했다. 다행히 그 뒤에 언니는 기력을 회복했다.
사실, 그 언니는 우리 중 제일 튼튼했던 사람이고 운동도 일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적지않이 놀랐다. 근래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발병의 원인이었고, 그 이후로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속이 상했다.
왜 삶이라는 것이 좀 수월하고, 행복할 순 없는 걸까? 왜 이처럼 매 순간 버거워야 하는 걸까?
다음 주에는 친구가 암수술을 받는다. 그 친구도 일에 치여살다가 결혼시기를 놓쳤고, 부모님 병원수발을 하다가 자기가 덜컥 암에 걸려버린 상황이었다. 속이 상해서 눈물을 흘리니,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담대하게 암을 대하는 모습은 내심 안심은 되면서도 투병을 시작하는 친구의 힘듦은 고스란히 아픔으로 다가왔다. 친구야, 잘 견뎌보자. 이것도 지나고 보면 그냥 많은 인생사들 중 하나일 테니.
언니들과 헤어질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들, 제발 건강하게 잘 지내. 그리고 우리 포르투갈에서 만나자."
작년에 떠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웃으면서 인사를 했는데 일 년 사이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포르투갈에서 만나고 싶지만 이곳은 사실 그렇게 가깝지 않다.
너무 좋은 곳이고, 그래서 내 가족들,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에 오기는 물리적, 시간적으로 쉽지가 않다.
거기다 건강까지 따라주질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만나자는 약속의 말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자이언티가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양화대교에서 외쳤듯이,
나는 '건강하자 아프지 말고'를 외치고 싶었다.
우리, 아직 젊어.
그러니, 우리 모두 건강히 지내다, 포르투갈에서 꼭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