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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Jan 18. 2020

승무원도 터뷸런스가 무섭습니다만

쫄보 승무원의 터뷸런스 체험기

나는 보통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일에는 비교적 담대한 편이지만, 놀이기구는 못 타는 쫄보이다. 젊을 때는(?) 자이로드롭도 연속해서 다섯 번씩 탔었는데, 어느 시점에서인가 놀이기구를 포함한 익스트림 스포츠가 극도로 공포스럽게만 느껴졌다.



신랑이 결혼 전 두바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길래, 비싼 돈을 내고 왜 그런 거를 했냐며 타박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돈을 주고 하라 꼬드겨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몸서리를 다. 그런 체험은 승무원 때 많이 해봤다면서.






난기류 혹은 터뷸런스라 불리는 그것은 공기의 흐름이 불규칙한 현상을 말한다. 바람의 불규칙한 변화, 상승기류와 하강기류 같은 수직류가 난기류의 원인이다.


보통 터뷸런스는 자카르타, 마닐라, 방콕 같은 동남아  노선에서 흔하게 나타났다. 부분의 터뷸런스는 예측이 가능해서, 브리핑 시간에 조종사들이 언질을 준다. 이륙하고 몇 시간 뒤, 혹은 TOD(Top Of Decent:비행기 하강 시점) 몇 시간 전이라고 구체적인 시간도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비행기보다는 작은 비행기, 머리 쪽보다는 꼬리에서 흔들림을 느끼게 된다.



만석의 작은 비행기오만에 가고 있었다. 오만은 최단거리 노선 중 하나로 비행시간이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간단한 서비스가 끝나고 서서히 기체가 불안정해을 느꼈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재빠르게 기내를 시큐어 하고 서둘러 기내 방송을 했다. 화장실 사용을 일시적으로 금하고 모두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라는 내용이었다. 화장실 앞에 서있는 승객을 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도 황급히 벨트를 매었다. 처음에는 옆에 앉은 동료와 마주 보고 웃으며 조는 시늉을 했다. 이까짓 흔들림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지 않냐며, 지루하다는 우리만의 장난 섞인 허세(?)였다.



그 순간이었다. 비행기가 자이로드롭처럼 수직하강을 다. 이어 비행기가 거대한 테일 셰이커가 된 듯 위아래로 흔들렸다. 



승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울부짖기 시작했고, 몇몇은 아랍어로 기도문을 외웠다. 많은 이들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부모들은 자식을 껴안고, 연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떤 이는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써 그에게 웃어 보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속으로는 말 괜찮은 건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비행기 안은  마치 지구 대멸망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 같았다.



승무원 생활 4년 만에 그런 존재감 넘치는 터뷸런스는 처음이었다. 만약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인간 로켓이 되어 천정으로 솟구쳐 머리를 박았을 것이 확신한다.



나는 내가 승무원이자,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프로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아니 잊은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시의 나는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쫄보 한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찡그리고 옆자리 동료를 보며 무서워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론 기내의 데시벨이 워낙 높았던 탓에 나의 외침은 그 누구도 듣지 못했으리라.



그 동료도 상당히 겁에 질린 듯 보였지만, 나보다는 프로다 모습으로 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면 승객들불안해해!"

"나도 아는데 무서워 죽겠는 걸 어떡하냐고.  바이킹도 잘  못 타는 사람이라고."

"바이킹이 뭔데?"

"너네 나라에 바이킹 없어? 좌우로 흔들흔들하는 놀이기구 있어. 아무튼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너 안 죽을 거야. 걱정 마"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내가 앉은자리가 승객들과 같은 방향의 자리여서 그들이 나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승무원이 되고 이 직업을 가진 것을 후회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것은 모두  터뷸런스를 만난 비행기 안에서였다. 정도가 심한 터뷸런스를 만날 때마다 곧 비행기가 추락할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무리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해도 일하다가 죽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몇 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국 비행도 아니고 이 짧디 짧은 비행길에서 죽고 마는 건가. 재수도 없지. 기서 비행기가 추락해 버리면 한국 신문에서 속보로 나올려나.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 말고 누가 슬퍼하려나. 보상금은 얼마나 나올까. 그 돈으로 부모님 노후 걱정 안 하고 사실 수 있을까.



이렇게 죽는다면 조금 억울할 것 같긴 한데. 결혼도 아직 안 했고. 못해본 것도 많은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부모님께 잘할걸. 맨날 짜증만 낸 나쁜 딸이네. 이번에 살게 되면 극진한 효도를 하면서 살아야지. 질구레한 일들은 날려 버리면서 살아야지.  비행이 나를 살려준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언가는 백만장자도, 거지도, 절세미녀도, 연예인도 일반인도, 정치인도, 우리의 부모님도, 나도, 내 자식들도 죽고 말 것이다. 



그날의 터뷸런스는 나에게 단순한 공포체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버둥거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우리는 왜 순간을 즐기면서 개미 같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지 다.



실제로 내가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승무원만 되고 나면 인생에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모든 게 술술 풀릴 줄만 알았다. 가끔 비행을 하면서 순탄한 비행, 험난해서 진을 다 빼놓는 비행, 기억에도 남지 않는 비행, 처음부터 끝까지 풀리는 게 하나도 없는 비행, 즐거운 비행을 하면서 미니 인생 체험을 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승무원을 한 6년여간의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승무원을 하고 나서 얻은 것은 이렇듯 경도의 수면장애뿐만이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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