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꿈과 소망과 간절함을 담아 행복을 꿈꾸는 우리에게
누구나 살면서 '이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과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어쩌면 그 신선함에 (신선하다는 생각을 남들이 들으면 더 놀랄) 이 글을 엮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영끌이다보니 아예 그런 상상은 그저 몽상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현실주의자이다보니 당장 주어진 프로젝트를 잘 해결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생활에서는 언젠가 살 집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건조한 마음에 단비가 되어준 나의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직무 교육을 맡아 진행했던 때의 일이다. 프레젠테이션과 스피치를 코칭하는 모듈이었는데 인사에 반영이 되는 엄중한 교육이지만, 그렇다고 외부 교육으로 진행하는 직무 연수를 진짜 심각하게 진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하루 여덟 시간씩 반복되는 며칠 동안의 교육에서 교육생들에게 약간의 숨통을 틔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 직급의 서른 명의 사람들에게 각각 어떤 소망과 희망이 있는지 말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스피치 주제는 '나의 최근 관심사'로 설정하고,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겉으로는 발표 역량을 평가하는 자리였지만, 나는 한 명 한 명의 관심사에 빠져 든 청중이 되어드렸다. 이제 막 대리가 된 신입 대리도, 몇 년 동안 일을 잘하고 있는 슈퍼 울트라급 대리도 관심사로 '집'을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 꽤 많았다. 듣고 있으니 그동안 나는 '집도 없었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꿈 없이 여태 일만 잔뜩 하면 살았나 반성하는 게기이기도 했다. 이 날을 계기로 정말 최대한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나의 공간들과 코로나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 며칠 씩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더 진지하게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일이 재미있었고, 일이 많았고, 일이 바빴고, 일에 치였었다. 집은 정말 씻으러 들어가는 곳, 잠도 쪽잠을 자러 가는 곳일 정도로 대학 때부터 스무 해를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 내 인생의 관심사는 일과 경력이었고 그 일과 경력을 만들어 낼 쉼이 되어줄 집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집이 관심사인 사람 중에는 최근에 집을 마련한 사람도 있었고, 그중에 현관과 화장실 빼고 모두 은행 지분이라는 웃픈 현실을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고, 다른 이는 현실적으로 1층이기만 하면 층간소음 가해자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사람은 집은 둘째치고 자신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면 모두 아이의 공간이어서 또 다른 키즈카페를 가는 것 같다며 조용히 넷플릭스 볼 수 있는 작은 안락의자와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저마다 꿈꾸며 바라는 공간에 대한 바람이 다르다. 한 명씩 발표가 끝나고 박수받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찰나 나 역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바람에 바람을 더했다. 천장이 좀 높은 집이면 좋겠다, 내가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책 읽을 수 있는 다락방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천창이 있으면 햇살을 받으니 더 좋겠다, 그리고 그토록 고생하며 내 미간 주름의 8할을 차지하는 층간소음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질 수 있는 꼭대기 층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꿈꾸는 집을 그리면서 한 평씩 넓혀가고, 한 층씩 높여가고 있었다. 뭐 어떤가, 바람과 소망은 돈이 들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상상 더하기를 계속해나가고 있을 때, 한참 말 줄임표로 응대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지금 집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기도 한데요, 무엇보다 지금 함께 사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같이, 오래오래 살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디에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고. 선택지가 있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한다면 적당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말이다.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서 산들, 매일 혼잣말만 하며 들어줄 이 없이 사는 삶은 어쩐지 너무 외로울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그리고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