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를 키우면 둥글어져요
시작은 고무나무였죠
펜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초록 식물에 눈이 갔다. 아무나 해도 누구나 하긴 어려운 가드닝이라지만, 싱그러운 계절에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 줄 사실, 그때 알았다. 다시 초록이 가득하던 외갓집을 떠올리며 집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졌다. 처음엔 옥상을,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 베란다를 그렇게 채워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임이랑 작가의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권합니다> 책을 보며 몬스테라를 들일까 했었다. 몬스테라의 이국적인 모습만 이 집에 있어주면 해외여행도 좀 덜 부러울 것 같았다. 그러데 그 정도 만족감을 가지려면 정말 큰 몬스테라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데 그걸 사려고 하니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고, 그 뒤따르며 또 계산하는 내가 싫어졌다. 그런 마음이 며칠을 머릿속을 흩날리다 물 주기를 잊어버린 화초처럼 말라가고 있을 때, 우연히 마트에서 고무나무를 만났다. 고무나무는 얼핏 두 뼘 반 정도 되는 크기로 양손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내가 폭 안고 오면 화분을 정말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상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는 표지 팻말과 순둥순둥하게 잎이 둥글넓적하고 맨질맨질한 것이 맘에 들었다. 그래, 요즘 아주 마음 이곳저곳이 선인장처럼 뾰족뾰족한데 이 둥근 잎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자.. 이 둥근 애가 내 옆에 있으면 나도 좀 둥글어지고 푸르러질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며 검색하니 키우기 쉬운 화분인 데다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했다. 검색한 글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나는 고무나무를 들고 계산대로 이미 이동하고 있었다. 화분은 다른 여러 키 큰 화분들 옆에 있을 땐 몰랐는데 집에 오니 제법 존재감이 확실했다. 마트보다 집이 당연히 작으니 화분이 더 크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큰 방과 옷 방 사이 거실에서도 보이는 자리에 고무나무가 자리 잡았다. 집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잘 보이는 위치였다. 가끔 내가 쭈그러져 있으면 그 고무나무가 이런저런 말로 나를 '고무시켜주는 것' 같았다. 단순한 말 놀림이 아니다. 라임 맞추기도 아니다. 집 안에 화분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운지 마음이 정말 허전해보면 안다. 무생물 투성이의 물건들 사이에 조금 다른 방법이긴 해도 뭔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시간에는 말이다. 어디선가 외롭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당신이 자주 지나치는 자리에 작은 고무나무를 들여놓길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스스로를 응원하기 시작하며 하나둘씩 들인 고무나무 친구들이 이젠 제법 천천히 세어봐야 할 만큼 늘었다. 뾰족하고 가늘고 숱이 많아 꼭 레게 머리를 한 것 같은 드라세나 드라코는 내 키 만하고, (식물 이야기 잠깐) 베란다에 들일만큼. 물 주기 잊은 날, 물을 며칠 간격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날씨와 기온과 습도를 살펴야 한다는 것, 같은 하루가 주어져도 매일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아이들이 매일 크고 있기 때문에 사실 신발 신은 발 크기가 매일 달라져 넘어지기 쉽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화분도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매일 다른 하루와 조금씩 변하는 건강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또 그와 연결된 나를 미처 살피지 못하고 주어진 시간만 채워가는 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때보다는 마음이 제법 둥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고무나무 덕분이다. 작은 그 집이 좋았던 기억만 남은 것도, 지금 다른 화분들을 가꾸며 또 다른 의미를 알아가게 해주는 것도. 역시 숨 쉬는 것은 숨 쉬는 것들끼리 붙어살아야 한다. '조금 외로운 당신에게 고무나무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