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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Oct 25. 2021

고무나무를 키우면 둥글어져요

시작은 고무나무였죠

펜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초록 식물에 눈이 갔다. 아무나 해도 누구나 하긴 어려운 가드닝이라지만, 싱그러운 계절에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 줄 사실, 그때 알았다. 다시 초록이 가득하던 외갓집을 떠올리며 집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졌다. 처음엔 옥상을,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 베란다를 그렇게 채워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임이랑 작가의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권합니다> 책을 보며 몬스테라를 들일까 했었다. 몬스테라의 이국적인 모습만 이 집에 있어주면 해외여행도 좀 덜 부러울 것 같았다. 그러데 그 정도 만족감을 가지려면 정말 큰 몬스테라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데 그걸 사려고 하니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고, 그 뒤따르며 또 계산하는 내가 싫어졌다. 그런 마음이 며칠을 머릿속을 흩날리다 물 주기를 잊어버린 화초처럼 말라가고 있을 때, 우연히 마트에서 고무나무를 만났다. 고무나무는 얼핏 두 뼘 반 정도 되는 크기로 양손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내가 폭 안고 오면 화분을 정말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상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는 표지 팻말과 순둥순둥하게 잎이 둥글넓적하고 맨질맨질한 것이 맘에 들었다. 그래, 요즘 아주 마음 이곳저곳이 선인장처럼 뾰족뾰족한데 이 둥근 잎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자.. 이 둥근 애가 내 옆에 있으면 나도 좀 둥글어지고 푸르러질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며 검색하니 키우기 쉬운 화분인 데다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했다. 검색한 글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나는 고무나무를 들고 계산대로 이미 이동하고 있었다. 화분은 다른 여러 키 큰 화분들 옆에 있을 땐 몰랐는데 집에 오니 제법 존재감이 확실했다. 마트보다 집이 당연히 작으니 화분이 더 크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큰 방과 옷 방 사이 거실에서도 보이는 자리에 고무나무가 자리 잡았다. 집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잘 보이는 위치였다. 가끔 내가 쭈그러져 있으면 그 고무나무가 이런저런 말로 나를 '고무시켜주는 것' 같았다. 단순한 말 놀림이 아니다. 라임 맞추기도 아니다. 집 안에 화분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운지 마음이 정말 허전해보면 안다. 무생물 투성이의 물건들 사이에 조금 다른 방법이긴 해도 뭔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시간에는 말이다. 어디선가 외롭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당신이 자주 지나치는 자리에 작은 고무나무를 들여놓길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스스로를 응원하기 시작하며 하나둘씩 들인 고무나무 친구들이 이젠 제법 천천히 세어봐야 할 만큼 늘었다. 뾰족하고 가늘고 숱이 많아 꼭 레게 머리를 한 것 같은 드라세나 드라코는 내 키 만하고, (식물 이야기 잠깐) 베란다에 들일만큼. 물 주기 잊은 날, 물을 며칠 간격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날씨와 기온과 습도를 살펴야 한다는 것, 같은 하루가 주어져도 매일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아이들이 매일 크고 있기 때문에 사실 신발 신은 발 크기가 매일 달라 넘어지기 쉽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화분도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매일 다른 하루와 조금씩 변하는 건강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또 그와 연결된 나를 미처 살피지 못하고 주어진 시간만 채워가는 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때보다는 마음이 제법 둥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고무나무 덕분이다. 작은 그 집이 좋았던 기억만 남은 것도, 지금 다른 화분들을 가꾸며 또 다른 의미를 알아가게 해주는 것도. 역시 숨 쉬는 것은 숨 쉬는 것들끼리 붙어살아야 한다. '조금 외로운 당신에게 고무나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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