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Oct 25. 2021

애정을 아주심기

공간에 애정을 주는만큼 윤이 납니다

외박이 늘었다. 그것도 내 진짜 집이 생긴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다시 주말부부처럼 밖에서 지낸다. 결혼한 사람이 그것도 자주 혼자 호텔을 드나드니 주변 지인 중 '유교걸'과 '유교보이'들은 안됐다며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접근성 좋은 비즈니스 호텔을 잘 골라서 최대한 가성비 좋게 일하며 이동하며 지낸다. 인생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내 집이 생긴 이후 호텔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다. 내게 역마살이 많은가 싶기도 하고, 남들은 비대면으로 많은 일을 한다는데 난 대면과 비대면의 비중이 반반이다. (<온택트 시대 비대면 말하기 수업> 책을 쓴 저자인데도 말이다.) 어떤 비대면 교육은 형식은 비대면이나 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에 가서 거기서 마련한 시설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것이니 교육생들만 대면하지 않을 뿐 스케줄로만 보면 내겐 대면이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거주 지역이나 인근이 아니면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종일 교육은 하루 전날 이동한다. 모두를 위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와 내가 머물렀던 한 평 한 평들을 꽤 진지하게 톺아보았다. 스스럼 없이 나의 공간들을 내보일 수 있었던 용기가 생긴 것은 지금 한 공간에서 단위 시간대비 이렇게 집에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러면서 그 사이사이 끼어 있는 나를 끄집어 내서 탈탈 털어 햇볕에 말렸다. 이제 다시 밖에 나갈 때 그런 나를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조금은 그런 용기가 생겼다. 무심코 sns에 올린 초등학교 때 달리기 사진을 보고 "00님은 어느 초등학교 나오셨네요." 하고 인사를 받을 때, 또 쓸데없이 진지한 나는 "네." 라고 짧은 대답을 남기긴 했지만, 사실 그 이후로 두 번의 전학을 더 갔으므로 명확하게는 사진 속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다고 말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과 찝찝함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만난 적도 없는 그저 인친인 사람에게 내 전학 스토리를 TMI로 들려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사회생활을 했던 곳곳이 모두 다른 지역이었던 나는 이동한 거리만큼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많났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곳에 머물러 그 동네를 깊게 보지는 못했지만, 그저 세상을 얕지만 넗게 볼 수 있는 쪽이었다고 이제는 좀 깊게 보겠노라고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다. 남편은 현재 거주지에 나를 아주심기하려고 마음이 바쁜 것 같다. 다시 주말부부를 하게 될지, 아니면 내가 여러 배려를 받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맞춰 나가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벽돌을 쌓듯 하나씩 천천히 견고하게 말이다. 이 벽돌이 다시 옆으로 넗어질지, 위로 높아질지는 미지수다. 더 좋은 여건이 되면 정말 남편의 바람대로 작은 섬에 세컨 하우스를 마련할 수도 있고, 큰 정원이 있는 집으로 옮겨갈 수도 있으니까. '아주 심기'든 '옮겨 심기'든 진짜 내 집의 의미가 좀 달라졌다. 집 주인은 그 집에 머물며 애정을 주는 사람이 진짜 집주인이라고 말이다. 나의 집.zip 폴더에 더해질 또 다른 집이 있을지 앞으로 모를 일이지만 지금부터는 애정을 더 주어야겠다는 마음만큼은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거쳐 온 집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동안 애정을 주지 못했던 집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사람도 공간도 애정을 주는만큼 윤이 난다. 공을 들이지 않아도 그저 애정어린 손길, 눈길이면 충분하다. 애정을 아주심기해야겠다. 나의 공간에.

이전 10화 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