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은 마음 한 끗 차이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뜨자마자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10분경.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한 다리를 밖으로 떨어뜨리고는 발끝을 더듬어 슬리퍼를 끼워 신고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로 액정 위로 엄지손가락을 오락가락 밀어 올리면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던 나의 시선은 댓글 하나에 확 꽂히고 말았다. 신경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았다. 손에 든 물 컵이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얼마 전에 쓴 글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 실시간 올라가는 숫자를 보는 게 신기했던 터라, 눈을 뜨자마자 오늘도 내 글을 찾아 댓글을 읽을 생각에 마음이 설레던 아침이었다.‘응? 이게 무슨 말이지?’ 댓글을 읽는데 심장으로 돌 하나가 ‘쿵’하고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따귀를 맞았을 때의 화끈거림이 얼굴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난생처음 악플을 받아보니 왜 악플도 폭력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악플이 처음이니 자칫하면 이렇게 맞다가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관심보다는 그래도 악플이 낫다고 하지 않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마음에 중심이 필요했다. 그리고는 악플에 요동치던 감정을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댓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불편한 감정을 걷어내고 찬찬히 읽어보니 그렇게 나쁜 의미만 담긴 것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 글에 대한 신선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았더니, 좀 전의 혼란에서 의외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본다고 자신하지만, 감정적인 잣대로 타인의 말들을 받아들일 때도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연스러운 이치임에도 나에게 우호적인 입장의 이야기만을 들으려 한다. 나에게 부정적인 댓글을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개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인식은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군가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시가 돋친 말은 머릿속을 빙빙 돌다 나의 멘털을 탈탈탈 털어버리곤 한다. 악플임을 인지했던 순간, 마치 시리도록 차가운 물로 온몸을 흠뻑 적시고 뼛속까지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 생긴 불편한 마음은 눈 녹듯 녹아내리거나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불쾌함이 더 가중될 뿐이다. 만약 불편한 마음을 어둠에 비유하고, 해소된 마음을 빛에 비유한다면 어둠과 빛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면, 휘몰아치는 어두운 감정에 가려져있던 진실이 밝게 드러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마음속 어둠이 빛으로 뒤바뀌는 관점의 변화! 이것은 마음 한 끗 차이에 달린 문제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속 한 장면이 때론 비극이 되고, 때론 희극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마음 한 끗 차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기술이 바로, 마음 한 끗 차이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희극과 비극의 미묘한 차이를 행운 씨와 불운 씨의 특별한 여행기 <<행운을 찾아서>> 그림책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름부터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 행운 씨와 불운 씨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다. 둘은 우연히도 동시에 휴가를 떠나는데, 목적지가 같다. 여행에서 똑같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지만,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다르다. 나에게 찾아온 운을 행운으로 바꾸느냐, 불운으로 바꾸느냐는 결국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두 편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곤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의 가방이 열려 있었지요. 아주머니는 서둘러 가방을 닫으려 했지만 너무 당황한 탓인지 한 번에 닫지 못했습니다. 버스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를 남겨 두고 떠나 버렸어요. 신사중의 신사인 행운 씨는 얼른 아주머니를 향해 마을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진짜 휴가가 시작됐습니다. 가는 길에 행운 씨는 자신이 휴가 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감사의 뜻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나섰어요. 행운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들인 크리스토발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훌륭한 뱃사람이었지요. 저녁을 먹은 다음 세 사람은 세레레 섬과 해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제 요트로 여행을 하시죠.”
“버스 정류장은 온통 장애물 경기장 같았습니다. 불운 씨는 달리기 선수처럼 달렸지요. 그런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때문에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습니다.(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행운 씨가 아주머니를 도와주는 모습을 지나치며) 그는 가까스로 자리에 앉은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잠시 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불운 씨는 그만 깜박 잠들었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한참 지나고 말았어요. 버스 기사가 불운 씨를 깨운 건 버스가 조그만 마을에 멈춰 섰을 때였습니다. 그곳은 버스 종점인 머언 동네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항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버스를 아무리 뒤져도 그의 가방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둑놈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했습니다. 내 가방을 훔쳐 가다니! 더 황당한 건 묵을 만한 숙소조차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이름에서 느껴지다시피 행운 씨는 매사에 느긋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돌발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행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반면, 불운 씨는 조급한 마음에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다. 온갖 불만과 상황을 바꾸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불운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인생에 행운과 불운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도 행운과 불운은 공평하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렇듯 운은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다만, 나에게 찾아온 운을 행운의 씨앗으로, 아니면 불운의 씨앗으로 바꿀지는 우리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다.
✅ 그림책 정보 <행운을 찾아서>
✍️ 세르히오 라이를라 글. 아나 G. 라그티테기 그림 / 살림어린이
이름부터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너무도 다른 성향의 두 주인공, 행운 씨와 불운 씨. 두 주인공이 같은 시각, 같은 목적지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진정한 행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위를 봐요!>
✍️ 정진호 지음 / 현암 주니어
앞만 보며 걸어가던 사람들이 위를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고, 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몸이 불편해 늘 혼자 있으면서 소외된 채 지내던 수지와 길 가던 아이가 친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부터는 늘 시선을 두던 곳에서 눈을 돌려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옆도 보면서 주변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