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카드_'성패도'
성공과 실패
- 성패도(成敗途) -
성공과 실패가 함께 만들어내는 삶의 길
얼마 전, 아이의 중학교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가을이 막 시작된 운동장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고,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 흩날렸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환호와 응원의 소리. 그들의 땀과 숨소리가 운동장 위에서 생중계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관중석 끄트머리에 조용히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아이는 진지했다. 타석 앞에 서면 세상에 오직 공과 배트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묵직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어깨를 툭툭 털며, 입술을 앙 다문 채 투수를 노려본다.
"이번엔... 제발 안타 치자."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찰나의 순간_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갔다.
시원하게 연결되는 타구였지만 아쉽게도 외야수 글러브 속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후_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쉽다, 아쉬워. 마지막 경기인데, 멋지게 장식하진 못하겠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의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공하나에 울고 웃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시원하게 적시타를 휘둘려 속을 뻥 뚫어주는 날이 있는가 하면, 결정적인 실수로 패배감을 맞본 날도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 수밖에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치열한 삶의 현장.
그 순간들을 지켜보며 나는 매번 일희일비했다. 패배감에 휩싸이는 날이면,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내뱉기도 했다. "이제 그만하자. 아무래도 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운동장으로 향했다. (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겠지만) 낡은 배트를 들고, 흙 묻은 모자를 눌러쓰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얼굴로.
야구장 안에는 언제나 두 개의 리듬이 있다.
하나는 아이의 리듬.
투수의 손끝, 공의 회전, 타이밍에 맞춰 스윙하며
자신의 무대를 살아내는 강한 심장의 박동.
그리고 또 하나는 엄마의 리듬.
공이 날아갈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아웃이면 한숨, 세이프면 환호.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불안의 박자.
아이는 열정으로, 나는 불안으로 단련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리듬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실패를 받아들이듯, 나도 조금씩 결과 대신 과정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타구가 꽤 멀리 갔네'
'스윙 궤적이 날카로워졌어.'
'공 잡으러 달려가는 걸음이 빨라졌네'
그 사소한 변화들이 작은 위안이 되고, 작은 성취가 되었다.
아이의 운동 인생은 말 그대로 성패도의 현장.
성공과 실패가 뒤섞여 만들어지는 길.
나는 그 길의 한켠에서, 응원과 불안을 동시에 품은 채 걷고 있다.
며칠 후,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는 아이의 중학교 야구부 생활을 함께 돌아보았다.
"이제 끝났네. 중학교 3년, 정말 고생 많았다. 힘들었지?"
남편의 말에 아이는 슬쩍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엄마 아빠, 나는 야구하는 게 너무 재밌어."
그 한마디에 모든 논리가 무너졌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내 불안 따위는 무슨 소용이랴. 그 단순한 이유 하나가 오늘도 나를 이 자리에 앉게 한다.
아이의 이어진 말은 더욱 단단했다.
"처음엔 애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실력이 많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그 차이를 많이 좁힌 것 같아. 고등학교 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늦게 시작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조금씩 성장한 자신을 담담히 말하는 아이의 눈빛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이 길 끝에 성공에 다다를 것 같은 강한 믿음이 밀려왔다. 그 알 수 없는 믿음이, 내가 아이의 꿈을 지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야구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몇 번이고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강하게 붙잡게 했던 문장이 있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은 찾아오지 않는다. 고통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 성공이라는 글자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수없이 작은 실패가 개미처럼 많이 기어 다닌다.
-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이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며, 나는 오늘도 아이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걷는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이 시점에서 솔직히 말하면, 이젠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못 먹어도 고. 어차피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이젠 불안보다는 믿음을 택하기로 했다. 결과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게 또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성패도의 길 위에서 나는 아이의 걸음을 믿는 법을 배우고 있다. 결국 이 길의 완주는 '이기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걷는 자'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