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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용기로 삶에 도전하다

나로카드_'두용'

by 김글향
두려움과 용기
- 두용(斗勇) -
두려움을 용기로 이겨내며 나아가는 힘




요즘 내 하루는 유난히 고요하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떠난 지 한 달. 익숙한 일상이 사라지자 세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일할 땐 늘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아 하루가 길게 늘어진다. 그 속에서 나는 자주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퇴사는 회사의 사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인생의 중반기를 맞이하며 문득,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까?' 하는 물음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떠나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두려웠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 경쟁력이 남아 있을까?'

'새로운 일을 배우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두려움은 미래를 향한 상상의 폭을 좁혀버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두려움을 억누르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두려움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용기가 자라나는 토양이다. 그 안에 오래 머물수록, 언젠가 한 걸음 내딛을 힘이 자란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두용(斗勇)'_두려움을 품고서라도 나아가는 힘.


이제부터는 '생각하는 일'에서 '움직이는 일'로 방향을 바꾸려 한다. 그동안 머리로 계획하고 말로 설득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손으로 만들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싶다. 그래서 그림을 다시 그려본다.


30대 초반에 문득 그림을 배우고 싶어 일러스트 학원에 잠깐 다닌 적이 있었다. 일에 치여 오래 다니지 못했지만, 그때 느꼈던 물감 냄새와 붓의 질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오랜만에 서랍 속 물감을 꺼내 색깔을 물들이거나 색연필로 색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보았다. 색을 섞는 시간, 그 조용한 몰입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AI 시대가 오면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중요해질 거야."

지인이 무심코 던진 말에 여운이 남아, 사람의 손끝이 필요한 일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반죽을 밀어 빵을 굽는 사람,

질감이 살아있는 천으로 인형을 만드는 사람,

차가운 흙을 다듬어 도자기를 구워내는 사람,

그들은 모두 손끝으로 마음을 빚는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온도가 깃든 일들.


나 역시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

미용처럼 섬세한 감각이 필요한 일,

예처럼 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일,

그림처럼 창의와 감성이 만나는 일.


무엇을 선택하든, 이제는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시도하는데 뜻을 두기로 했다. 배우고, 느끼고, 다시 방향을 조정하는 과정.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솔직한 성장이다. 하루에 단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 보는 것. 작은 시도라도 반복되면 결국 방향이 되니까. 중요한 건 완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나 자신이다.


퇴사 후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급하게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진로 선택이 아니라, 충분히 탐색할 용기라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당장 직업을 찾는 것보다, 다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탐색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보다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당혹스럽고, 그동안 알고 있던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낯섦이 따라오지만,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도 모르지만, 모른다는 사실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오히려 설렌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 다시 처음처럼 서툴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뛰게 만든다.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물지만, 그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용기가 자라난다. 비록 안개 속이지만, 한 걸음이 내일의 방향을 만들어줄 거라 믿으니까. 그 믿음 하나로,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겠지. 첫 시도는 아마 그림일 것이다. 새로운 색이 번지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두려움을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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