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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11. 2022

주민등록 제도와 그 역사 Ⅱ

주민등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1994년 7월 1일부터 주민등록 전산 처리가 시작돼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민등록표는 전산화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주민등록증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었습니다. 담당자가 이름, 주민등록번호, 본적, 주소, 호주, 병역 사항, 특기 번호 등을 종이 위에 볼펜으로 써서 그 종이를 비닐 코팅한 것으로 주민등록증을 사용했습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교복을 입고 클럽에 들어서면서 주민등록증을 내미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 증은 플라스틱 증이 아니라 종이에 비닐 코팅한 주민등록증이라는 사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99년, 주민등록 업무에 나름 굵직한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종이에 비닐 코팅한 주민등록증 대신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교체 이유는 종이에 비닐 코팅한 주민등록증이 위조․변조에 취약하다는 것이었어요.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새롭게 발급해야 했던 1999년, 2000년의 동사무소 풍경은 무척이나 진기한 것이었습니다. 시민 편의를 위해 또는 정부 정책의 진도율을 높이기 위해 동사무소에 스튜디오를 마련해서 증명사진을 찍어 주었어요. 말이 스튜디오지 그냥 동사무소 한편에 흰 스크린을 걸어 두고 아무런 촬영 기술이 없는 동사무소 직원들이 사진을 찍었어요. 당연히 전문 사진관에서 촬영한 것보다는 사진 품질이 낮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도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여서 사진 찍는 데 돈 안 들어 좋다는 반응이 꽤 있었어요. 남자도 미용에 관심을 갖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참 특이한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발급한 사람이 2천6백5십만 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대규모 사업이었습니다.*1


이 시기의 주민등록증 발급 사유는 ‘경신(更新)’이었습니다. 기존의 코팅한 종이 주민등록증에서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새롭게 바꿨다는 말이죠. 이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사람들은 지금도 지문 자료가 전산 시스템에 입력돼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새 주민증 발급 앞두고 화상자료 입력 고심


오는 7월 현행 주민등록증을 대체하는 새 플라스틱 주민증 발급을 앞두고 조명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남 지역 일선 시․군들이 화상자료 입력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25일 경남 지역 일선 시·군에 따르면 오는 27일 새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앞두고 신분 확인 자료 입력을 위해 사진을 지참하도록 홍보하고 있으나 사진을 지참하지 않은 주민들에게는 읍·면·동 사무소 직원들이 디지털 사진기로 직접 촬영해 줄 계획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남 지역 읍·면·동 사무소들이 행정자치부가 지시한 조명도 400~600룩스를 유지하는 조명 시설을 갖추지 못해 사진의 선명도를 유지하기 위해 조명 시설 보완을 위한 예산을 요청하거나 인근 사진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30만 명의 주민들이 새 주민증을 신청할 마산시의 경우 조명 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1천만 원의 예산을 추경에 반영해 줄 것을 시의회에 요청하고 있으나 예산에 반영되기까지는 주민증 발급 시한이 끝나는 9월 이후에나 가능한 실정이다.


함안·의령·창녕군의 경우 예산 반영이 여의치 못해 인근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 오도록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등 경남도 내 대다수의 시·군들이 사진 선명도를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시·군 관계자들은 “인구가 적은 읍·면·동은 사진을 다시 찍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구가 많은 지역은 주민증 발급 시한 내 재촬영이 어려워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경찰과 협조해 주민증 발급 시 본인이 맞는지 재확인하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용 기자. 연합뉴스. 1999. 5. 25.



2016년 주민등록법 개정: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 도입

주민등록 제도가 정착되면서 문제점도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개인의 사회·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이 주민등록번호가 개인의 고유한 번호이다 보니,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될 때의 피해 규모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중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법 제7조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2


이 판정으로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서 생명·신체·재산 피해가 있거나 피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는 조문이 신설된 것이죠.


자주 들어오는 민원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실무자 입장에서 비중이 큰 업무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민등록법상 상당히 근본적인 변화라는 점, 그리고 단순·반복 업무로 보이는 우리 하급 공채생의 일도 다이내믹한 사회 변화와 함께 발맞춰 나간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설명드렸습니다.


2020년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 지역 번호 폐지, 임의 번호 부여

1975년에 시작된 열세 자리 주민등록번호 중 뒷자리 성별 번호 다음에 오는 네 자리 숫자는 지역 표시 번호였습니다. 그래서 이 네 자리 숫자를 알면 그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지역 차별 가능성, 새터민에게 특정 지역 번호를 부여하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그래서 2020년 10월 5일, 주민등록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습니다. 1975년 이후 무려 45년 만에 주민등록번호 부여 방식이 바뀐 것이죠. 이제 지역 표시 번호는 사라졌고, 주민등록 시스템이 임의로 정한 주민등록번호가 한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로 부여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민등록표와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주민등록 제도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주민등록 담당자가 하는 본질적인 임무 중 하나가 ‘주민등록표 정리’인데, 주민등록 시스템에서 마우스만 클릭하다 보면 주민등록표를 정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안 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중요한 주민등록표 서식을 거의 다 살펴보셨으니,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셨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이제 가족관계등록 제도와 주민등록 제도의 역사를 비교·대조해 보겠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이죠.


가족관계등록 제도와 주민등록 제도 역사 비교·대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두 가지 제도가 서로 다른 제도라고 해도 마땅히 일치해야 하는 공통 기재 사항이 있습니다. 이름, 한자 이름, 생년월일, 성별, 주민등록번호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金炯烈 씨의 경우처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두 제도의 역사를 훑어본 지금이라면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두 제도를 담당하는 기관과 부서가 달랐습니다. 종이에 볼펜으로 쓴 문서를 전산 입력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산 입력해야 할 종이 문서의 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전산화 작업 시기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전산화 작업을 할 때 두 기관이 각자가 다루는 공부의 개인 정보를 상호 비교하면서 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끝으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에 金炯烈 씨가 이 모든 설명을 다 들었다고 가정해 보죠. 평소에 정부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면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기왕 하는 거, 2000년대 초반에 호적부 전산화 작업할 때, 1990년대 초반에 전산화가 끝난 주민등록표 등·초본을 다 출력해서 호적부와 주민등록표를 상호 대조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니냐! 하여간 정부미*3들 하는 거 보면 답답하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은 쉽죠.


모든 일을 벌일 때 치밀하게 계획을 짜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고,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행정 최일선 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굵직한 정책을 급하게 추진하려는 정책결정자를 옹호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터럭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대형 국가사업을 벌이겠노라 주장하는 건, 그 일을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형 사업을 벌이다 보면, 정책집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족한 점이 불거져 나옵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차차 보완하면서 정책을 안착시켜야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완벽주의와 시의성 사이의 어느 적절한 곳에서 절묘하게―또는 어정쩡하게―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책결정권자의 숙명입니다.



*1 나무위키. namu.wiki ‘주민등록증’ 검색일 2022. 3. 4.

*2 헌법재판소 홍보심의관실. 2015. 주민등록번호 변경 사건(2013헌바68 주민등록법 제7조 제3항 등 위헌소원, 2014헌마449(병합) 주민등록법 제7조 제3항 등 위헌확인). 2015. 12. 23. 헌법재판소 보도자료.

*3 정부가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품종을 개량해서 생산했던 쌀. 일반미보다 품질이 떨어져서 공무원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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