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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탈북자, 부모 버린 불효자?

누가 교회에서 간증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전에도 몇 번 다른 교회에서 간증을 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간증이라고 해봐야 대개 탈북 이야기와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견뎌온 나의 이야기였다. 간증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가와 ‘그동안 고생했어요.’ ‘한국에 잘 왔어요.’ 위로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 중 ‘장로님’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말이 탈북자지, 부모 버린 불효자잖아. 저 하나 살겠다고 부모를 버리고 나왔어?” 

농담이라는 듯 웃음 짓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꼬집지 않아도 나 혼자 자유로운 세상에 왔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던 시기였다. 나는 불효자가 맞다고 자책했다.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 사람은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이라며? 너도 사람고기 먹어봤어? 맛이 어때?”

어떤 이는 조롱하듯 키득거렸다. 불결한 것을 털어내듯 손바닥을 터는 시늉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알래스카에서 조난당한 산악인이 죽은 동료의 살을 메어먹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에 사람이 얼마나 극한 상황에 몰렸으면 사람고기를 먹었을까 하며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교회목사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준다며 차를 세웠다. 처음 자동차를 타보는 순간이어서 어느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했다. ‘운전석에 나이 드신 남자 목사가 앉아있으니 그 옆자리는 어려운 자리일 거야, 운전석 뒷자리는 운전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얼굴을 보고 고마움을 표현하려면 운전석 뒷자리보다 그 옆자리에 앉는 게 맞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운전석 옆 뒷문을 열고 앉았다. 순간 운전석에 앉은 목사가 불같이 화를 냈다. 

“어디 버릇없이 상석에 앉아? 내가 네 기사야? 내 옆으로 와.” 

낯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가 왜 화를 내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른 채 나는 두려움에 떨며 앞문을 열었다.

한참 달리는 차 안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너  내 애인 할래? 내 친구들은 젊은 애인이 하나씩 있다는데, 나 같은 애인 있으면 앞으로 사회생활이 편해질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한참 너스레를 떨던 늙은 목사가 내가 반응을 못하자 “농담이야~” 하며 웃어넘겼다. 그는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사람들은 탈북자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탈북자는 정부에서 집도 받고 정착금도 받는다며?

-탈북자는 내가 낸 세금으로 대학에 가고 특혜를 누린다.

-탈북자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한다.

-탈북자는 불쌍해서 도와주면 뒤통수치고 도망간다.

-북한은 불쌍하다고 쌀을 퍼주면 핵무기를 만든다. 그러니 탈북자도 도와주면 안 된다.


북한 정부를 향한 비판도 탈북자를 향한 불만도 전부 나를 향한 비수 같았다.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귀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나는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일을 당할수록 탈북자인 내가 싫고 억울했다.  

“왜 나는 탈북자입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왜 내가 탈북자로 살아야 합니까?”

나는 커튼도 열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머리를 풀고 하늘을 향해 울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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