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자존감은 추락했을까
실제로는 학교에 잘 적응해서 꽤 괜찮은 캠퍼스 생활을 보냈는데도, 대체 왜 나의 무의식은 연세대가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을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추락한 자존감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사회에서 만나서 SNS로만 알고 지낸 지인이 난데없이 ‘만나서 조언을 듣고 싶다’라는 연락을 했다. 한번도 개인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고, 할머니가 늦둥이를 낳으셨다면 막내 삼촌뻘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인기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하고, 청와대 근무 경력도 있으며, 이미 책도 여러 권 출간한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이라 ‘대체 나에게 왜? 무슨 조언을?’이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맑은 초여름날, 광화문의 초밥집에서 백 선생님을 만났다. 어색함을 풀 겸 호기심에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최근에 출연하신 유퀴즈 재밌게 잘 봤습니다. 유재석 씨는 실제로 만나니 어떠셨어요? 어려서부터 연예인을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유재석 씨는 한번 꼭 만나보고 싶은 연예인이거든요.”
“일터-집, 일터-집만 왕복하고, 많은 것을 차단하고 절제하며 거의 도인처럼 사는 사람 같던데요?”
생각보다 잘 생겼다거나(또는 화면이 더 낫다거나) 베테랑답게 입담을 뽐내며 긴장을 풀어주었다는 등의 말을 기대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백 선생님은 그 짧은 만남에서 다른 사람은 주목하지 않는 사람의 이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백 선생님이 나를 만나고자 한 이유는 만약 출판사를 차린다면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은 이미 많은 출판사 대표님과 친분이 있지 않으세요? 저는 고작 출판마케터라는 직원에 불과했고, 업계를 떠난 지도 몇 년 되었고요. 출판사를 차린 경험도 없어서 여전히 제 의견이 도움이 될까 의문입니다.”
“출판사 대표를 만나서 막상 회사 운영이나 설립 같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요. (웃음) 게다가 박 선생은 대형출판사에서 열정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 여러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백 선생님은 유재석 씨의 내면을 꿰뚫었듯이 나의 내면의 어떤 점을 눈여겨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겼던 것 같다. 이날 참어른에게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라도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진지하게 배우려는 태도를 배웠다. 백 선생님처럼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더라도 상대방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만나서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자 어른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돌이켜보면 대학교 친구들의 우월한 능력이나 여러 조건 자체 때문에 자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친밀한 관계로 지내다가 무슨 이유인지 자기 자신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한 몇몇 이들이 가깝다는 이유로 장난과 농담을 빙자한 교묘하고 헷갈리는 무례한 말과 행동을 일삼은 순간들이 큰 충격으로 남았던 것 같다.
가령, 교수님과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그런 적절치 않은 질문을 왜 하느냐’라며 한심하다는 투로 나를 막아선 아이도 있었고(지금 생각하면 저나 나나 별반 다르지도 않은데 무슨 자신감으로 함부로 판단자 행세를 자처했는지 어이없다), 이런 식으로 나의 말이나 행동을 무시하거나 (그에게는 어떤 이유가 존재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리며, 집단에서 소외시키거나 배제하려는 시도는 짧지 않은 기간 반복됐다. 이때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고 해소하지 못해서, 정당한 절차를 거치고 열심히 노력해서 당당히 합격한 학교인데도 나는 연세대에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폄하할 만큼 자존감이 곤두박질쳤던 것 같다.
이외에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는 않았지만 불편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화장도 좀 하고 콧구멍과 입술 사이 거뭇한 솜털도 깎는 편이 어떠냐며 외모 지적을 한 아이도 있었고, 그 옷에는 어떤 벨트를 하는 게 낫겠다며 묻지도 않은 패션 조언을 한 아이도 있었으며, 그 가격에 브랜드 가방을 사느니 구제 가방을 사는 게 낫다며 내 소비습관까지 지적하며 참견하는 아이도 있었고, 친구의 출중한 외모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칭송하며 비교하는 아이도 있었으며, 명품을 즐겨 착용하는 어느 부유한 아이에게서 나를 볼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시선을 느끼고는 했다.
한번은 패션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내가 입은 바지와 티셔츠를 보고는 ○○ 제품이냐며 순수하게 부러워하는 눈길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옷들은 동대문 시장과 이태원 거리에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샀고, 그 나이대 친구들과 달리 나는 명품이나 브랜드에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이미테이션인지도 몰랐으며, 지금도 그 옷들이 무슨 브랜드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후에 그 친구가 혹시라도 모조품이라고 눈치채서 놀림거리가 되거나, 모조품 걸치고 다니는 애라고 괜한 소문이 돌까 봐 두려워서 더는 그 옷을 학교에 입고가지 못했다.
이들은 인간의 이면에 주목하는 백 선생님과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사람의 겉모습과 조건에 높은 가치를 두고, 이를 기준으로 재빠르게 도움이 될 사람과 아닐 사람을 선별했다. 사회적 상승 욕구가 큰 만큼 깊은 결핍과 불안감은 다소 만만한 이를 깎아내리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높이려고 했다. 당시에는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 순간순간 내뱉는 자기 확신에 찬 말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면이 불안정하고 제대로 통합돼 있지 않아서 이러한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와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에 쓸데없는 비교를 일삼고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겉멋 든 (자아가) 약한 이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런 유형의 아이들의 사회적 조건이 남달랐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학교 밖에서는 주목받고 부러움을 살지 몰라도 우리 학교 재학생 가운데는 (나처럼) 평범한 축이었다. 학교에서 눈에 띄는 친구들인 특목고 졸업생도, 강남 거주자도, 부모님 직업이 고위공무원도 아니었고, 어린 시절 해외 거주 경험이 있지도 않았으며, 여행 갈 때 비즈니스를 타고 가도 될 만큼 초부자도 아니었다. 아마도 이들도 (나처럼) 고등학생 때까지는 잘나기만 했는데, 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세상을 살아온 너무 잘난 이들을 마주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 것 같다. 이들의 기준에서 당시에 어수룩한 나는 상대적으로 만만해서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마음대로 참견하고 간섭하는 식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였던 것 같다. 한마디로 꽤나 어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춘기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들이었다.
누군가가 나보다 잘났다는 자체로는 나 자신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잘난(심지어 잘나지도 않은) 누군가가 나 자신을 타인과 지속적으로 ‘비교’하려 들면 불행해지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명품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돈도 많아서 명품을 쫙 빼 입고 다니고, 이런저런 명품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는 (질투는 좀 나겠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으니 환영이다. 하지만 명품을 마음껏 살 정도가 아닌 내 경제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과 ‘비교’해서 ‘너는 왜 매일 옷을 그렇게 입느냐’라고 함부로 지적하고, ‘패션 감각이 없다’느니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느니 나를 하찮게 느끼게 하는 배려 없는 말은 결국은 상처로 남고 만다.
아닌 척하면서 실은 겉치레에 치중해서 타인과의 비교를 지나치게 일삼아 매번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미성숙한 존재들을 벗어나, 나의 장점을 예쁜 눈으로 바라보며 내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훌륭한 친구들과 어울리자 학교생활 적응도 한결 수월했다. 이 친구들은 백 선생님처럼 월등한 실력자인데도 하나 같이 솔직하고 편안한, ‘정말로’ 배울 점이 많은 이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대학생활은 전반적으로 능력이 출중하고, 관심사가 다양하고, 성장 배경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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