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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06. 2024

상처 많은 사람은 왜 불행한 사랑에 빠질까

폭력도 사랑의 일부라는 학습된 무기력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비극적인 인간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완벽한 통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 신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 불안과 우울, 고통과 혼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고, 늘 만족하고 행복하게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더 이상 엄마의 자궁이 아니라 컨베이어 시스템에 실려 수정되고 병 속에서 제조되고 태어난다. 인간은 애초에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각 계급에 할당되고, 그 계급에서 적응하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소질을 갖추도록 조작되고 교육받는다.


예를 들어, 공장 노동자로 살아갈 하층계급인 델타 계급의 생후 8개월 된 아기들이 ‘유아보육실·신파블로프식 조건반사 양육실’에서 받는 교육을 살펴보면, 아기들은 주어진 장미꽃과 그림책을 보며 감탄하고 기쁨에 차서 행복해한다. 이 그림책에는 새끼고양이와 물고기, 새, 염소 등이 밝은 채도로 인쇄돼 있다. 그런데 아기들이 행복의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갑자기 요란한 폭음과 경보용 벨소리 같은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과 약한 전류를 흘려보낸다. 아기들은 공포감에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고 비명을 지르며 작은 몸통은 비틀리고 굳어진다. 이 과정을 마친 뒤 다시 꽃과 책을 보여 주면 이제 아기들은 장미꽃과 예쁜 그림이 그려진 책에서 공포감을 느껴 움츠러들고 두려움에 울게 된다. 책과 요란한 소리, 꽃과 전류 쇼크 – 영구불변하게 심어준 조건반사 덕분에 델타 계급의 아기들은 앞으로 책과 꽃에 증오심을 갖고, 혐오감에 이들을 멀리하며 살아간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완벽한 교육 덕분에 이들은 평생 자연의 아름다움과 독서의 재미를 깨닫지 못하고, 충실한 공장 노동자로서만 만족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멋진 신세계>의 조건반사 같은 아주 강력한 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도 학습의 결과이므로 대부분은 가정에서 부모와 형성한 애착관계와 사랑이라고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을 사랑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불쾌한 소음과 전기 충격 같은 조작물의 영향으로 어긋난 반응을 습득해 영원히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갈 <멋진 신세계>의 생후 8개월 아기들처럼 어긋나고 불완전한 사랑을 습득해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심지어 사랑은 소음과 전기 충격 같은 불쾌한 것이라서 폭력과 학대조차 사랑일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 <어느 가족>의 유리가 좀도둑 가족을 만나지 않고 성인으로 성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부요가 옷가게에서 유리에게 새 옷을 입히려고 하자 유리는 싫다는 표시로 고개를 젓는다. 그 나이대 여자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한껏 들떠서 자랑하려는 모습과는 상반된다. 노부요의 ‘옷 사기 싫어?’라는 물음에 유리는 ‘나중에 안 때릴 거야?’라고 반문한다. 이 아이에게 새 옷은 학대를 의미한다고 알아챈 당황한 노부요는 잠시 멈칫하고는 ‘때리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만일 유리가 좀도둑 가족과 엮여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계기 없이 계속 친부모에게 학대만 받고 자랐다면, 유리는 높은 확률로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다시 학대받는 아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유리는 성인이 돼 다정하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자를 만나 난생처음 따뜻함과 보호받는다고 느낀다. 이 따스함이 좋아서 쉽게 그 남자와 낭만적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섣불리 결혼을 결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정에만 기대 선택한 사람은 높은 확률로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애정에만 너무 높은 가치를 부여해 그 사람의 다른 면모는 충분히 살피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남자가 가족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가부장적인 사람이라서 점차 시간이 지나 수동적이고 저항하지 않는 유리를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운이 나쁘게도 부모처럼 폭력적인 성향이 내재된 사람이라 다시 폭력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랑보다 폭력에 익숙한 유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거나 이 상황을 벗어날 생각을 못 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 폭력과 학대에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을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학습한 유리는 원가정을 벗어나서도 다시 폭력의 덫에 걸리기 쉽도록 내면의 애착관계가 너무 잘 조작돼 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학습된 무기력은 동물에게 볼 수 있는 행동 유형의 하나로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무기력해진 심리 상태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친부모에게 돌아간 유리는 자신을 처벌하고자 새 옷 사줄 테니 가까이 오라고 회유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내저어 미약하지만 싫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한다. 유리는 이제 아무리 엄마라도 자신을 함부로 때릴 수 없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거부해야 하고, 학대와 폭력은 사랑이 아니라고 어렴풋하게나마 체득하게 된 것이다. 유리가 <멋진 신세계>의 델타로 양육될 아기들과 달리 아름다움을 느끼면 감탄하고, 소음을 들으면 귀를 막거나 찡그리며, 아름다움은 결코 소음이 아니고, 소음은 결코 아름다움이 아님을 구별하는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참고로 <멋진 신세계>에서 델타 계급에게 독서와 자연을 혐오하는 조건반사 연합 학습을 하는 이유는 델타 계급을 책과 식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하층계급에게 독서는 세계국가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며,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일을 소홀히 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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