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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Feb 05. 2024

사랑도 학습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두근거림? 설렘? 기분 좋음? 같이 있고 싶은 마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불가능하다고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손잡고 포옹하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싶게 요동치는 감정?

사랑은 빠지는 것? 사랑은 운명인가?


사랑을 한 번이라고 경험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랑은 고통이다. 외로움, 인내, 상처, 아픔, 힘겨움을 동반한다.

사랑은 집착이다. 애증과 질투심이 극에 달해 복수하고, 파멸도 기꺼이 감수하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사랑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불완전함이다.

사랑은 배신과 혐오이다.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려워도 아마도 사랑에 관한 토론회를 연다면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각색한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말 것이다. 손에 확실히 잡히는 물질적 만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보다 중요하다며 우선시 되고 있지만, 사랑에 관한 담론과 영화, 드라마, 웹툰과 소설은 물론이고 연애/사랑/결혼과 이혼 등을 소재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사실은 사랑과 애정을 갈망하는 우리들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고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국어사전에서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랑 

1. [명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명사]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명사]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의 정의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사랑은 운명이나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학습’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자동차 조작법을 익혀야 운전을 할 수 있고, 수영 동작을 배우고 꾸준히 연습해야 마침내 물 위에서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학습의 결과이다. 똑같은 운전과 수영이라도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적성, 어떤 환경에서 어느 강사에게 배웠는지에 따라서 학습 결과에는 차이가 나듯이 사랑하는 능력도 결코 다 같지 않고 사람마다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답기 이전에 능력이며, 사랑을 제대로 하고 싶은데 기량이 부족하다면 배우고 익혀서 능력치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의도치 않게 타의에 의해(주로 부모) 사랑을 잘못 배워서 인생의 오랜 시간을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채 믿으며 살아간다. 잘못된 핸들 조작 습관을 갖고 있는 강사에게 운전을 배워서 안전성이 떨어지는 잘못된 핸들 조작을 평생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고 자신이 위태위태하게 운전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잘못된 핸들 조작법을 버리는 첫걸음은 우연히 다른 사람의 운전 자세를 관찰하며 자신의 평소 조작법과 다르다는 것에 의문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비로소 자신이 잘못 배웠다고 깨닫고 이미 익숙해진 나쁜 습관을 바꾸려면 처음 운전을 배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식적인 노력과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영화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서 노부요(안도 사쿠라 扮)는 유리(사사키 미유 扮)가 자신의 집에 올 때 입고 온 옷을 태우며 유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볼을 가까이 맞대며 말한다.

“맞고 지낸 건 네가 나빠서가 아니야. ‘사랑하니까 때린다’라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꼬옥!”

유리는 친부모에게, 노부요는 남편에게 학대받았고, 둘 다 팔에 생긴 상처로 그 흔적이 남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유리의 과거인 예전 옷을 태우며, 때리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 이렇게 꼭 끌어안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안정감, 편안함과 친밀감,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유리가 경험하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전하고 싶은 노부요의 간절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국 이 가족의 정체는 탄로 나고 해체되면서 유리는 법에 따라 친부모에게 돌아간다. 자신의 원래 이름인 쥬리로 살면서 다시 학대와 방임의 상황에 놓이지만, 유리는 결코 좀도둑 가족을 만나기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유리는 노부요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하고 배웠으니까. 유리는 이제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깨달았기에 때가 된다면 자신만의 올바른 사랑의 운전대를 잡고 조작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랑도 학습이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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