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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08. 2024

웅장한 병마용과는 색다른 감동을 느끼는 <한양릉>

한양릉(중국 시안): 한나라 경제(景帝)의 능

한양릉. 한양 릉이 아니라 한 양릉(한나라 경제가 묻힌 능)이다.


진나라의 병마용과 비교하면 한나라의 토용은 약 1/3 크기이고, 부장갱(무덤에 붙어있는 구덩이)도 아담한 규모이다. 병마용이 실제 사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크다면(180~190cm에 달하기도 한다), 한양릉의 토용은 실제 사람보다 훨씬 작은 크기(약 60cm)로 제작했다.

농사나 생활과 관련된 토기와 말, 소, 돼지, 개, 닭, 양 등의 가축도 볼 수 있다.

작은 토용의 뒤쪽에 마차와 바퀴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팔이 없어서 기괴해 보이지만 원래는 흙으로 만든 몸체에 나무로 만든 팔을 조립해서 완성했다.
말, 소, 돼지, 개, 닭 등의 가축들


원래는 토용에 비단옷을 입혀 매장했는데 부식돼 없어져서 지금은 나체로 보인다. 병사들이 전부 팔이 없는 것도 운반하기 쉽도록 나무로 만든 팔을 흙으로 만든 몸체에 붙였는데 이제는 삭아서 없어졌기 때문이다. 옷은 더 이상 안 입고 있지만 나체의 성기 모양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 환관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복원해서 비단옷을 입힌 토용


한나라는 진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백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대규모 토목 공사로 강제 징집해 희생을 강요한 데 있다고 보았다. 한(漢) 경제(景帝)는 아버지 문제(文帝)에 이어서 한나라가 강한 나라로 번성하는 데 기여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경제(景帝)는 중앙집권제를 공고히 하면서도 농업을 중시하고 세금을 과감히 낮추며, 외교력을 발휘해 지나친 군비 지출을 줄여 민심이 안정된 시대를 이끌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와 경제의 치세를 '문경의 치'(文景之治)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비교적 소박한 한양릉은 바로 이러한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병마용의 1/3 크기이지만 마찬가지로 도열하고 있는 토용들. 뒤로는 농사, 일상과 관련이 깊은 토기와 가축이 보인다.
도열하고 있는 토용을 확대히서 촬영한 사진


중국 시안이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마용갱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부장갱 위로 통유리바닥과 벽을 만들어 능의 내부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는, 마치 고고학 박물관에 온 듯한 한양릉은 웅장한 병마용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부지갱을 하나의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조성해 잘 보존하고 있다.
입장할 때 나눠주는 비닐을 신발에 덧신어야 한다.

한양릉은 시안의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시안 일대에 산재한 황제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발굴했으며, 총 81개의 부장갱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현재까지는 10개를 발굴했다. 셴양 국제공항과 가까우므로 시안에서 귀국하는 길에 들른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셴양 국제공항에 가는 길에 한양릉에 들러서 2~3시간 정도 둘러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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