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글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만한 능력도 없었고, 노력한 만큼 돈 벌기가 그 어떤 일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글쓰기의 매력에 이끌려 7년째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나도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된 건가?’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메모의 힘
아이 낳고 나이가 들면서 메모 없이는 제대로 장을 볼 수가 없습니다. 꼭 중요한 재료를 한 개씩은 빠트리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종종 ‘나 여기 뭐 찾으러 왔더라? 나 지금 뭐 하고 있었더라?’ 하면서 잠시 멈춰서 생각을 되짚어 볼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쓰면서는 메모의 힘을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고 사라지는 생각을 메모로 붙잡아 봅니다.
관찰의 힘
원래도 조용한 성격이라 나서서 것보단 조용히 뒤에서 관찰하는 쪽을 더 선호합니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관찰에 조금 더 흥미가 생겼습니다. 어떤 사건을 여러 각도로 관찰해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좀 더 유심히 듣습니다. 꼭 글을 쓰려고 관찰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길을 걸어가면서 예쁜 풀꽃을 발견하듯, 자연스럽게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보던 좁은 시야가 조금 넓어진 기분이 듭니다. 또 관찰모드에서는 사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삶의 여유까지 갖게 됩니다.
사건의 재구성
소심한 성격이라 억울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후회만 남은 바보 같은 날들이었지요. 이제는 글을 쓰면서 상황을 다시 돌려봅니다. 다음엔 이렇게 말해보자. 다짐도 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봅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성급한 탓에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고요한 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면 낮 동안 미안한 일만 떠오릅니다. 글을 적으면서 반성도 하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엄마가 되리라 다짐합니다. 생각만 하는 것보다 선명하게 적은 글의 힘이 더 세다는 걸 믿습니다.
뇌 가소성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자신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변한다고 합니다. 집안일을 끝내고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펼치고 한글 파일을 여는 루틴. 일상에서 특별한 마음이 생기면 ‘이거 글로 써봐야지.’라는 작은 설렘이 생길 때. 저의 뇌도 이제 글 쓰는 뇌로 바뀌었다는 확신이 듭니다.
일단 글 쓰는 뇌를 장착했다면 다행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나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경험을 뇌에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글 쓰는 사람이 되고, 그러다 보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