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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4. 2022

그 날부터 10여년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유증

사고 이후 몇 해가 흐르면서 점점 근골격증상이 진행되는 걸 느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뼈는 산산조각, 근육은 너덜너덜, 신경은 망가짐’이었다.  근골격의 무너짐은 움직임에 제한을 주었고, 이십대 중후반부터는 몇 년의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경을 헤맨 시간도 꽤 있다.


어느 날에는 갑자기 근골격에 번개가 치듯이 쾅쾅거리는 느낌이 나더니 전신의 뼈들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온 몸 뼈가 굳어가는 게 번지듯이 진행되는 게 느껴지더니 뼈들이 석고같이 단단해진 것이다. 바람이 뼈마디마디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게 느껴져서 늘 추위에 시달렸고,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통증이 전신으로 번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내게 '겨울'이라는 계절은 시체처럼 죽어있는 시간이었다. 남들이 덥다고 하는 여름에도 선풍기바람이나 에어컨바람을 접하면 통증이 심해지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견뎌낸 그 때의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통증이 몸의 일부가 되면서 언젠가부터는 모든 자극에 통증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신체적 접촉이든 정신적 스트레스든 말이다. 지나가는 행인과 아주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넘어지기만 해도, 온 몸을 콕콕콕 쑤셔대는 신경통이 전신에 확 번지곤 했다. 피나는 노력과 기록과 관리를 통해 신경통이 좋아졌다가도 재발을 반복했다.  


소리에 대한 통증 반응도 극심해졌던 시기도 있었다. 큰 소리를 듣는 게 귀에 센 통증으로 다가올 만큼 고역이었고, 소리의 진동이 온 몸으로 느껴지고 그 파동이 내 온 몸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일상소음조차 듣기가 힘들어서 귀마개를 끼고 생활할 때도 있었다.     


버스, 차, 기차 등 교통수단의 흔들림에도 근골격이 영향을 받고 통증이 심해지다 보니 어디로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다. 타 지역에 갈 엄두를 못 내고 발이 묶여 지낼 수밖에 없었고 방 안이 나만의 병실이자 요양원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 한의원에도 진료받으로 가지 못 한 채로 집 안에서만 지냈던 장기간의 시간들도 존재했다.     


수면을 정상적으로 취할 수 있었다면 회복이 빨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로 일상이 된 통증은 수면을 방해할 정도로 심한 강도의 통증이었기에 불면증이 일상이 되었다. 자기 직전 진통주사 맞은 날이 제일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이었으나 진통주사가 근본 해결책은 아니었기에 매일 도움받으며 의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불면과의 사투도 만성이 되었다.     


이런 몸으로 견디고 버티며 이십대를 거쳤고 여러 치료와 노력 끝에 다른 지역에 갈 수 있는 몸을 만들어서 서른 무렵 도시를 떠나 시골에 요양을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얽히는 사건들의 총합으로 교통사고 관련자들과 관련한 단체에 나와 우리 집을 향한 악 소문이 크게 번지게 되었다.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정신적 아픔에 시달렸다. 나를 이해 못 하는 가족들에게 스트레스 받고 상처받거나 지인들에게 오해받고 상처 받을 때도 통증으로 반응이 왔다. 그 때마다 뇌압이 올라 뇌가 터질 것만 같은 괴로움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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