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의 끝판, 뇌가 고장났나봐
살아있을 에너지도 부족했던 시절
언젠가부터 뇌가 이상한 걸 느끼며 초반부터 언급한 기억장애와 기억의 뒤죽박죽이 병행되었다. 뇌가 아프고 뇌가 터질 것 같고 뇌압 오르는 느낌이 만성적인 시기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도 버겁고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을 응대하는 걸 몸이 감당을 못 해서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나의 존재적 기운도 감당이 안 될 뿐 아니라 타인의 존재적 기운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존재의 에너지가 밑바닥으로 내려갔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해낼 수 있지만, 그 과정 중에 있을 때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차마 입에 담기조차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또, 홀로 속으로 피눈물 흘릴지언정 이러한 극한의 고통을 입 밖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긴 세월 속으로 눌러두었다가 한계에 차면서부터 내가 겪어낸 고통들이 내 존재 밖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나는 나를 겪는 사람들에게 한풀이 하듯이 사고에 대해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십대 내내 평생 쓸 정신력과 인내를 미리 땡겨 썼기에 내 온 존재의 모든 면이 막바지에 이른 상태였다. 호흡하기에 모든 생기를 총동원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적으로 벅찼고, 넋을 잃을 것 같은 심신이었다. 그래서 그런 평가들이 그 때의 나에게는 아프고 상처가 되었다.
물론, 사람의 눈으로 나를 이해하고 헤아리기란 매우 어려웠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이상해보일지언정 내 상황에 직접 처해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도 않고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 사람들에게 내 몸으로 하루라도 살아보고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입장인들 '살아 숨 쉬는 것조차 사투인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각자의 기준과 원칙이 있고 그것을 따라서 살기에 존중하지만, 자기의 기준과 다르다고 남을 비판하고 말로 죽이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존재가 한창 그러한 상태였을 때 나를 접함으로 내게 실망하고 질리고 나를 떠나버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분량으로는 나를 있는 그대로 감당하기 버거웠을 것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내가 당신들에게 준 진심의 가치를 안다면,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은 해 보지 않았겠냐고.
내게 정말 애정이 있다면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나에게 그렇게 잔인하고 못된 상처들을 줄 수 있었겠냐’고.
그리고 변함없이 내 곁에 머물러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우정의 이름이든 내가 베푼 진심에 대한 보답이든 내 곁에 남는 것을 선택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옆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내가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내가 어떠한 상태이든 내가 어떤 언행을 하든 나를 존재 그대로 바라봐주고 품어주었던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살아가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