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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7. 2022

졸업장의 의미

내 20대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는데

  사고 후유증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어떤 외상보다도 인생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생사람을 잡고 한 인생을 망가뜨리다시피 하는 것이다. 국제침구사 할아버지 치료를 받으며 들은 견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추락사와 같은 충격을 온 몸이 받았던 거라고 하셨다.  온 몸 마디마디와 장기 그리고 뇌까지 흔들거린 것이고, 그 결과 ‘근육은 너덜너덜하고 뼈는 산산조각 난 느낌’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게 진짜였던 것이다.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온 몸의 관절이 불안정한 것을 항상 느끼며 살아왔었다. 근육통, 관절통, 장기통증 등 통증 강도는 말도 못 하고,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고, 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송장’이었다.      


후유증 3년차부터는 고도의 정신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그저 숨이 붙어있는 것에 감사하며 버티고 버텼었다. 친구를 만나고 연락하는 인간관계를 챙기는 것조차 사치였고, 전자파가 너무 아프게 느껴져서 폴더 폰을 쓰기도 했었다.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것조차 큰 에너지 소모로 다가와서 메신저를 지우고 살았었다. 그런 가운데 한 인간으로서 교사의 꿈을 위해 졸업을 위해 한 노력을 감안해 줄 수 없냐는 요청을 학교 측에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기운이 날 때마다 교대 학우들에게 메신저로 장문의 글을 보내 상황을 알렸다. 함께 공부하며 나의 성실함을 지켜본 동기 몇몇은 탄원서를 써 주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재입학이 어렵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실존해보려고 했던 그 시간들이 억울해서라도, 재입학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꼭 다 해보고 싶었다. 내 사연이 알려져서, 행정의 미숙함으로 피해보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도록 주먹구구식의 교육대학교 행정 처리방식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교육대학교 졸업장’은 나의 인생이 걸린 자격증일 뿐 아니라, 고통과 매일 매순간 싸워 낸 내 젊음의 보상이었다. 산후 직후의 몸처럼 온 몸 관절이 다 열려 있고 느슨한 상태에서 산후조리를 하듯이 몸을 돌봐야 하는 연약한 몸으로 견뎌왔고 견뎌냈고 견뎠으니 말이다.      


졸업하고 당장 현직에 나가지 못 하더라도 졸업장이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다음 단계의 행보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을 품어주는 꿈’을 꾸면서 치료를 받고 건강해지자는 목표라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졸업장을 갖고 시간 강사로라도 기간제로라도 교단에 서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이십대에 가질 수 있는 삼십대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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