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 Jan 19. 2022

현모양처의 꿈

참된 교육의 길

어릴 적부터 쭉 일관된 꿈이었던 ‘교사의 꿈’이 산산조각 났을 때를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지진이 나는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의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도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초등학생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면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하다.      


한동안은 초등학교 근처를 우연히 지나기라도 하면 왈칵 눈물부터 펑펑 쏟아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직에 나가지 못 했다고 해서 교육의 길을 갈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나를 다독이고 있다.  삶이란 배움의 연속이며 알아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실패를 통해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나의 경험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뼈아픈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스승의 길을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부가 재밌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쓸데없는 지식을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하기 위한 지식들을 지속적으로 습득하고 싶다. 무언가를 알아가고 배워갈 때 난 너무나 행복하다. 


언젠가 내 자녀를 낳아 길러 교육할 때 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배움을 즐기는 엄마이고 싶다. 내 자녀가 고3 수험생일 때는 함께 수능시험을 응시하는 것이 내 소소한 꿈 중 하나이다. 기계화 된 교육체계 속에서 신이 각 사람에게 주신 기본적인 오감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런 교육을 가정에서 해주고 싶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것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이 또한 교육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이러한 인생의 큰 시련을 겪지 않고 결혼을 했다면, 나는 남편과 자녀를 내 기준에서 다그치고 엄격하게만 대했을지도 모른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무엇이든 피나는 노력으로 해낼 자신이 있었던 나이기에 조금만 실수하고 못 하는 모습을 보면 크게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성공해서 살았을지 몰라도 내 존재는 그것밖에 안 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밑바닥을 헤아릴 수 있고 사람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한계가 다 다르다는 것을 품어줄 수 있게 되었다. 늘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가 되려고 노력하고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상대의 발전을 위해 조력하지만, 내가 상대를 바꾸려고 몰아붙이는 것은 미성숙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의 이런 존재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현모양처의 꿈을 다시금 꿔본다. 그 꿈이 너무나 원대했기에 어진 아내이자 좋은 엄마에 대한 기준이 스스로 높았었고, 그것을 건강 때문에 못 해낼 것 같아서 포기 했었던 어린 나로부터 벗어났다. 존재가 아름다운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내조가 있다고 자신하고, 그런 나만이 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자신한다.


마치 신생아와 같은 뇌 상태를 겪으면서 왜 부모가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지 실감했다. 정말로 내가 보고 듣는 것이 거름망 없이 내 언행을 통해 그대로 나갔기 때문이다. 마치 뇌에 저장용량이 없는 기분이었다. 무슨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말로 토해내야 뇌가 아프지 않았고, 어떤 행동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나는 나의 자녀들 앞에서 더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의 뇌가 한창 자라고 있을 때도 각 발달시기별로 고유의 인격이 있기에 그 인격을 존중해주며 아이를 기르고 싶다. 이렇게 현모양처가 되어서 나만이 흘려보낼 수 있는 내 내면의 어떠함을 나의 자녀들에게 선사한다면, 그것 또한 참된 교육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  

이전 18화 졸업장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