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 Jan 11. 2022

뇌가 아파요

난 여자가 아닌데 1

오랫동안 투병 아닌 투병을 하면서 이성의 감정도 느낄 새가 없었던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비록 내가 과거에는 ‘여자’였을지라도, 이렇게나 아프고 어려운 처지로 전락한 나는 그저 아픈 ‘환자’일 뿐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와 연락하는 게 문제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진솔한 표현들을 들으면서, 무언가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가 머리가 아프면서도, 내가 연락을 하는 것이 그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는 건 직감할 수 있었다.      


하늘 앞에 울부짖었다. 내가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일반적인 기준과 잣대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아시지 않느냐고… 내가 교통사고로 어떤 고통들을 감내하고 버텨왔는지 당신은 아시는데 이 정도는 눈감아 주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행여 그에게 짐이 될까봐 그것이 싫어서 그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 했던 나인데, 그런 내가 어찌 그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었겠는가. 의사들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학 밖의 증상들을 견디는 중에, 그는 나에게 유일한 치료약이자 진통제였었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20대 후반의 나는 20대 초반의 나처럼 나보다 그를 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뇌가 아파서’라는 이유로 연락을 더 이상 못할 것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뇌가 아프기 시작했고, 난 뇌의 구조를 직접 체험했었다. 해마가 꿈틀대는 걸 느끼면서 ‘해마’의 존재를 느꼈고, 언어력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걸 느끼면서 ‘측두엽’의 존재를 느꼈다. 시신경이 단계별로 돌아오는 걸 느끼면서 ‘후두엽’의 존재를 실감했다. 내 뇌에 내가 지배받는 걸 느끼면서 가족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이 내 언행을 통해 표현되면서, ‘편도체’의 작동을 몸소 겪었다.      


뇌가 나를 갖고 노는데 

내가 내 뇌를 통제 못 하는데 

뇌 때문인데

나는 아는데 

나는 느끼는데 

남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전 05화 애어른에서 어른아이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